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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픽플 May 14. 2021

단편영화 리뷰<덫>

숨겨진 내용들을다시 보며유추하는 재미

  영화들을 보다 보면 유독 건조하다고 느껴지는 작품들이 있다. 크게 드러나지 않는 스토리 라인, 단조롭고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 카메라 워크,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이 들어가 있는 캐릭터들. 보통 이런 부류의 영화들은 모아둔 에너지들을 중후반부에 몰아치는데, 전반부와 심심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분위기들이 반전되며 더 큰 감흥을 준다. <덫>은 제목처럼 영화 자체가 교묘한 인간이 짐승을 잡기 위해 위장하고 설치해놓은 덫같다. 중반부까지 건조함에 잔잔하게 보다 보면, 후반부에는 마치 덫에 걸리면 파닥거리는 짐승처럼 더 큰 긴장감을 부르는 영화다. 


준혁은 운영하지 않는 건강원에서 몸과 정신이 좋지 않은 아버지를 돌보며 지낸다. 아버지는 치매에 걸려 자꾸 딴소리를 하며 급진적인 폭언을 하고, 이런 것들이 익숙해진 건지 준혁의 얼굴은 죽어있는 사람처럼 무던하다. 그런 준혁은 거주하고 있는 건강원을 팔고 서울로 돌아가려 한다.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산짐승들을 잡기 위해 쳐놓은 덫을 수거하러 산을 오르는 준혁.

자꾸 무언가를 찾는 준혁 / 아버지 뒤치닥꺼리를 하는 준혁

잠시 소변을 보러 가다가 자신들이 설치해놓은 덫에 걸려 죽을뻔한다. 우연히 지나가던 엽꾼이 그를 구해주고, 낯선 산행은 위험하다고 하며 덫을 까는 사람들의 목적은 뻔하고 잔혹하다며 흉을 본다. 엽꾼의 말에 불편해진 준혁은, 대충 둘러대며 그를 보내고 아버지와 함께 산을 내려간다. 길을 가다가 준혁의 아버지가 두고 온 짐을 보고 그 덫들이 준혁과 아버지가 설치했었던 것임을 깨닫는 엽꾼. 사실 엽꾼의 아들은 이들이 설치해놨던 덫에 죽었었고, 그는 준혁과 아버지의 뒤를 쫓는다.

한편 자신이 죽을뻔했음에도 그것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와 그의 날카로운 언행에 무언가 지친듯해 보이는 준혁. 길을 내려가다 엽꾼의 총소리가 들리고, 그의 아버지가 쓰러진다. 준혁은 쓰러진 아버지를 쳐다보다가 사라진다.

이 영화에서 보이는 플롯은 간단하다. 자신들이 설치해놓은 덫을 수거하러 간 아버지와 준혁은, 자신들의 덫에 아들이 죽은 엽꾼을 만나고 그에 의해 아버지가 살해된다. 이 내용만 보면 영화는 상당히 심플하고 짧아야 한다. 하지만 짧은 플롯에 비해서는 좀 더 많은 정보들이 담겨있는데, 그 정보들을 굉장히 제한적이게 숨기며, 또 돌려서 보여주기 때문에 궁금증을 남기는 지점들이 많다. 의도를 알 수 없는 캐릭터들의 얼굴과 명확하지 않은 컷, 대사들이 처음 영화를 볼 때 왜?라는 물음표를 남기며 답답함을 남기지만, 되려 재관람할 때는 그 명확하지 않은 지점들이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열려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아버지는 정확히 어디가 불편한 건지, 준혁은 왜 아버지와 함께 지내고 있는지, 그가 원하는 것은 돈인지, 형제와의 통화내용에서 언급된 것도 돈에 관한 것인, 아버지는 왜 준혁에게 저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지, 준혁은 아버지에게 양약을 주며 하는 이야기의 의도는 무엇인지, 엽꾼의 아들이 죽은 이야기는 왜 저런 식으로 보여주는지, 엽꾼의 말대로 준혁과 아버지가 덫으로 잡는 것은 짐승이 아니라 사람인지, 엽꾼은 아버지를 쏘고 나서 왜 바로 아들을 쏘지 않았는지, 준혁은 왜 자리를 떠났는지 등. 관점에 따라, 또 디테일을 어떻게 보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지점들이 많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 다른 재미를 준다. 예를 들면 초반부 나오는 준혁이 냉장고에서 꺼내 해동시키는 고기의 단독 컷은 처음 봤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넘어가지만, 다시 볼 때는 엽꾼의 말에 저 고기는 무슨 고기일까 하는 궁금증을 들게 만드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영화는 좀 더 길었어야 더 재밌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플롯에 비해서 러닝타임이 긴 게 아니라, 중립적인 컷들 때문에 오히려 짧게 느껴진다. 그만큼 알고 보면 더 많은 내용들이 있으니 만약 이 작품을 보게 된다면 꼭 두 번 관람을 추천한다.


*단편영화 <덫>은 엔픽플 오리지널 작품으로 엔픽플 가입 후 바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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