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려는 움직임, 그것 자체로 구원이 되는 일
<괴물>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흥미진진한 스토리, 다양한 캐릭터, 사회비판적 메시지 등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중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던 사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강두가 딸 현서를 구하지 못함에서 온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단순히 구하지 못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현서가 자신을 희생하면서 지켜낸 아이와 함께 살아나가는 강두의 모습이다. 영화 내내 철없이 보이던 강두는 현서를 지킨다는 목적은 이루지 못하지만, 영화를 통과하며 변화하고, 변화한 그대로의 삶을 이어나감으로 관객의 마음을 파고든다. <열대야>에서 '상식' 역시도 원하는 대로 모든 것들이 풀어지지 않지만, 그 나름의 방식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건달처럼 보이는 상식은 이혼을 했고, 집을 나간 아들이 있다. 그는 아들의 생일 선물을 사고 싶지만 수중에는 돈이 없다. 그런 그에게 역할대행을 해주면 10만 원을 주는 알바 제안이 오고, 가출한 고등학생의 아버지 역을 맡게 된다. 그가 해야 할 일은 노래방에서 알바를 하다 사고를 친 가짜 아들 병태를 대신해 가게 주인에게 사과를 하는 일. 병태는 거칠고 자존심 세게 살아온 삶 때문에 한 번에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못하고, 사장과의 갈등은 커진다. 병태의 불평과 돈이 필요한 상식은 어색하게나마 사장에게 사죄를 구하고, 사장은 사과는 받았지만 손해배상비로 10만 원을 요구한다. 병태는 원래 상식에게 주기로 했던 돈 10만 원을 제하면 남는 돈이 없으니 상식에게 대신 돈을 내줄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상식 역시 돈이 없기는 마찬가지라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 병태는 다짜고짜 사장에서 상식이 모두 다 갚을 거라며 막무가내로 말을 한다. 상식은 당황하고, 의도치 않게 성질을 낸다. 그렇게 말싸움이 오가게 되고, 사장은 상식이 진짜 아빠가 아니라는 걸 눈치채게 된다. 당황한 병태는 자리를 뜨려다가 경찰이 단속을 나온 걸 보고 사장에게 재빨리 알린다.
노래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 순간 하나가 되어 불을 끄고 숨죽여있고, 일이 무난히 넘어가자 사장은 병태에게 돈 이야기는 없던 걸로 하자고 한다. 그렇게 일이 모두 정리되고, 상식은 아들 생일선물로 운동화를 사서 그를 만나려 전화하나, 돌아오는 답변은 자신의 무책임함에 대한 비난. 결국 상식은 고생을 해서 산 운동화를 알바를 하고 있는 병태에게 건넨다.
이 영화에서 보이는 메인 갈등은 상식과 병태 사이에 존재하는 신경전과 노래방 사장에게 해야 하는 사과로 빚어지는 갈등이지만, 상식의 진짜 목표는 병태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자신의 아들에게 생일 선물을 해줌과 동시에 그간 아버지의 몫을 다하지 못함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사과를 하는 것이다. 병태와 사장과의 갈등은 무탈히 해결되나, 진짜 목표인 아들과의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영화와 삶이 끝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의 아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병태에게 아들 선물로 샀던 운동화를 줌으로 어떤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강두가 정작 구하고 싶던 딸은 구하지 못했지만, 소년과 함께 밥을 먹는 <괴물>의 마지막 장면처럼. <열대야>의 엔딩은 상식의 사과를 하지 못하는 버릇과 더불어 그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여지를 남긴다.
살아감에 있어서 어떤 관계는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고, 모든 목표들을 이루며 살 수는 없다. 다만 그 자리에서 무언가를 깨닫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살아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