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서조 Aug 26. 2022

‘빅 피쉬’ 대니얼 월리스 지음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

이 책은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는 아들의 이야기다. 


‘아버지’ 아들이 어렸을 때 아버지는 신이 된다. 

아들이 자랄수록 아버지는 작아진다. 그리고 그 아들은 아버지가 된다. 

옮긴이는 인터넷에서 떠돌던 ‘아버지는 누구인가’라는 글을 소개한다. 

“아버지는 기분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혼자 마음껏 울 장소가 없어 슬픈 사람이다. …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시골 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큰 이름이다.”     

이 세상 여자는 어머니가 된다. 남자는 아버지가 된다. 한 때 ‘어머니날’이 있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등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많다. 

그러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드물다.     


세일즈맨으로 밖으로만 떠돌다가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집에 돌아온 아버지. 

이제 어른이 된 아들은 죽어가는 아버지 앞에서 이제껏 아버지와 한 번도 진정한 대화를 해보지 못한 사실을 깨닫고 필사적으로 아버지가 누구였고,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는지를 발견하려고 한다.      


아들의 삶의 무대에서 오직 ‘조연’이었던 아버지. 

아버지도 한때는 소년이었고 내 청춘과 마찬가지로 한때 청년이었던 것을, 

나는 한 번도 아버지를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라는 이름에 가려졌던 한 남자, 인간이었다는 것을 새롭게 발견한다.      

아버지는 죽어가는 순간에도 아들을 걱정한다. 

아들이 “뭐가 걱정이 되세요? 다음 세상이요?”라고 묻는 말에 

아버지는 “아니다, 이런 멍청아. 나는 네가 걱정이 된다는 말이다. 내 도움 없이 넌 멍청이잖아.” 

“제 걱정은 마세요. 괜찮을 거예요. 잘할 거라고요.” 

“아버지잖니, 내가. 걱정 안 할 수가 없어. 아버지는 걱정하게 마련이야. 내가 아버지잖니.”


죽어가는 아버지는 아들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아들이 ‘좋은 아버지였다’라는 말 한마디를 듣기 원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한다. “누군가가 한 이야기를 기억해준다면 그는 영원히 죽지 않는 거란다. 

진정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아니? 그것은 한 남자가 자기 아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위대하다고 해도 좋아.” 


삶과 죽음이 경계선이 그어지는 이정표가 되는 마지막 날, 

즉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에게 있어 모든 것이 변하게 될 그 날의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말하고 어떤 화해를 할 수 있는가.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예요.” 아버지는 “고맙다” 

오로지 그 말 한마디를 들으러 먼 길을 달려왔다는 듯이, 유언은 사후 세계를 여는 열쇠다. 그것은 마지막 말이 아니라 비밀 암호다. 그 말이 나오면 이제 떠날 수 있다.     


남자들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인내를 타고난 여자와는 태생적으로 달랐다. 

남자들이 밖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원시시대 남자들이 나가서 짐승 사냥을 할 때와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다. 그래서 남자들은 늘 어설프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어야 한다. 

몸 하나는 집에, 또 다른 몸은 밖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집에 오면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아내는 거실을 다시 꾸몄고, 아들은 너무나 빨리 자랐다. 

그래도 그는 한 아이의 아버지였고, 그래서 아버지의 역할을 해야만 했다. 


병원에서 기계에 의존해 연명하고 있는 아버지를 보며 

아들은, “복잡다단하고 정교한 기계들을 봤다. 정말이지, 이것을 생명이라 할 수 있는가. 

의학이 연옥 대신에 고안해낸 생명 유지 장치일 뿐이다. 

모니터를 보면 그가 호흡을 몇 번 하는가도 알 수 있다. 

심장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알려줬다. 

다른 여러 개의 파장선과 숫자는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그것들도 눈여겨봤다. 

사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기계들일 뿐, 아버지가 아니었다. 

기계가 아버지가 되었다. 기계들이 내게 그의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이 세상에 고달프지 않은 직업은 없다. 이 꼴 저 꼴 더러워도 꾹 참고 삼키고 짐짓 의연한 척 웃음으로 넘기는 아버지. 끝없이 외롭고 울고 싶고, 포기해버린 꿈 때문에 괴롭지만 아들에게는 허풍 떨고, 신화 속의 영웅 ‘위대한’ 아버지로 기억되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낯설지 않다. 이 소설이 우리의 가슴에 와닿는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다.     


책 소개     


빅 피쉬. 대니얼 월리스 저, 장영희 옮김. 2019.11.04. 도서출판 동아시아. 263쪽, 12,000원. 


대니얼 월리스(Daniel Wallace) 앨라배마의 버밍햄에서 태어나 에모리대학,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에서 공부. 사업가로 일본에 머물기도 했다. 책방에서 일하면서 습작했다. 1998년 ‘빅 피쉬’가 출판되었다. ‘빅 피쉬’는 영화로 만들었다. 세계 각국에서 번역하여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장영희 – 서강대학교와 뉴욕 주립대학을 졸업, 서강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



매거진의 이전글 김윤나 지음. ‘비울수록 사람을 더 채우는 –말 그릇.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