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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Dec 29. 2022

정수임  『십 대를 위한 감정의 인문학 카페』

지금 마음이 내게 걸어오는 말에 귀 기울여 보세요

   

이 책의 부제목은 ‘지금 마음이 내게 걸어오는 말에 귀 기울여 보세요’이다. 카피로 ‘우리가 밀어내려 애쓰는 부정적 감정에 대한 소중한 이야기’, ‘내 은신처를 너에게도 허락할게’가 있다.     


저자는 “때론 모른 척하고 싶은 마음, 심장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벌게져 화가 나는 마음, 사람들이랑 말을 섞고 싶지 않을 만큼 도망치고 싶은 마음, 제발 혼자 있었으면 싶은 마음들이 불쑥 고개를 내밀 때 슬픔이나 화, 불안이나 죄책감, 질투, 후회처럼 때론 불편하기까지 한 그런 마음들. 이 책은 이렇게 마주하기 두렵고 밀어내고 싶은 마음들이 건네는 이야기들을 감고 있다”라고 한다.     


이 책은 서울의 한 외곽지 비탈진 곳에 무엇을 해도 몇 달 가지 못하고 문 닫는 가게에 할머니가 카페를 차린다. 그곳에는 아르바이트하는 ‘아름’이와 길고양이 ‘루아’ 카페 주인 할머니가 카페를 찾는 방문객들과 차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 형식으로 엮어간다. 읽다 보면 쉽게 우리의 마음(감정)에 관해서 알 수 있게 한다.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 땐, 레몬 생강차.

상큼한 맛의 레몬과 쌉쌀한 맛의 생강을 달콤한 설탕에 절인 후 물에 타서 마셔 볼까? 새콤한 향이 입안에 감돌고 쌉쌀한 끝맛이 맴도는 것 같다. 신맛과 쌉쌀한 맛이 만나 조화로운 맛이 된다.

마음에도 맛이 있다면, 레몬의 강한 신맛이나 생강의 쌉쌀하고 매운맛은 어떤 마음일까? 아마 슬픔, 불안, 후회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마음을 아무렇지 않게 괜찮은 척하며 지낸다.      


우주의 기원에 다양한 가설이 있듯 마음의 기원에도 다양한 가설이 있다. 사실 우주를 이해하기 어려운 만큼이나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다. 만약 마음이 마음대로 되었다면, 그리고 부정적이라 부르는 감정들이 인간의 삶을 힘들게만 했다면 슬프고, 두렵고 아프고, 불안한 마음들이 진작 사라지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부정적인 마음들은 마치 제 역할이 있는 것처럼 우리 옆에 끈질기게 남아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걸까?     


외면하지 않을 용기를 위해, 블랙베리 월계수 차.

사람들이 고민하는 문제들 중에서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중에 마음은 더욱 어려운 존재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하지만, 마음을 먹는 일이 여간 힘든게 아니다. 그래서 마음을 모른 척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외면한다고 해서 문제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더 심각해질 때도 있다. 그때 외면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마음을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볼 용기, 진짜 문제를 바라볼 용기.


잘못과 실패,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의미의 월계수 관. “나는 살아오면서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그것이 내가 성공한 이유다.” -마이클 조던, 미국 농구선수-     


슬퍼하는 걸 두려워하지 마, 오렌지 자몽차.

슬픈 감정은 다른 감정보다 오랫동안 남는다. 충분히 슬퍼하지 않을수록 더욱 그렇다. 사람들이 슬픔을 참으려고 하는 건 슬퍼하는 걸 나약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슬퍼하는 것과 나약한 것이 전혀 다른데도 말이다.

슬픔을 감추면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슬픈 티를 안 낸다고 내가 강한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억눌린 슬픔 때문에 더욱 힘들어진다. 그건 슬퍼서 힘든 게 아니라 슬픔을 억지로 참았기 때문에 힘든 거다.

슬픔은 약한 게 아니다. 인간이기에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 슬픔을 충분히 마음껏 누리고 난 다음에는 비로소 그 슬픔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 내가 지금 슬프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충분히 슬퍼해도 된다. 내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슬픈지 생각해보면,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슬픔을 느끼는 당사자들에게는 충분히 슬퍼하면서 그 슬픔에서 빠져나올 시간이 필요하다. 상실, 이별 등을 받아들이고 슬픈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자연스럽게 내 감정으로 인식하는 과정이다. 이런 감정의 과정을 ‘애도 심리’라고도 한다. 애도는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단계를 거친다. 이 모든 단계를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상황을 받아들이게 된다. 슬픔을 슬픔으로 인정하고 기다려 줄 수 있는 좀 더 따뜻한 세상이 필요하다.

“다른 편으로 가는 유일한 길은 통과하는 것뿐이다.” -헬렌 켈러-     


그냥 아무래도 괜찮은 딸기 라떼.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건 다른 것을 포기한다는 의미도 된다. 그리고 선택하지 않은 것에는 언제나 미련이 남아 ‘제대로 선택한 게 맞을까?’ 하는 불안은 매 순간 찾아오는 감정이다. 불안은 포기한 것들에서도 비롯된다.


우리가 사는 시대가 내일을 예측하기 어렵고 끊임없이 급변하고 있어서, 안정감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사회 전체에 펴져 있는 이 불안은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아이러니 하게도 이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우리에게 있는 결핍이나 문제를 알게 된다. 불안은 우리를 취약하게 만드는 어떤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키라고 보내 주는 마음의 신호다.     


아무리 준비한다고 해도 인간의 삶은 예측하기 어렵다. 어떤 경우에도 불안은 우리를 찾아올 수 있다. 불안은 온전히 피할 수도 완전히 없앨 수도 없는 존재다. 불안 때문에 우리는 조금 더 안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불안을 밀어내기보다는 인정하고 최대한 유연한 자세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불안하다는 것은 아직 선택권은 내 손에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선택을 자신감 있게 받아들일 마음의 힘이다. 좀 어렵거나 실패해도 괜찮다는 태도 ‘아무래도 괜찮아’ 딸기 라떼 처럼 삶을 적극적으로 도전하게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죄책감을 제대로 들여다볼 때 일어나는 일들, 사과 시나몬 차.

죄책감은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감을 가지자고 말하는 마음의 소리다. 마음에 책임감을 느끼고 직접 행동으로 실천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10월 24일은 사과데이다. 사과데이는 미안함을 고백하는 날이다. 무엇보다도 미안하다는 말이 사랑한다는 고백만큼이나 쉽지 않다.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동시에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우리는 살면서 사과를 좀처럼 못하는 일이 많다. 내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어렵고 그런 마음에 다른 이유로 합리화하는 편이 쉽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과하지 않고 지나가면 우리 마음에는 죄책감이 쌓이게 된다.

죄책감은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밝혀 주는 감정이다. 그와 동시에 타협하고 싶은 내 안의 비겁함을 비추는 보고 싶지 않지만 봐야 하는 거울이다. 죄책감이 괴로운 이유는 비겁한 자신의 내면을 보고만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나는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고 싶기 때문이다.      


만들어진 수치심을 경계하며, 고구마 라떼.

달달하고 부드러운 고구마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간식 중 하나다. 그러나 고구마만 먹다가는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럴 때 필요한 건 한 잔의 우유처럼 고구마를 부드럽게 넘길 수 있게 도움을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죄책감이 어떤 잘못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느끼는 것이라면 수치심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와 깊게 관련된다. 주변 사람들로 인해 수치심을 느낄 경우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님에도 수치심을 느껴 자신을 탓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사람’이라는 글자를 들여다보면 ‘삶’이라는 글자를 찾아볼 수 있다. 삶은 사람으로서 살아 있음을 증명해 나가는 과정이다. 수치심을 절망이 아니라 의지로 연결 지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질투가 나의 힘이 되려면, .

누군가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 사람을 내내 신경 쓰고 잘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에는 부끄러움과 죄책감도 동반한다. 마음이 떳떳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으니까. 시기하는 마음을 부정하는 것은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힘든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도 도움이 된다. 궁극적으로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아야 채워지는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일, 자신이 원하는 바를 분명하게 찾는 일부터 하는 것이 좋다.

물은 거기에 어떤 것을 넣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시기심을 넣을 것인지 자신의 마음을 인정할 용기를 넣을 것인지 그것에 따라 그 물은 아주 달라진다.     


이해받지 못한 감정에게 위로를, 쌍화차.

백작약, 숙지황, 황기, 천궁, 대추, 당귀, 계피, 감초를 넣어 만든 쌍화차의 효능은 몸의 기운을 높여주는 것이다. 雙和라는 이름처럼 서로 합하여 우리 몸에 온화함, 평화를 찾아 주는 차이다. 몸의 평화만큼이나 마음의 평화도 중요하다. 마음의 평화를 깨는 감정의 주범 중에 ‘화’가 있다.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다만 어떻게 화내느냐가 중요하다. 내가 왜 화를 내는지, 정말 이 일 때문에 화가 난 게 맞는지 생각해보라. 2003년 네이처에 실린 논문 ‘원숭이들이 불평등한 임금을 거부하다. -카푸친 원숭이 실험’이 있다. 부당하고 불평등하다고 느껴질 때 나타나는 ‘화’라는 감정. 이 화는 부당하고 불평등한 상황을 인식했음을 표현하는 것이고 동시에 이 상황을 바꿔 보려는 의지다.


위로는 아무리 많이 해줘도 부족하다. 위로받을 데가 별로 없다. 집에서 위로받고 싶어도 어느 순간부터 혼만 난다. 어릴 때는 뭘 잘못해도 다 괜찮다고 그랬는데 이제는 맨날 ‘넌 뭐가 문제니? 하는 게 뭐 있니?’ 이런 말만 듣는다. 그러니까 슬퍼지고 화난다.


자기 존중감이 상처 입었다고 보내는 화의 시호를 잘 알아차리지 못하면 원래 내가 부족한 사람인가 보다 하고 자존감이 낮아질 수 있다. 그건 화가 보낸 신호를 잘못 알아차리는 거다. 화는 자신의 존재를 낮추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존재감을 뿜어내고 싶은 마음이다. 화가 나는 이유를 잘 살피고 그 이유의 끝에 만나게 될 ‘나’를 잘 보듬어 주어야 한다.     


과거로 도망치지 않고 오늘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을 위해, 마음 탄탄 유자차.

후회 엄마가 사고를 당하던 날 아침, 나는 엄마에게 버럭 하며 소리 질렀다. 일어나서 아침 먹으라는 소리에 온갖 짜증을 다 냈었다. 끝내 늦장을 부리다 지각하게 되자 또 짜증을 부렸다. 그날, 내가 엄마와 나눈 마지막 대화가 그런 것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잊히지도 않는 그 기억에 내내 후회했다. 왜 그렇게 매몰차게 말했을까? 다정하게 말할 걸.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내가 하지 못한 선택에 대한 가능성을 너무 크게 기대했다. 어쩌면 더 나쁜 결과일지도 모르는데 바꿀 수도 없는 과거를 아쉬어하느라 현재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또 비슷한 후회만 하게 된다.      


겨울 추위에 강한 유자처럼 사람들은 유자차를 마시며 면역력을 키운다. 몸의 상처는 쉽게 볼 수 있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병들어 버린 마음은아주 작은 말 한마디, 아주 작은 행동에도 상처받을 수 있다.     


크든 작든 우리는 실패를 겪고 후회하게 된다. 그런데 후회만 한다면 다음으로 나아갈 수 없고 거기에 묶여 있게 된다. 후회도 중요한 과정이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여실히 깨닫는 과정이다. 중요한 건 후회 다음의 행동이다. 후회는 앞으로 후회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감정이다. 후회가 찾아온다고 자책하지 말자. 그리고 후회의 이유를 잘 살피는 연습을 하자.     


살아가면서 느끼는 우리에게 불편한 감정들을 잘 정리한 책이다. 읽고 내 마음을 잘 다스리면 좋겠다.     


책 소개

십 대를 위한 감정의 인문학 카페. 정수임 지음. 2022.03.31. 팜파스. 176쪽. 13,000원.

    

정수임. 국어교사, 지은 책 『십 대를 위한 동화 속 젠더 이야기』 『성평등』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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