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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Jan 06. 2023

에리자베트 슐룸프 지음  언제나 생의 한가운데에서』

노년의 삶에 관해

   삶은 무엇인가? 유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삶은? 계란’이라고 한다. 한 인간의 평균적인 삶의 형태는 ‘성장-직업교육-직장생활-짧은 휴지기-생의 종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노년의 삶에 관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서양인의 관점에서 쓴 것이다.     


  저자는 독일에서 부부와 가족의 상담 치료를 전문으로 하였다.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이 노년을 맞이하고 보내는 행태와 죽음에 관한 생각들을 정리하였다.


 노년은 우리 삶의 마지막 단계다. 평균 수명의 증가로 오늘날 노년기는 인생 전체의 1/4, 또는 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 인생의 노년기를 적어도 15~20년 이상을 잡아 각자의 방식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진다.      


  심리학자 에릭슨은 ‘성숙한 노년기의 인간을 자신의 인생과 삶의 여정을 긍정하고 인생을 관계이자 총체로 의식하는 독립적인 인간’으로 묘사한다. 융은 ‘인생의 후반은 내적으로 깊어지면서 자신에게로 가는 길을 찾아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은 자기 개인을 완성하는 데 지향점을 둔다.’이 과정을 ‘개성화’라고 부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노화는 마침내 형태가 해체되는 순간까지 진행되는 성장의 연속이며, 그 행태의 해체는 인간 존재의 시원으로부터 확고하게 결정된 원초적인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성장과정을 나침반으로 삼아 노화라는 신세계로 걸어 들어가면 된다. 신체의 생물학적인 변화를 따라가면서 우리는 개개인의 상황에 맞게 노년을 구성해갈 수 있다. 그러려면 건강상으로나 경제적으로 지나치게 힘든 삶을 살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늙어가는 일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지만, 늙은이처럼 사는 것은 아무도 바라지 않는다.     


  은퇴하고 더 이상 일로 거둔 성과를 통해 인정받을 수 없다면 이제 뭐가 남아 있는 걸까? 남는 건 능력이나 성과와는 무관한,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에 대한 사랑뿐이다. 세상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인 나 자신과의 깊이 있는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 사랑을 토대로 한다면 우리는 나이들어가고 늙는 것을 더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충분한 여유를 갖고 호기심을 유지하는 것은 노년기의 사람들에게 좋은 나침반이 된다. 성공적으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늙었지만 활기 있게 사는 것을 뜻한다. 활기 있는 사람은 유연한 벽으로 이루어진, 안이 가득 찬 통과 같다.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점점 더 자신이 생각했던 사람에 가까워져가는 것이 목표일 수 있다.


노년은 우리에게 귀중한 마지막 선물 하나를 더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그 선물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있었던 그대로 인정하고 어느 정도 삶과 화해하게 되면, 노년을 마지막 성장을 위한 도전으로 파악하고 이미 죽음에 다가가 있다면 스스로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확신이 우리를 기다린다.     


  노년의 성장은 크기, 넓이의 증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깊이의 증가를 의미한다. 깊이의 증가란 삶이 더 세분화되고 더 정확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자기 자신을 향한 성장이며 나만의 것, 지극히 개인적인 것, 혼동할 수 없는 것의 지속적인 발전이다. 우리가 노년에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은 자신과의 관계이며, 자신과의 합일, 현재 우리인 것과의 합일이다.


  노년에 우리를 삶과 새롭게 연결시키는 아주 특별한 관계가 주어질 수 있다. 손자손녀들과의 관계가 그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도움 없이 우리 삶 속으로 등장한다. 손자손녀들은 우리를 가족의 최고연장자로 만든다. 그것이 다가 아니다. 그들의 존재는 우리에게 세대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며 연속된다는 확신을 준다. 이러한 우리 자신이 소멸한다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죽음은 우리보다 더 막강하다. 우리는 죽음에 무력하다. 우리는 죽음을 통제하거나 제어할 수 없다. 죽음은 예측 불가능하다. 우리는 죽음에 예속되어 있다. 죽음은 우리에게 견딜 수 없는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세상에서 우리의 의미는 죽음 앞에 무색하다. 죽음은 예외와 인간들 사이의 차이를 모른다.


삶과 죽음, 출생과 죽음은 하나이다. 죽음은 삶의 가장 중요한 이면이다. 살면서 의식에서 죽음을 추방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완전히 삶 속에 존재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기술에 속한다.     


책은 사람의 생각을 전달한다. 읽는 사람과 작가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이 전체가 아니라는 인식만으로도 좋은 것이다. 아무도 체험해 보지 않은 죽음에 관해 저자의 생각을 존중한다.     


책 소개


언제나 생의 한가운데에서. 에리자베트 슐룸프 저, 이용숙 옮김. 2013.08.27. ㈜문학동네. 275쪽. 12,000원.

     

엘리자베트 슐룸프(Elisabeth Schlumpf), 1932년 독일에서 출생, 취리히에서 교육학을 전공 심리학 석사학위 취득, 1978년 취리히에서 부부 및 가족의 상담치료를 위한 심리치료센터 운영. ‘트라우마를 극복한 삶’ ‘불의 괴물이 사는 나라에서’ 등 저서가 있다.


이용숙, 음악평론가 및 전문번역가. 이화여대 독문과, 대학원 졸업,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과 음악학을 공부 서울대학교 공연예술학 박사과정 수료, 연합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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