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미술에서 빈센트 반 고흐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반 고흐는 렘브란트 이후 가장 위대한 네덜란드 화가로 널리 인정받고 있으며, 현대미술사의 표현주의 흐름에 강한 영향력을 미쳤다. 불과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특히 그의 생애 마지막 3년 동안 그린 작품들로 반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명성에 비해 그의 인생은 험난했다. 1888년 가을, 아를르에서 고갱과 공동으로 생활하던 중에 발작을 일으켜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르는 사건을 일으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고흐는 1890년 봄에 파리 근교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정착했지만, 그해 7월 권총으로 자살하고 말았다.
반 고흐보다 140년이나 앞선 시기에 태어나 스스로 한쪽 눈을 찔러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려고 한 조선의 화가가 있었다. 최북이다. 본래 이름은 최식이었는데 30세쯤 스스로 이름을 최북으로 바꿨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이름 북(北)자를 파자하여 七七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칠칠이는 못난이, 바보를 일컫는 속어다. 그는 어떤 곳에도 매인 데가 없는 자유인이었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그리고, 싫으면 죽어도 그리지 않았다. 화가에게 목숨과도 같은 눈을 찔러 가면서 기성의 권위와 강요에 굴하지 않는 기질을 보여 주었다. 최북의 자는 유용, 호는 성재, 기암, 삼기재, 기옹 등을 썼다.
최북은 불같은 성격을 가졌고, 괴팍한데다가 오기와 고집 자만으로 똘똘 뭉쳐져 있어서 기행과 취벽으로 인한 많은 일화가 전해진다. 최북이 금강산의 구룡연을 구경하고 나서 즐거움으로 술을 잔뜩 마시고 취해서 울다 웃다가 “천하 명인 최북은 천하 명산에서 마땅히 죽어야 한다”라고 외치고는 구룡연에 뛰어든 일도 있었다.
최북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찌른 뒤 애꾸가 되어 항상 반쪽 안경을 끼고 그림과 시 공부를 하였으며 술을 좋아했고 나가 놀기를 즐겼다. 조선의 문인 남공철의 ‘金陵集’을 보면 그가 하루에 대여섯 되의 술을 마셨다고 표현하고 있다.
최북은 1748년 2월 부산포를 떠나 그해 윤7월까지 화원인 이성린과 함께 조선통신사를 따라 일본을 다녀왔다. 최북은 전라도 무주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최북은 별명이 최산수인 것처럼 산수화를 잘 그렸다. 최북이 그림을 그린 기간은 1742년 임술년에서 1765년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