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서조 Jun 02. 2023

정승원 저. 『청와대는 건물 이름이 아니다』

사람이 하는 행위 중에서 가장 난해한 것을 꼽으라면, ‘대화’라고 할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는 것, 상대에게 나의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모두 어려운 일이다.

말소리의 높고 낮음, 단어의 의미, 표정, 주변의 상황, 그리고 손발의 움직임 등 말 한마디를 할 때 상대방의 모든 것을 파악해야 한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것이 ‘대화’임에도 우리는 소리와 단어의 의미만으로 상대를 이해한다. 

그래서 오해와 갈등이 생긴다.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해가 생기지 않는 대화와 완벽한 소통이 필요하다.

특히 사랑하는 연인이 생겼다면 더욱 그렇다. 


사업을 하는 협상의 단계, 정치적인 합의를 위해서 등 상대를 이해하고 내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대화가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소통을 잘하고 싶다면 이 책이 필요하다.     


이 책은 기호학에 관한 책이다. 저자가 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강의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기호란 무엇이고 기호학은 무엇인가. 

기호는 우리가 내뱉은 말뿐 아니라, 글, 몸짓, 손짓, 눈빛 등 교과서의 수식, 도로 표지판, 동물들의 언어도 기호에 속한다. 영어로 ‘sign’으로 번역한다. 기호에는 약정된 기호 외에 자연적인 기호도 있다.      


미국의 기호학자 찰스 퍼스는 기호를 “인간의 정신에 대해 어떤 대상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탈리아의 작가 움베르토 에코는 “기호는 어떤 것을 의미 있게 대신할 수 있는 다른 모든 것”이라고 했다.

기호학은 “기호를 통해 이루어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에 관한 학문”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는 하트모양을 보면 사랑이라는 것을 안다.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의 얼굴 등 모두 기호라고 한다. 

그래서 기호학자 찰스 퍼스는 “우주는 기호로 가득 차 있다.”라는 말을 했다.     


페르디낭 드 소쉬르는 퍼스와 함께 현대 기호학의 토대를 만들었다. 

그는 “기호는 기표(記表)와 기의(記意)의 결합이고,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자의적이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컴퓨터’라고 말하면 귀에 전달되는 물리적인 차원의 소리는 기표이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미’는 기의다.      


현실의 언어 현상이나 언어의 변화 과정은 한 기호 내의 기표와 기의 관계가 계속 변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흑인’ 하면 19세기 미국에서 통용된 ‘흑인’이라는 기표에는 ‘노예’ ‘사람이 아닌 존재’라는 기의記意가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흑인 중에서 미국 대통령이 나오는 세상이 되었다. 


이처럼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자의적인 동시에 역사적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한 단어와 그것이 가리키는 뜻 사이의 관계는 변할 수 있다.     

사물은 ‘사용 가치’, ‘교환 가치’, ‘기호 가치’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기호 가치’는 ‘상징 가치’라고도 한다. 


한 사물이 의미를 띠면서 가지게 되는 가치를 기호 가치라고 한다.      

예를 들어 결혼반지는 부부에게 둘의 결혼을 의미한다. 

이 반지를 단순히 돈으로 얼마라는 식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비싼 차를 타고 싶어 하는 이유도 ‘기호 가치’에 있다. 

좋은 차, 비싼 차를 타면 사람들이 부러워한다고 느낀다.      

이처럼 현대인들은 기호 가치를 지닌 상품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여성들이 비싼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논리학에서 연역법, 귀납법, 가추법이 있다.      


연역법은 규칙, 사례, 결과의 순으로 추리하는 방법이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연기가 난다. 아궁이에 불을 땠다. 굴뚝에서 연기가 난다.”     


귀납법은 사례, 결과, 규칙의 순으로 추리한다. 

“아궁이에 불을 땠다. 굴뚝에 연기가 났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연기가 난다.”     


가추법은 규칙, 결과, 사례의 순으로 추리한다. 

가추법은 ‘가설적 추론’이라고도 한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굴뚝에 연기가 난다. 

연기를 보고 지금 저 집에서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구나”하고 추론한다.


가추법은 퍼스가 이론화하였다. 

가추법은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범인을 추리할 때, 고고학자가 유물에서 연대를 추정할 때 등이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의사소통이다.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해서 의사소통이 잘된다는 보장은 없다. 


의사소통은 송신자가 메시지를 기호에 담아서 수신자에게 전달한다.     

다른 사람과 소통이 잘 안되는 이유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메시지를 코드화하여 기호를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한다는 신호로 상대방의 집 앞으로 갑자기 찾아갔는데, 상대방은 기분이 몹시 불쾌할 수 있다. 

즉, 커뮤니케이션에서 내가 보낸 메시지를 상대방이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상대방이 코드화하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에는 불확실성이 동반한다. 

송신자가 전달해주는 메시지를 수신자가 제대로 해독하지 못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에는 어느 정도 노이즈, 즉 잡음이 생긴다. 

잡음 없는 투명한 의사소통을 원하지만, 현실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의 불확실성이나 잡음 때문에 우리 삶에 여러 가지 갈등과 오해가 발생한다. 


직장, 학교, 집에서 힘들어하는 원인의 대부분은 일 자체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트러블이 생기거나 오해가 계속 발생하면,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는 문제가 없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팁 다섯 가지.

첫째, 대화의 맥락을 확인하고 조사하는 것이 소통의 출발점이다. 어떤 상황에서 그 말을 했는가?

둘째, 상대방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상대방의 말이나 글을 못 알아듣겠다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그 사람에게 직접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가능한 상세한 설명을 부탁해야 한다.

넷째, 내가 한 말을 잘 이해 못 할 때, 그 사람에게 말하고 싶은 의도를 차근차근 설명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내가 상대방에게 품은 감정을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언어와 기호의 경이로움은 직접적인 의미 외에도 비유적이고 간접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데 있다. 


‘은유’, ‘직유’, ‘환유’ 같은 비유법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해 간접적으로 에둘러서 말하는 표현기법이다.      


인간의 언어 능력 중에서 중요한 것은 비유를 이해하는 능력이다. 

‘문해력’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 역시 이 비유법을 제대로 알아듣는 능력이다.     


직유법은 ‘~처럼’, ‘~같이’, ‘~인 듯’, ‘~듯이’와 같은 연결어를 사용한다. 예, ‘실날같은 희망’.


은유법은 영어로 ‘메타포’라고 한다. 원관념, 즉 말하고자 하는 대상과 보조관념, 즉 비유 사이의 관계가 직접적이지 않고 숨어있다. 엘리엇의 시, ‘사월은 잔인한 달...’     


환유적 표현은 어떤 사물이나 사람의 부분을 가지고 그 사물이나 사람을 표현하는 것. 이 책의 제목같이 ‘청와대’라면 집을 표현하는 것보다 ‘대통령’을 상징하는 것과 같다.     


역설법은 겉으로 보기에는 자기 모순적이고 불합리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 기법. ‘지는 것이 이기는 것’ 등.     


특히 詩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알아야 한다.

첫째, 시에 사용되는 시어의 의미는 사전적인 의미와 다르다.

둘째, 알아야 하는 것은 은유, 환유, 직유, 알레고리 등 비유법이다. ※알레고리(allegory) 풍유법, 암시하고자 하는 어떤 추상적인 내용이나 사상을 구체적인 다른 사건이나 이야기로 바꾸어 표현하는 방법. 예, 이솝우화

셋째, 모든 예술 텍스트는 자기만의 구조와 체계를 가지고 있다. 시는 음운, 음절, 단어, 구, 문장, 연, 전체 시 단위로 구성(구조화) 되어 있다.     


이항 대립(binary opposition) 인간이 세상을 기호로 분절하는 기본적인 방식은 이분법이고, 세계를 인식하는 기본적인 틀은 이항 대립이라고 한다. 이항 대립에서 각 항에 내재한 가치, 의미, 역할, 기능 등은 구조나 체계에 따라 달라진다.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기호는 없다. 

어떠한 기호도 완벽하게 중립적이지 못하다. 

사람들은 영화, 소설 등 이야기와 대중매체, 언론, 학교 교육을 통해 일정한 선입견, 신화를 주입받게 된다. 

자기 자신의 주관을 지니고 자유롭게 살려면 기존의 사회체계가 내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한 번쯤 의심해보고 스스로 가치관과 세계관을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다른 사람과 주로 말로 의사소통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글이나 말보다 신체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눈치는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익힌 생존 능력이다.      


소설 작법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 ‘파불라’ ‘슈제트’ ‘스토리’ ‘플롯’

파불라와 스토리는 현실의 시간 순서에 따라 일어나는 사건 개념이다. 

슈제트와 플롯은 이야기 속의 시간에 따라 발생하는 사건 개념이다. 


이야기 속에서는 순서를 바꿔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오늘날 이미지는 기호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사회적이고 물질적인 효과로서 작용하고 있다.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를 통해 그 사람을 평가할 수밖에 없다.      


나 자신을 완벽하게 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들려주는 다양한 정보들을 통해 자신에 대한 이해가 점점 더 풍성해질 수 있다. 

똑같은 사과 하나를 보아도 나와 타자는 이를 다르게 바라본다.      

사과를 보면서 내가 군침을 삼키고 있을 때 미술학원에 다니는 친구는 정물화를, 어떤 친구는 알레르기 반응 때문에 목이 간지러웠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이와같이 같은 사물을 다양한 관점으로 더욱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다른 존재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 의사소통해야 한다. 

우리라는 존재의 다양한 모습은 결국 타자를 통해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존감을 끌어올리는 방법 중 하나는 자신이 원하는 자아상을 글로 정리하여 계속 되뇌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상태를 계속 말해주면, 뇌가 그런 메시지를 받아들여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런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행동하게 된다. 언어와 기호의 힘은 놀랍다.     


사람의 능력은 어데 까지 일까? 뇌과학, 언어학, 기호학 등 숨겨진 것에 관한 연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 것인지 궁금하다.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또 책을 읽는 방법밖에 없다.     


책 소개     


정승원 저. 『청와대는 건물 이름이 아니다』 - 기호학으로 세상 읽기.  2017.04.28. 도서출판 들녘. 271쪽. 13,000원. 

   

정승원. 대구 생, 경북대학교 노어노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비평공간 클리나멘 연구원.      



매거진의 이전글 앤드류 레더바로우 지음 『체르노빌-앤드류 레더바로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