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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Aug 26. 2023

『가상은 현실이다.』

「페이스북, 알파고, 비트코인이 만든 새로운 질서」

2023년 ‘Chat GPT’가 최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아울러 ‘인공지능’이 관심의 대상이 됐다.     

이 책의 부제목은 「페이스북, 알파고, 비트코인이 만든 새로운 질서」이다. 2019년에 나왔다. 4년 전에 나온 책이다. 그런데 내용이 오늘의 현실을 말하는 것 같다.     


책을 관통하는 내용은 이미 현실은 가상에 의해 이루어졌다. 인공지능의 딥러닝을 위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은 데이터 노동자로 변신하고 착취당하고 있다. 새로운 질서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지금, 이미 벌어지고 있는 정보의 중앙화에 개인의 자유를 찾아야 한다. 그 대안으로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인터넷 ‘브레이브’, ‘비트코인’ 같은 탈중앙을 구현하여야 한다.     


지은이는 에필로그에서 장자의 ‘호접몽’같은 이야기를 한다. 미래가 이미 지나간 시간이라면, 현재는 가상화된 세계가 테스트하는 또 다른 시간-시뮬레이션이거나, 예정된 미래에 도달하기 위해 거치는 단계일 것이다. 오늘의 가상화 혁명은 이미 가상화된 미래로 현재를 끌어가기 위한 역사 운동일 수 있다.      


인류가 가상화를 향해 진화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완성될 시뮬레이션을 더 정교하게 만들기 위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의 오늘은 먼 미래에서 꾸고 있는 꿈인지도 모른다. 라고 말한다.     


플라톤이 말했던 이데아의 세계는 오늘날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을 통해 구현된다. 컴퓨터뿐만 아니라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모든 것들은 클라우드 서버로 옮겨가고 있다. 모든 데이터와 프로그램은 클라우드 서버에서 작동하며, 컴퓨터는 서버 접속을 위한 단말기 역할만 한다. 인간의 기억은 이미지로, 대화는 메시지로, 관계는 그래프로 변환되어 클라우드에 저장된다. 클라우드에 저장된 이미지와 메시지와 그래프는 실재의 기억, 대화, 관계를 지배한다. 인간의 기억은 클라우드를 통해 지배받는다.

우리가 현실의 사물은 그 사물의 이데아가 현실에 비친 그림자이다. 우리가 지각하는 실재의 세계와 다른 이데아의 세계가 있고 이데아의 세계가 진리이고 실재의 세계가 모사본이다. 라는 플라톤의 두 세계 이론     


현대인이 커뮤니케이션 역시 클라우드로 옮겨졌다. 현대인의 커뮤니케이션은 이메일과 메신저를 통해 이뤄지고 이들 전자화된 대화는 주로 클라우드를 통해 작동한다. 인간이 커뮤니케이션이 클라우드로 매개되면서 극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대화는 영원히 삭제되지 않는 서버 기록이 되었다. 과거에 대화는 휘발되었고, 말은 뱉는 즉시 증발하였다. 그래서 말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제 모든 말은 이메일, 메신저, 화상채팅 솔루션의 클라우드 서버 깊은 곳에 기록되고 백업된다.     


클라우드는 현실을 무한 복제하고 영구 저장한다. 현실이 클라우드를 거치게 되면 클라우드는 현실을 박제해 영원히 저장하고 인간은 그에 대해 손을 쓸 수 없다. 클라우드는 현재와 과거가 연속적으로 저장된다. 그렇게 실재보다 더욱 역사성 있는 의사-실재를 구축해낸다. 이 가상 세계는 실재를 지배하고 있고, 앞으로는 더 강력히 지배할 것이다.


카메라는 구글 렌즈처럼 현실을 읽는 도구가 된다. 렌즈를 통해 우리는 현실 너머의 인터넷을 브라우징 할 수 있다. 타인의 얼굴을 응시하면 그의 페이스북 프로필을 1초 안에 불러오는 카메라의 등장은 먼 미래가 아니다. 곧 새로운 눈을 통해 우리는 모든 실재하는 대상에 대응하는 가상의 이데아를 마치 육안으로 보듯 볼 수 있을 것이다.      


인스타그램은 현대 그 자체인 동시에 현대에 대한 알레고리다. 인스타그램은 우리 시대의 비밀스러운 진실을 은유적으로 알려준다. #nofilter는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릴 때 찍은 사진을그대로 업로드하며 쓰는 해시태그다. ‘필터 없는 모드’를 뜻한다.

알레고리, allegory. 은유적으로 의미를 전하는 표현 양식으로 주로 문학에서 사용된다. 우의寓意, 풍유로 불리기도 한다.     


가상 세계에서는 팩트를 변질시키는 수많은 필터가 있고 사람들은 필터링된 팩트를 팩트 자체보다 선호한다. 가짜 뉴스 문제는 대립하는 필터 간의 대결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시다. 가짜 뉴스는 더 이상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문제가 아니라, 다른 필터 지지자 간의 무한 대결로 바뀌었다. 모두가 서로를 가짜라고 고발하고 있으며 모두가 자신만이 진실의 편이라 주장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현실에 대해 사소한 견해차를 가진 정도를 넘어, 자신의 필터를 통해 현실을 완전히 재창조해서 이해한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같은 현실에 살고 있지만, 각자가 의미를 두고 살아가는 현실은 각자의 필터로 각색한 가상현실이다. 우리가 같은 현실에서 같은 사물을 보고 있을 것이란 건 커다란 착각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현실 속에 갇혀 산다.     


아마존 고는 현실이 가상으로 편입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아마존 고는 무인 편의점이다. 점원과 계산대가 없다. 소비자는 아마존 고 앱을 고 매장에서 상품을 고른 뒤, 걸어 나오면 된다. 결재는 자동으로 이뤄진다. 이것은 컴퓨터 비전, 머신러닝, 센서 푸전 기술 때문에 가능하다. 이것은 모두 자동주행차량에 쓰이는 기술이다. 인간 노동이 개입할 여지를 완전히 없애버렸다.      


구글의 사이드워크랩 프로젝트는 실재-세계 가상화가 가장 극단적인 규모로 진행되는 예시다. 구글과 캐나다 정부가 토론토 키사이드 지역에 미래형 신도시를 개발하는 스마트 시티 프로젝트다. 사이드워크랩은 소프트웨어처럼 작동하는 도시를 목표로 한다. 도시의 모든 기반 망은 인터넷으로 연결된다. 수백만 개의 센서가 교통, 환경, 범죄 등 도시의 각종 상태를 실시간으로 측정한다. 마치 마인크래프트처럼 도시는 프로그래밍 가능한 대상이 된다. 도시 전역에 공공 와이파이보다 빠른 초고속 인터넷이 마치 전기나 수도와 같은 기본 설비로 제공될 것이다. 도시를 운영하는 모든 프로세스는 가상의 컴퓨팅 환경에서 이뤄진다.     


가상은 실재의 노동을 착취해 스스로를 강화하며 다시 실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한다. 우버의 운전기사는 승객과 경로를 스스로 정하지 않는다. 알고리즘이 승객과 경로를 지정한다. 택시 서비스 이외에도 많은 노동자가 자신을 대체할 고리즘의 개선을 돕는 우버레타리아트적 노동을 하고 있다. 우버레타리아트적 노동은 실제로 그가 수행한다고 믿는 업무와 업무 수행과 함께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알고리즘의 강화를 위한 데이터 산출의 두 가지 층위가 있다. 구글은 최근 인공지능을 만드는 인공지능인 오토ML을 발표했다. 이는 인공지능 알고리즘 설계 시 인간 개발자의 노동이 필요했던 신경망 구조 최적화 작업을 대량의 데이터 학습을 통해 자동화하는 방법론이다. 우버레타리아트적 노동은 가상의 알고리즘을 강화하기 위한 노동이고 이는 곧 노동의 증발로 귀결된다.     


생활에 깊이 뿌리내린 인스타그램은 다양한 촉수로 현실을 빨아들인다. 뉴스피드(과거의 나), 스토리(오늘의 나), 라이브 스트리밍(지금 이 순간의 나)으로 이루어진 인스타그램은 인간의 모습을 다차원적으로 복사해 가상세계에 정교하게 붙여넣는다.      


현대 인간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기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일생 동안 남긴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 누군가 우리를 가상현실 속에서 복원해낼 수 있다. 카메라는 마치 눈과 뇌처럼, 응시한 것을 그대로 기억하는 장치로 진화해나가고 있다.      


카메라 렌즈로 본 대상은 자동으로 저장되고 우리는 그것을 원하는 방식으로 호출할 수 있다. 구글 글래스와 스냅챗의 스펙타클 같은 ‘안경처럼 쓰는 카메라’는 이러한 기술 진화의 시작이다. 본 것을 그대로 촬영하고 저장하는 시각 기억 장치로서 출발점이다. 구글이 최근 발표한 인공지능 카메라 구글 클립스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 클립스는 자동으로 모든 순간을 촬영하므로 촬영 버튼을 누를 필요가 없다. 자동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중요도를 인식해 사진을 찍고 저장한다.     


신체의 활성화된 상태뿐 아니라 비활성화된 상태까지 측정하는 ‘필로우’와 같은 앱은 호흡, 심장박동을 측정해 수면이 질을 점수로 알려준다. ‘라이프섬’은 다이어트를 돕는 앱이다. ‘칼로리 마마’는 음식 사진을 찍기만 하면 자동으로 칼로리 그래프를 그려준다. 여성의 생리 주기 자가측정을 하는 ‘플로, 피리어드, 클루’ 같은 앱도 있다. 금주를 돕는 앱으로 ‘아이엠소버’ 음주, 흡연, 게임 같은 습관을 관리하는 앱으로 ‘쿠트질라’가 있다. 스마트폰을 활용해 정신 건강 영역에 기분과 심리 상태를 자가 측정하는 ‘캄, 퍼시피카, 해피파이’ 같은 앱이 있다. ‘워리 워치’는 심리 상태를 집중 측정한다. ‘포커스 타이머’는 다른 일에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집중한 시간을 측정해준다. 인간을 숫자로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개선하고자 하는 믿음이 소프트웨어 산업의 성장기와 궤적을 같이한다.      


봇은 웹상의 특정한 작업을 자동화된 방식으로 처리하는 프로그램이다. 가장 오래된 봇은 검색엔진으로 웹크롤러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챗봇 ‘샤오이스’는 인간과 교감할 수 있도록 설계된 봇이다. 구글어시스턴트 같은 디지털 어시스턴트는 컴퓨터뿐 아니라 스피커, 자동차, 냉장고 등의 도구를 지능화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봇이다.     


악의적인 일을 위한 악성 봇도 많다. 대표적인 악성 봇은 스팸봇이다. 봇과 진짜 유저간의 구분도 어려워지고 있다. 봇은 수십 명이 유저 프로필을 조합해 가짜 프로필을 만들어내고 봇끼리 팔로잉하고 자기 피드에 자동을 포스팅을 남겨 실제 유저인 것처럼 위장한다. 실제로 페이스북은 2018년 2분기 동안 13억 개의 봇을 포함한 가짜 계정을 정지시켰다고 밝혔다.      


봇은 가짜 여론 형성뿐 아니라 반대파의 커뮤니케이션을 차단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중국 정부가 자국 인터넷 검열을 위해 쌓은 디지털 ‘만리방벽’이 굳건히 서 있다. 오늘날 여론은 봇에 의해 인공적으로 형성되며, 우리는 그 인공적 여론에 무 비판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우리의 의견이 진짜 우리의 것인가? 아니면 봇에 의해 만들어진 프레임인가? 타인을 봇으로 의심하는 것에 익숙한 우리는 더 중요한 질문을 놓치고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정말 봇이 아닌가?     


봇맨은 소셜미디어가 낳은 봇의 쌍생아다. 소셜미디어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연결성을 확장했는데 이를 토대로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은 열린사회가 아닌 적대적 이념 집단들이다. 오늘날 가장 강력한 정치적 그룹은 모두 봇맨을 배양하고 있다.      


가짜 뉴스는 가짜 뉴스가 사용되는 맥락 자체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상대방을 가짜 뉴스라고 규정하는 행위는 은연중에 자신을 진실의 편에 위치시킨다. 자신과 상대의 관점 차이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진짜와 가짜의 대립 구도가 되기 때문이다. 이 프레임 아래서 상대방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교정 대상’이 된다. 대화와 타협 같은 민주적 방식은 폐기 된다. 교화와 처단이 유일한 행동 강령이 된다. 가짜 뉴스는 결코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 반대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프레임이다. 이것은 스스로를 진실된 목소리로 위치시키고 나머지 모두를 가짜 뉴스로 취급하게 하는 편향된 신념을 갖게 한다.     


균형 잡힌 사실을 접한 뒤에도 사람들은 신념을 바꾸지 않는다. 소위 ‘양쪽 이야기’를 다 듣고도 여전히 사람들은 한쪽의 이야기만 믿기를 고수한다. 심지어 자기 신념의 근거가 되는 사실이 가짜라고 밝혀지고 나서도 신념을 바꾸지 않는다. 이러한 ‘신념의 도약’은 오늘날 인터넷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다.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실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객관적으로 일어난 일이지만, 진실은 그가 사실이라고 믿는 무엇이다. 알려진 사실 뒤에 감춰진 진실이 진짜이며 자신은 진실의 편이라는 것이다.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될 때 현실은 결국 나의 진실이 지배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팩트체크 도구를 만들어 가짜 뉴스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 역시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전기는 인류가 생산하는 방식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인류가 생활하는 방식까지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이번 세기에 전기와 같은 혁명적인 기술이 있다면 그것은 인공지능일 것이다. 딥러닝은 인간의 뇌 신경 회로를 모방한 방식이다. 컴퓨터에게 사람이 직접 규칙을 명령하지 않아도 데이터를 통해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하고 자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다. 인간보다 더 잘 보고 더 잘 듣는 것에서 나아가, 인간보다 더 잘 판단하는 컴퓨터라는 인공지능의 최종 이상은 딥러닝 덕분에 실현가능해 지고 있다.     


인공지능혁명을 거치며 인간의 지위는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쳤을 때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 혁명은 과거 기술혁명과 달리, 인간종이 다른 종과 달리 유일하게 갖고 있는 지능 자체에 대한 기술혁명이기 때문이다.     


최근 선보인 딥러닝 기반의 단백질 구조 예측 알고리즘 ‘알파폴드’는 단백질 구조 예측 학술대회에 2018년 처음 출전해 43개의 단백질 중 25개의 구조를 가장 정확하게 예측하며 전 세계 98개의 생화학 연구팀을 제치고 1등을 차지했다. 2등을 차지한 팀은 단백질 3개의 구조를 정확하게 예측했을 뿐이다. 단백질의 접힌 형태가 생명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단백질의 구조 예측 문제는 생화학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현재 알려진 단백질의 서열 정보는 수천만 개 이상이지만, 접힘 구조가 알려진 단백질의 수는 약 6만 개 정도에 불과하다.     


23앤드미처럼 개인 유전자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는 기업과 유전체 과학자들은 개인의 DNA에서 보이는 변화와 개인적 특징 사이 상관관계를 분석해 지능, 성향, 질병이 어떤 단일염기 다형성 패턴과 관련이 있는지를 조금씩 밝혀내고 있다. 미국의 유전자 검사 업체 지노믹 프리딕션은 체외 수정된 배아의 지능을 수정란 단계에서 측정해 평균 IQ에 미달하는 배아를 폐기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 업체는 지능뿐만 아니라 심장병이나 당뇨병, 정신 질환도 수정란 단계에서 유전자 검사로 가려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래의 재판에 인간 재판관과 기계 재판관이 동석하는 것은 공상과학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영국의 더럼 시 경찰은 용의자의 구금을 결정하는 데 ‘하트’라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트는 특정 용의자의 재범률을 3단계로 측정해 구금 여부와 기간, 보석금을 내야 하는지의 여부 등을 제안한다. 하트의 재범률 예측 정확도는 90% 이상으로 알려졌다.     


파놉티콘은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를 뜻하는 ‘opticon’이 합쳐진 단어로 19세기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제안한 원형 감옥 아이디어다. 빈라덴의 은신처를 알아내는 데 기여한 것으로 잘 알려진 ‘팔란티어’는 빅데이터 분석 기업으로 미국의 정부 기관 및 금융기관과 협력해 다양한 데이터 기반 예측과 대응을 돕는다. 팔란티어의 소프트웨어는 사이버 테러방지, 금융사기 감지, 자금 흐름 추적, 폭발물 위치 파악, 실종자 추적, 질병 전파 경로 분석, 스파이 감시, 마약 거래 네트워크 추적, 정부 지출 최적화까지 중대하고 비밀스러운 문제들을 위한 데이터 분석을 제공한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 감시에도 팔란티어의 소프트웨어가 사용되고 있다. 팔란티어라는 이름은 〈반지의 제왕〉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마법사 사루만의 마법 구슬에서 빌려왔다. 그들의 주요 고객은 미국 중앙정보국, 국가안보국, 연방수사국, 국방부, 해병대, 공군, 특수작전사령부, 뉴욕 경찰청, 로스앤젤레스 경찰청이다.     


인공지능의 큰 축인 컴퓨터 비전 기술은 컴퓨터나 기계가 현실 세계를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기계 눈’을 개발하는 기술이다. 컴퓨터가 언어를 이해하도록 돕는 자연어 처리, 말소리를 이해하도록 돕는 음성 인식과 더불어 컴퓨터 비전은 인공지능의 가장 주된 연구 영역 중 하나이다. 컴퓨터 비전은 얼굴 필터뿐만 아니라 자율주행차량이 도로를 감지하는 일, 무인 매장 아마존 고에서 방문고객을 체크하는 일, MRI 결과를 분석하는 일에까지 폭넓게 쓰인다.     


이미 중국에서는 안면인식 기반이 인공지능 디스토피아가 펼쳐지고 있다. ‘텐왕’은 안면인식 기능을 갖춘 대규모 감시 카메라 시스템이다. 2005년 중국 공안부 주도로 구축하고 있는 이 시스템은 베이징과 상하이 등 대도시에 설치된 CCTV로 감지되는 행인과 차량의 정보를 분석해 보여준다. 이름 그대로 ‘하늘을 덮는 그물’이다. 텐왕을 통해 2천 명 이상의 범죄자를 체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면인식 기술은 진화 중이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와 인도 과학원은 위장한 개인의 얼굴을 판독하는 딥러닝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선글라스, 안경, 모자, 스카프, 수염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도 그가 누구인지 판독할 수 있다.     


‘얼굴’은 현실 정체성과 디지털 정체성을 잇는 링크다. 카메라가 현실에서 우리 얼굴을 스캐닝하는 순간 디지털 세계에 저장된 우리의 다양한 데이터는 한꺼번에 로딩된다. 카메라가 인식한 얼굴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링크드인 등 소셜미디어에 올려진 프로필 사진과 맵팽되고, 사진과 함께 연결된 수많은 개인 데이터, 이를 테면 이름, 성별, 연령, 이메일, 전화번호, 주소, 직업, 학력, 나아가 관계나 취향, 인터넷 게시판에 남긴 글이나 웹사이트 방문 기록 및 구매 내역까지 불러올 수 있다. 우리는 얼굴을 판독 당하지 않는 것만이 가상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길이란 사실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어쩌면 다가올 미래에 가면은 추적 당하지 않을 자유를 지키는 동시에 기계에 읽히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새로운 럭셔리 상품으로 부활하게 될지 모른다.     


중국이 2020년까지 완성을 목표로 삼고 있는 소셜 크레딧 시스템은 가장 극단적인 빅데이터 기반의 대량 감시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전 국민에게 사회적 신용 점수를 부과하고 점수에 따라 개인에게 다양한 형태의 보상이나 불이익을 준다. 신용 점수는 다양한 데이터를 총합해 결정된다. 정부와 공안 당국이 보유한 데이터뿐만 아니라 소셜미디어나 전자상거래 기업이 수집한 개인 데이터가 반영되기도 한다. 높은 점수를 받은 개인은 세금 혜택을 얻거나 대출 또는 적금에서 이자율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는 세계에서 사회 통제는 게임을 닮아간다. 데이터를 통제하는 가상의 규칙이 인민의 실재를 통치하는 것이다.     


인간은 인공지능을 프로그래밍한다. 동시에 인공지능은 인간을 새로 프로그래밍한다. 인터넷 전반에 침투한 인공지능은 ‘개인화’ 또는 ‘추천 알고리즘’이라는 형태로 인간의 의식을 재-프로그래밍한다. 오늘날 정치는 사회 모든 분야 중에서 알고리즘에 의해 가장 깊게 프로그래밍되는 분야다. 현대인의 정치적 의견은 알고리즘에 의해 코딩되어 있다. 정치적 의견은 사람이 내지만, 그 의견을 인터넷에서 유통하고 확산하고 강화하는 일은 모두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같은 성향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더욱 결속력 있게 묶어내고 다른 성향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배척해내는 형태로 설계되어있다.     


캐나다의 스타트업 ‘라이어버드’는 사람의 목소리를 몇 분 만에 복제해내는 인공지능을 개발했다. 라이어버드는 트럼프나 오바마의 목소리를 활용해 그들이 실제로 하지 않은 하지만 실제로 했을 법한 가짜 연설을 생성해냈다. 구글 딥마인드가 발표한 음성합성 알고리즘인 웨이브넷은 기계 발음의 어색함까지 극복해내어 인간의 발성과 구분할 수 없는 말소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진실보다 신념을 위에 두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이 탈진실 시대가 아닌 ‘다진실 시대’라고 이해한다면, 우리는 오늘의 세계를 매우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확실한 것은 생성적 인공지능 기술이 각자의 진실을 더욱 진실된 것으로 만들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가상이 만들어낸 진실과 실재에서 일어난 사실 사이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데이터의 가치를 석유에 빗댄 ‘데이터는 새로운 석유’라는 구호가 있다. 그 석유가 시추되는 곳은 다름 아닌 우리 삶이다. 우리 삶은 석유의 원산지이지만, 석유를 통해 만들어지는 가치와 이윤을 공유받지는 못한다. 오히려 우리는 데이터를 넘겨준 대가로 피해를 입거나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신은 실체 때문이 아니라 그를 믿는 신도들 때문에 비로서 신이 된다. 인류 역사에서 신은 자신의 모습을 한 번도 드러낸 적이 없다. 다만 ‘신의 이름’을 내건 사건들이 여러 번 일어났을 뿐이다. 오늘날 신이 자리를 차지한 것은 바로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것은 너무 좁은 해석이다. 인공지능이 진짜로 대체하는 것은 절대자다. 문화 기호학적인 차원에서 절대자가 신에서 인공지능으로 바뀐 것은 오늘날 가장 상징적인 변화 중 하나다.      


돈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진화 과정이 인간 못지않게 변화무쌍했다. 선사시대에 돈은 돌, 가축, 조개껍데기와 같은 모습으로 탄생했다. 역사 시대에 들어서며 돈은 뚜렷하게 구분되는 신체를 얻었다.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이다. 근대에 돈은 좀 더 미분화된 형태로 진화했다. 주화나 지폐 같은 화폐다. 오늘날 신용카드 역시 같은 진화의 맥락 위에 있다.      


돌에서부터 금과 지폐를 거쳐 플라스틱까지 인류가 가치를 저장하거나 교환하는 매체, 혹은 돈이라 부르는 것은 역사의 단계마다 특수한 신체를 가졌고 또 그 신체는 변했다. 현대에 이르러 돈은 은행 서버의 디지털 기록으로 바뀌어나가고 있다. 미국 달러의 90%, 영국 파운드의 97%가 실물 형태가 아닌 장부상 기록으로서 존재하며 기록 대부분은 디지털 기록이다. 중국에서는 현금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위챗 결제가 대체하고 있다. 돈은 점점 서버간 통신 기록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달러는 현존하는 가장 큰 가상화폐라고 부를 수 있다.     


비트코인은 돈의 역사상 최초로 아무런 물리적 실체를 갖지 않는 순수하게 가상화된 통화다. 비트코인은 탄생부터 금속이나 종이 같은 실물을 갖지 않았다. 순수한 디지털 코드로 탄생했다. 실물과 전혀 매개하지 않는 비트코인의 가상성은 아직 충분히 그 의미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혁명적인 본질이다. 전 세계 중앙은행이 찍어내는 통화 역시 디지털 장부로 옮겨지며 가상화되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이 은행은 본격적으로 ‘디지털 통화’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 모든 돈은 이미 가상화되고 있다.      


돈은 실체가 바뀌었지만, 그것을 어딘가에 기록한다는 개념은 바꾸지 않았다. 돈은 언제나 기록이었다. 현대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오랜 시간 노동으로 축적한 돈은 단 한 번의 해킹으로 사라질 수 있다. 계좌 기록이 0으로 바뀌는 순간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국가’라는 시스템도 이 기록에 대한 관리자 개념으로 출발했다. 사유 재산을 명문화하고 그를 지키는 것이다. 기록(돈)의 보호가 곧 국가의 탄생 목적이다.     


돈은 정부보다 먼저 탄생했다.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돈은 기원전 3000여 년 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돈이지만, 아마 그보다도 더 오래 전부터 돈은 교환을 필요로 하는 인간 사이에서 존재했을 것이다.     

신용카드의 확산뿐만 아니라 핀테크 혁신으로 인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현금을 활용하지 않게 되었다. 정부가 이 추세를 더 강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현금 억제 정책을 추진하고 이를 통해 돈의 지배력을 높이려 한다. ‘현금 없는 사회’는 개인들의 모든 거래 내역과 소비활동이 중앙화된 서버에 기록될 것이다. 정부는 이 기록을 서버에서 통제하며 모든 자금 흐름과 개인의 경제활동을 세세한 수준까지 감시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금의 소멸은 개인에게는 사생활과 자유가 크게 제약될 수 있다. 현금이 모두 데이터로 대체될 때 우리는 프라이버시와 영원히 작별할 것이다.


비트코인은 현금 없는 사회에서 디지털 현금 역할을 할 것이다. 사람들은 미래에도 추적당하지 않을 자유를 추구할 것이고 이 필요에 따라 암호화된 거래 기술이 개발될 것이다. 그리고 비트코인은 그 필요를 가장 잘 충족시켜 줄 것이다. 가상화된 돈은 이미 우리에게 와 있다. 문제는 ‘어떠한’ 가상 화페를 우리가 원하느냐는 것이다. 중앙화되고 통제 가능한 가상 화폐와 탈중앙화되고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가상화페는 변증법적 관계를 유지해나가며 미래 디지털 금융을 그려 나갈 것이다.     


비트코인은 국가의 가치를 통제하는 우회하는 P2P 디지털 화폐이다. 비트코인이 확산된다면 더 이상 국가는 자신의 가치 체계를 사회 구성원들에게 강제할 수 없게 된다. 세상에는 윤리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개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거래가 있다. 마리화나, 성매매, 낙태 안락사와 관련된 거래들이 이에 해당한다. 비트코인은 이런 민감한 거래와 관련된 윤리적 물음을 가능하게 만든다. 디지털상에서 안전한 익명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비트코인은 ‘코드로 짠 자유주의’다.      


블록체인이 탈중앙 시스템에 기반한 비트코인은 네트워크 참여자에게 더 많은 힘을 돌려준다. 중국이 전 세계 국가 중 비트코인을 가장 강력하게 규제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비트코인과 권위주의는 상호 모순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소프트웨어 중 최초로 기업이나 국가가 개발하지 않은 소프트웨어다. 다가올 디지털 세기의 근본 갈등은 바로 중앙화와 분산화 사이의 갈등이 될 것이다.      


탈중앙 소셜네트워크인 ‘마스토돈’, 탈중앙 클라우드 서비스인 ‘파일코인’이 있다. 우리의 일상을 둘러싼 여러 대의 스마트 디바이스와 수십 개의 어플리케이션은 끊임없이 우리로부터 데이터를 채취하고 있다. 이 데이터가 실제로 무엇이고, 누가 보관하며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지 데이터를 생산하는 당사자로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확실한 것은 이 데이터들은 사용자가 접근 불가능한 인터넷 회사의 중앙화된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되고, 생성 당사자의 관리나 삭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블록체인은 데이터 집중화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아이크가 개발한 블록체인 기반 브라우저 ‘브레이브’는 사용자가 브라우저의 데이터 수집을 차단할 수 있는 등 사용자의 관리 권한을 개선했다.     


인간은 기술을 사용하는 주체로서 기술은 인간에게 사용당하는 도구로서 이해되었다. 하지만 이제 기술은 인간을 도구 삼아 스스로 발전시켜나간다. 인간 혼자 사용자인 것이 아니다. 기술 역시 인간에 대한 사용자, 인간이 기술을 활용해 목적을 달성하듯, 기술 역시 인간을 활용해 자기 강화의 목적을 실현한다. 현대인은 모두 알고리즘 개선을 위한 거대한 메커니컬 터크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자인지도 모른다.

메커니컬 터크 Mechanical Turk. 아마존에서 운영하는 크라우드 소싱 방식의 인력 중개 장터, 반복적인 수작업이 대규모로 필요한 수요자들에 의해 많이 사용된다.     


무서운 세상이다. 인터넷이 나오기 전에는 인간관계가 이렇게 황폐하지 않았다. 이제 숨 쉬는 것조차 조심해야 하는 세상이 됐다. 모르면 무식한 것이다.          


책 소개     

『가상은 현실이다.』 주영민 지음. 2019.06.28. 어크로스출판그룹(주). 351쪽. 16,000원.

    

주영민. 구글 마케터(그로스 매니저). 2014년 구글에 입사했다. 2016년부터 개인 독립미디어 주영민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2019년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글로벌쉐이퍼 40인으로 초청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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