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교수를 만든 백년의 독서」
이 책은 『망치 들고 철학하는 사람들』(범우사, 1995) 개정판이다. 온전한 제목은 「김형석 교수를 만든 백년의 독서」이다.
“다독과 정독의 조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은 많이 읽을수록 좋다.”
책을 읽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서 책을 읽는다. 이야기에 빠져들고 새로운 앎에 집중하게 된다. 책을 읽고 블로그에 공개한다. 나름대로 책을 읽은 소감을 더한다. 100세가 넘은 노교수는 어떻게 독서하고 있나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다.
저자가 중학교에 다닐 때는 일제강점기 시대였다. 국어를 사용할 수 없고 일본어만 사용했다. 특히 학교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면 엄중한 징계가 따랐다고 한다. 이 시기에 두 가지를 깨달았다. 하나는 잘못된 교육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된 것, 하나는 국가와 민족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배운 것이다.
이 시기에 저자가 읽은 책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루소의 『참회록』을 읽었다. 아울러 간디의 자서전과 전기도 읽었다. 간디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큰 감명을 받았다. 모든 식민지는 독립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역사의 교훈, 비폭력이 마침내는 폭력보다 더 큰 결실을 거둘 수 있다는 신념, 정의는 결코 패 하지 않는다는 용기, 인간은 영원한 가치와 목표를 위해 불굴의 투지를 가져야 한다는 교훈 등을 깨달았다. 그 신념과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오늘날과 같이 실리주의와 현실주의에 빠져 있는 젊은이들에게 간디의 사상이 좋은 교훈이라는 생각이다.
독서의 목적은 더 새로운 것을 알고 더 높은 가치를 지향하며 자기 성장에 도움을 얻는 데 있다. 별 의미 없는 대중 소설, 그것도 애로 문학 같은 것을 읽는 데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것은 지혜로운 선택이 못 된다. 그런 내용의 독서에 빠지면 그 사람은 더 귀한 것을 얻지 못하는 불행에 인간적 성장은 물론 학문이나 예술적 가치를 상실하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 독서는 몸의 건강을 위한 좋은 음식물과 같아야 한다. 달콤하다고 해서 건강과 성장에 해로운 독서에 빠져서는 안 된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존재를 삶에 대한 권력의지로 발전시켰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의지이며, 이 삶의 의지는 그 핵심이 권력의 의지라고 보았다. 그것이 강자의 가치관이며 승리자의 신조가 되어야 한다. 역사는 의지력이 없기 때문에 정의도 인정받지 못하며 약자의 윤리와 가치는 무의미하다. 패자에게는 힘이 없기 때문에 정의도 인정받지 못하며 삶의 가치가 자리 잡을 곳이 없다. 이 강자의 윤리를 대신하는 것이 권력의지이며 그 권력의지를 구현하는 사람이 초인이다.
니체는 잡다한 생각과 관념의 노예가 되어 버린 현대인들에게 수많은 말초적 가치관과 세분화 된 도덕관념을 버리고 한두 가지 강자의 윤리와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고 선언했다.
정치는 건전한 상식이어야 하므로 지나치게 극단적인 사상이 사회를 지배하면 절대 다수의 국민에게는 폐해가 된다. 정치와 경제 같은 사회적 성장을 위해서는 귀납적이며 경험주의적인 방향이 유리하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모순과 혁명’ 이론을 따른다.
영, 미 계통의 민주주의는 갈등을 넘어 그것의 해결을 택한다. 어느 사회나 갈등은 있다. 그 갈등을 잘 개선해서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가 발전한다. 적절한 개선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한 단계 높은 개혁을 택해야 한다. 그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역사는 자연히 혁명의 과정을 밟는다. 개선과 개혁을 잘 이루어 낸 사회는 혁명 없이도 사회적 갈등을 잘 극복할 수 있고 그러면 민주주의가 성장한다.
윌 듀란트의 『철학 이야기』라는 책이 있다. 서양 철학의 역사를 재미있게 엮어낸 책이다. 철학자들은 물론 주변 사상가들이 개인적인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되어 있어 누구나 철학은 한 번쯤 해보고 싶은 학문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라파엘 쾨베르 교수는 1893년 일본에 왔다. 도쿄대학교에서 그리스 철학과 미학을 가르쳤다. 어느 날 제자들이 그에게 가장 큰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을 한번 만나 보았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자유로운 사람이 그렇게 드물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예수 그리스도와 성프란체스코 같은 사람은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것 같다고 대답했다. 석가님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아직 석가에 대해서 충분히 연구한 적이 없어 대답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해석학이란 삶의 자각과 발전을 통해 얻어지는 체험과 요해(了解)의 표현이다. 삶은 계속적으로 자각적인 체험을 통해 상승 발전하는 것이며 그 체험의 내용을 밖으로 표현하며 전체적으로 요해하는 작업이 삶의 현실이다. ‘요해’란 지적인 사고나 합리적인 논증은 넘어서 감정과 의지까지도 포함하는 전인적인 이해를 지칭하는 말이다. 합리적인 인식은 부분적일 수 있어도 요해는 전체적이며 언제나 미래로 전진하면서 창조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철학은 철학도의 독점물이 아니라 위대한 종교가, 훌륭한 예술가, 세계 문제를 취급하는 사상가 모두가 지닐 수 있는 학문이다. 일상에서 “네 철학이 무엇이냐?”라는 물음은 “네 생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통한다.
세계 역사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두 악의 세력은 나치의 히틀러 정권과 구소련의 공산주의 정권이다. 공산주의자들은 궁극적인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서 혁명이 정당화되며 그것은 역사의 완성에서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것은 마키아벨리 이후 세계 역사 어디에서 찾아볼 수 없는 권력 독재를 위한 억지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이데올로기가 아닌 어떤 사상이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휴머니즘이 가능할 뿐이다. 휴머니즘은 언제 어디서나 긍정적으로 용납되며 인류가 추구할 올바른 사고방식이다.
도서 선정에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대개 자연과학이나 이공 계열의 책들은 항상 새로운 학설과 이론이 개발되기 때문에 새로운 저서를 읽는 편이 좋다. 그러나 사회과학 분야의 책은 보통 전통적인 책과 새로운 학설의 책을 반반씩 읽는 것이 좋다. 과거의 학설과 사상을 알아야 현재의 이론이나 학문적 성과를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상 및 인문과학 분야의 도서들은 고전적 의미가 언제나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과거의 책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읽히는 것은 물론, 서양인들도 힌두교의 3대 경전인 『베다』, 『우파니샤드』, 『바가바드 기타』에 깊은 관심을 갖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고전은 대개 지성인이면 누구나 읽어 좋을 만한 사상과 철학적 내용, 그리고 역사적 의미를 지닌 책을 말한다. 모든 지성인은 독서를 해야 하고, 어떤 책이 좋으며 꼭 읽어서 도움이 되는가 하는 문제는 독서인 자신이 선별해야 할 일이다. 좋은 책들로 추천할 수 있는 것은 인류와 사회에 선한 교윤과 사상적 유산을 남긴 고전에 속하는 책이다.
로스쿨 제도가 생긴 것은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와 고전적 휴머니즘을 쌓고 그 위에 법적인 기술과 기능을 배운다면 법관이나 법의 실무자로서 자격을 제대로 갖춘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법전을 공부하고 사법고시를 통과한 사람들은 고전적 휴머니즘을 갖추기 어렵다. 법의 기술을 배울 수 있어도 인간과사회를 바르게 이끌어 갈 자질을 갖추는 점에서 뒤진다고 할 수 있다. 법은 알지만 인간을 모르는 지도자보다는 인간을 이해하기 때문에 법적 기술이 정당하게 평가되는 법치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고전 저작들을 찾아 읽는다는 것은 지성인과 지도자로서는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보아도 좋다.
독서의 영역은 한없이 넓으며 우리 삶과 사상의 영역이 그대로 독서의 한계와 합치된다고 볼 수도 있다. 지금 우리는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를 걱정하고 있다. 황금만능 사상도 그 하나이며, 생명과 인간에 대한 존엄성의 상실도 지적할 수 있다. 청소년들이 비판 없이 유행을 좇는 가치관의 문제도 가벼이 볼 수 없다. 경제는 성장했다고 하나 그 정신적 후유증은 앞으로 점점 더 심각해질 것 같다. 이 모든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모색하는 길은 무엇인가. 확실한 방법 중 하나가 언제나 독서하는 국민, 책을 가까이하는 민족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가치관의 문제는 물론이고 도덕적 기강을 바로잡는 길도 건전한 독서와 더불어 이루어져야 한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애독자 여러분들의 '응원하기'는 작품 연재에 큰 힘이 됩니다.

책 소개
『백년의 독서』 김형석 지음. 2021.05.26. 비전과리더십. 264쪽. 14,000원.
김형석. 1920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났다. 일본조치대학교 철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시카고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의 연구 교수를 역임. 대한민국 1세대 철학자. 저서. 『고독이라는 병』, 『영원과 사랑이 대화』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