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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책 52권』

오직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내 인생의 책 52권

by 안서조

이 책의 온전한 제목은 『오직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내 인생의 책 52권』이다.

세상을 바꾸는 힘의 원천이 상상력이라면, 독서는 많은 부분에서 상상력을 제공한다.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책 한 권을 만날 수 있다면 행운이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삶의 모습이 된다. 어떤 선택은 탁월한 선택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선택은 실패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선택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때도 있다.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 탄생)와 D(Death, 죽음) 사이의 C(Choice, 선택)이다.”라고 말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귀결된다. 요즘 ‘선택 장애’나 ‘결정 장애’라는 말이 생길 만큼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다.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자신의 의지로 삶을 개척하여야 한다.


현대 사회가 복잡해져서 그런지 별의별 콤플렉스가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엘렉트라 콤플렉스, 형제간의 적대감을 말하는 카인 콤플렉스 어린이로 남아 있는 피터 팬 콤플렉스, 공산주의와 관련한 레드 콤플렉스, 여성의 심리를 말하는 신데렐라 콤플렉스, 나르시스 콤플렉스, 프로메테우스 콤플렉스 등 이러한 콤플렉스의 기저에는 열등감이 존재한다. 열등감은 자존감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자존감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형성된다. 인간이기 때문에 콤플렉스가 있다. 그러나 너무 오래 품고 있을 필요는 없다.


지옥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곳, 바로 현실이 지옥이라고 느낄 때도 있다. 삶이 고통스럽고 희망이라는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그 자체가 지옥일 것이다. 2010년 인터넷 신조어로 한국이 희망이 없는 사회라고 자조하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생겼다. 현실이 지옥이라면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현실을 바꾸려는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까? 지옥 같은 현실이 쉽게 바뀔 리는 없다. 그럼에도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선택해야 한다. 현실에 순응하며 살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자유를 찾을 것인지.


불꽃 여인으로 불리는 로자 룩셈부르크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만이 진정한 자유다.”라고 말했다. 세상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 힘의 논리로 배척하는 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누구라도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스스로 존중받는 길이다. 남자와 여자도 다르고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르다.


때로는 일보다 인간관계가 더 어렵다고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나 직장 동료, 이웃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기도 하다. 개인이 완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다른 사람과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 관계를 잘 맺고 살아가려면 소통과 공감, 그리고 타협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생각만큼 인간관계가 잘 풀리지 않는다. 이런 인간관계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방향을 제시한 사람이 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사상가 한비자(BC 약 280~233)이다.

한비자는 인간관계는 임금과 신하 사이나, 부부 사이조차 철저하게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움직인다고 했다. 그런 관계의 본질을 알고 대처해야 원하는 대로 관계 형성을 할 수 있다고 피력했다. 군주는 절대적 세를 가지고 공평무사한 법을 집행하여야 하며, 효율적인 술로 신하를 통제해야 한다는 ‘법, 술, 세’를 군주가 익혀야 할 통치술로 들었다.


법은 군주가 백성을 통제하는 공개적이고 세세한 규칙이다. 모두 법을 준수해야 하고 누구든지 법을 위반하면 징벌을 가해야 한다. 술은 군주가 신하를 지배하는 은밀한 방식으로 혼자만 아는 비밀병기와 같다. 세는 백성과 신하를 굴복시키는 힘, 권력이다. 법령과 권술을 사용하는데 세력이 따라야 한다. 현명한 군주는 관리들만 잘 감독하고 백성을 직접 다스리지 않는다.


역사는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과거나 현재나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에 잘못했던 일을 똑같이 현재에서도 저지르는 것이 인간이다. 조선시대 사명대사는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라고 말했다. 중국 전한 시대 사마천은 「사기」를 썼다. 인간에 대해 알고 싶다면 「사기」를 읽어 보라.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를 둘러싼 이데올로기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데올로기는 현실 정치 속에 깊숙이 녹아들어 있다. 이데올로기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인간, 자연, 사회에 대해 규정짓는 현실적이면서도 이념적인 의식의 형태를 말한다. 세상에 대한 다양한 인식의 방법과 형태로 세계관, 종교관, 가치관, 사상, 사고방식 등 다양한 신념 체계 혹은 인식 체계를 말한다. 그런데 이데올로기라는 말 속에는 대립과 논란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만큼 상대적이다.


중국 송나라 유학자 주희는 “배움에는 의심을 품는 것이 귀중하다. 작게 의심하면 작게 진보하고, 크게 의심하면 크게 진보하며 의심하지 않으면 진보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명제를 내세워 학문의 진보를 꾀했던 영국의 철학가 베이컨(1561~1626)은 「신기관」을 통해 그것을 증명하려고 했다.

빅토르 위고는 “인간에게는 세 가지 싸움이 있다. 첫째, 인간과 자연과의 싸움이요. 둘째, 인간과 사회와의 싸움. 셋째, 인간과 마음의 싸움이다.”라고 했다. 자신과의 싸움은 가장 어렵다. 선과 악, 양심과 욕심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자기 마음속의 적과 싸워야 한다. 그것은 자신이라는 존재를 찾는 일이며 자신의 인격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자신과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야말로 인생에 있어서 진정한 승리자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두 주인공의 기다림은 인생에서 희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현재는 절망에 가깝지만, 고도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기다림을 끝낼 수도 없다. ‘고도’는 그들에게 희망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고도’가 누구인지 몰라도 절대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누군가 구원해 줄 거라는 희망만이 버틸 수 있는 힘이다.


어린 왕자, “네가 만일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하게 되지.” “너는 나에게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고, 나도 너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야.” “넌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가령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4시에 가까워질수록 난 더 행복해질 거야.”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으로서 도리를 지키며 살면 된다. 도리는 무엇인가?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길. 사회구성원이라면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 기준이다. 상식적인 선만 지켜도 도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망각이 여신, 레테. 저승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망각의 강이 흐르고, 죽어서 저승으로 가는 이들은 이 강물을 마셔야 한다. 강물을 마셔야 이전의 기억을 모두 잃을 수 있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내가 살아온 시간이 지워진다는 것이다. 사람은 살아오는 내내 모든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주 오래전의 일은 기억 못 할 정도로 까맣게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콩깍지 타는 냄새로 어느 가을날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과거의 역사가 자신 안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운명일까?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한다. 만일 자신의 운명을 알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변할까?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사주는 바꾸지 못해도 운명은 바꿀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운명은 정해진 것이라서 바꿀 수 없다고도 한다. 성철 스님은 운명에 대해 “자신의 운명은 오직 자신에 의해 움직일 수 있다. 정해진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것은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다. 네 운명은 네 손안에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입에 달린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으로 인해 네 운명을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사람은 축복받으면서 세상에 태어난다. 죽을 때도 축복을 받으며 떠난다면, 그 사람은 인생을 훌륭하게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삶의 과정이란 태어나서 살다 죽는 것이다. 잘 먹고 잘사는 것, 단순하지만 모든 사람의 목표이다.


가족이란, 그 모든것을 함께 하는 존재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부성애는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부모라는 존재도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 마음과 달리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래서 때론 자식이 상처받기도 하지만, 또 가족 안에서 치유되어야 한다. 처음 피를 팔 때는 누구보다 건강한 피를 가졌는데, 정작 자신을 위해 피를 팔려고 했을 땐 늙어 쓸모없는 존재처럼 취급되었다. 아내라도 이해 해주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허삼관 매혈기-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는 우리에게 많은 의미가 있다. 내가 지켜야 할 것에 자부심까지 있다면 그것은 목숨을 바쳐서 지켜야 한다. 과거는 과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로 이어진다. 그 과거의 뿌리가 깊다면 절대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포기하지 않게 된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도킨스는 문화 유전론인 밈Meme 이론을 주장한다. 밈은 저자가 만든 새로운 용어로 모방을 의미한다. 유전적 진화의 단위가 유전자라면, 문화적 진화의 단위는 밈이다. 유전자는 하나의 생명체에서 다른 생명체에서 다른 생명체로 복제된다. 결과적으로 밈은 유전적인 전달이 아니라 모방이라는 매개물로 전해지는 문화 요소라고 볼 수 있다.


레미제라블, 아프리카 속담에 ‘길을 잃는 것은 길을 찾는 한 가지 방법이다.’라는 말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 길을 잃고 헤맨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길을 잃고 나면 그 길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다음에는 길 찾기가 쉬워진다. 세상 이치도 그렇지 않을까? 누구나 실패할 수 있고 좌절하고 절망에 빠질 수 있다. 그 과정이 있기에 성공도 있는 것이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면 길은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막힌 길이나, 출구조차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 누구의 도움도 없다면 절망의 늪으로 빠지게 될 것이다. 선행은 또 다른 선행을 부르고, 희망은 홀씨처럼 퍼져 나간다.


사람마다 이겨낼 수 있는 정도가 다르고, 사람마다 버텨낼 수 있는 한계가 다르며, 사람마다 벽에 부딪혔을 때 상처 나는 크기가 다르다. 마음에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위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상처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니코마코스의 윤리학, 행복이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만,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란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행복이다. 누구도 불행한 삶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헌법에도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한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의 궁극적 가치는 행복한 삶이라고 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들 니코마코스가 아버지의 행복론을 정리한 것이다.


미국의 저술가 레오 버스카글리아는 “확실한 것에만 묶인다면 그는 노예이다. 그는 자유를 잃은 사람이다. 위험한 사람만이 진실로 자유로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 안전지대는 없다.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자체가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무의미한 안전장치에 의지한 채 아무런 모험을 하지 않는다면 인생이라는 감옥에 갇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도전과 모험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다. 자신의 마음속 두려움에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티베트 속담에 ‘죽음이 먼저 올지 아침이 먼저 올지 알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언제 어떤 식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그래서 죽음을 생각하면 슬프거나 혹은 두렵게 느껴진다. 죽음이 먼저일지, 아침이 먼저일지 알 수 없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죽음이란 그렇게 허망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가 되려면 아름다운 삶이 되어야 한다. 잘 죽는다는 것은 결국 후회 없이 잘 사는 것이다.


자본주의사회가 진행되어 갈수록 중산층은 사라지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두드러져서 양극화 사회를 맞게 된다. 이러한 양극화는 소득 불평등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을 내세운 책이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다. 부의 축적에 따라 자본은 부유층에 더 많이 몰리는 경향을 드러내는데, 이러한 자본에서 나오는 자본소득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아지게 되면 불평등은 심화한다. 소수의 부자에게만 부가 더 쌓이는 양극화가 진행된다. 그리하여 소수의 부자만이 경제, 정치,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회가 되면 부정적인 요소가 많은 사회가 된다.


인디언 속담에 ‘진정한 죽음은 기억에서 사라질 때 온다.’라고 했다. 어쩌면 죽는다는 것보다 기억에서 잊히는 것이 더 서글픈 일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존재해도 존재가 없어지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상실에 대한 슬픔보다 그에 대한 기억이 점점 사라져간다는 것이 더 큰 슬픔이다.


우리의 삶은 존재에 대한 혹은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향한 고행인지도 모른다. 불교에서 말하는 한 번에 깨달음을 얻는다는 ‘돈오돈수’이건 깨닫고도 계속해서 수행해야만 한다는 ‘돈오점수’이건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죽을 때까지 깨달음이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고, 거기에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도 있다. 자신에게 부여된 존재의 의미,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은 인간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네 인생이란 어느 만큼이나 신비로운 것인가. 비바람에 나부끼는 가을 나뭇잎처럼 우리는 얼마나 쉽게 만났다가 또 얼마나 쉽게 헤어지는가. 우리의 눈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 모습, 몸매, 몸짓을 기억하려고 발버둥 치지만, 몇 해만 흘러도 그 눈이 파랬는지 검었는지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때때로 책을 읽고 좋은 글귀를 기억하는 것! 삶의 즐거움이다.


책 소개

『내 인생의 책 52권』 박경남 지음. 2019.12.24. 북씽크. 279쪽. 14,800원.

박경남.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서울디지털창작집단 부대표. 저서, 『소설 징비록』, 『논어힐링: 공자가 생각한 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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