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 연작 소설
요즘 정치 상황이 궤변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맞는 말이라고 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맞을 수도 있지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궤변의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계엄이 정당한 것이다. 아니다, 내란죄다. 판단은 판사가 하고 정치는 정치인이 하고, 국민은 무엇을 해야 할까?
국민은 투표하면 된다. 그리고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내가 지지하지 않았더라도 결과를 인정하고 힘을 합칠 때 발전의 원동력이 살아나고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한 국가의 운명은 소수의 권력자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국민을 팽개치고 권력을 갖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위의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역사가 그것을 말해준다. 임진왜란이 그랬고, 6‧25 한국전쟁이 그랬다. 정신 바짝 차리고 생존을 생각할 때인 것 같다.
※궤변; ① 이치에 닿지 않는 말로 그럴듯하게 둘러대는 구변. ② 논리학에서, 얼른 보기에는 옳은 것 가은 거짓 추론을 이르는 말.(출처, 동아 새국어사전 제5판)
김동식이라는 작가를 『문어』라는 소설집을 통해 알게 됐다. 작가의 경력도 특이하다. 중학교 중퇴, 주물 공장에서 노동하며 온라인 커뮤니티 공포 게시판에 창작 글을 올리며 알려졌다고 한다. 일단 재미있다. 내 취향이다.
작가는 공장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가 그의 글을 보고 “와, 너 진짜 거짓말 잘 친다.”라고 했던 말에서 아예 작정하고 거짓말 판을 깔아 보자는 생각으로 당시 유행하던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고 ‘거짓말 오디션 프로그램’이 방영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제목부터 아예 ‘궤변’이라는 조건을 달고 부담 없이 헛소리한 것이 책이 되었다. 라고, 한다.
이 책은 11개의 ‘궤변’을 소개한다. 「궤변 말하기 대회」는 참가자들이 준비한 궤변을 늘어놓는다. 전국 괴짜들이 반박 불가 궤변 배틀! 이상하지만 재밌어! 재밌지만 심오해! 전국의 괴짜들은 여기 다 모였다. 이것은 궤변인가, 우리가 놓친 진실인가.라고 서두를 꺼낸다.
「사후 보장 보험에 가입하세요」 죽은 다음에 가야 하는 지옥 생활을 꿈으로 대처하는 보험상품이 개발되었다. 지옥에 보낼 시간을 매일 꿈으로 차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나리자는 죽는다」 인간의 삶이 아름다운 이유는 유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다. 그래서 우리는 열정적으로 삶을 산다. 인간의 삶이 영원하지 않기에 에베레스트산 등반이 위대한 것이다. 영원하지 않을 걸 알기에 첫사랑의 입맞춤이 소중한 것이다. 영원하지 않기에 수많은 위인의 업적이 빛나는 것이다. 인간은 영원하지 않기에 아름다운 존재이다.
인류의 축복이었던 필멸은 이제 인류 만의 것이 아니다. 인류가 만들어 낸 모든 것이 필멸 한다. 비유하자면, 「모나리자」와 『죄와 벌』이 늙어서 죽을 거다. 이미 존재하고, 더불어 그 모든 것이 무한하다면, 그것들은 당연한 것이 된다. 당연한 것에는 가치가 없다. 그러나 그것들이 죽는다면, 죽기 때문에 소중하다. 모든 것은 필멸함으로써 빛난다.
「이 세상은 컨베이어 벨트이다」 이 세상은 위험하다. 이 세상은 거지 같다. 이 세상은 때로 지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은 왜 태어나 이 세상을 사는가? 왜? 무엇을 위해? 무엇을 위해 악을 쓰며 경쟁하고, 협력하고, 노력하고, 또 운에 기대고, 살고자 발악하고, 이렇게 악착같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가. 그 이유는 인간은 우주가 만든 제품이다. 대량 생산을 당했기 때문이다. 50세 이전의 죽음은 폐기이다. 하지만 50세 이후의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 그들이 거둬 가는 거다. 인간은 그들의 제품으로 태어났고, 인생이라나 컨베이어 벨트 위의 선별이고, 죽음은 제품 출하이다.
「동물 귀신을 본 적 있나요」 인간은 사망하여 육체의 삶을 마치게 되어있다. 죽음으로 끝날 줄 알았건만 귀신으로서의 두 번째 삶이 남아 있다. 그 삶은 처음이기에 몹시 신기할 거다. 영혼의 삶을 체험할 시간이 없다. 죽어 귀신이 되는 순간, 짐승 귀신 수백 마리가 달려들어서 갈기갈기 뜯어 먹는다.
사람은 하루에 1000명씩 죽는다. 국내 하루 돼지 도축량만 7만 6000마리 이다. 우리 인간은 다시 맹수를 만들어 냈다. 공장식 대량 축산이 스트레스로 미쳐 버린, 인간이 죽어 귀신이 되기만을 기다리는 그 잡식 맹수들. 이러해서 인간은 사후 미친 짐승들의 먹잇감에 불과하다.
「죽음은 살아 있다」 우주 전체의 26%를 차지하는 암흑물질이 ‘죽음’이라는 종족이고, 69%를 차지하는 암흑 에너지가 바로 죽음이 결승점을 향해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에너지이다.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어둠’으로 표현한다.
우주가 유지되는 이유는 우주의 95%를 차지하는 암흑물질의 ‘일’ 덕분이다. 죽음이 결승점을 향해 움직이기 때문에 우주라는 현상과 공간이 유지된다. 죽음은 온 우주에 퍼진 결승점을 향해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인간은 존재하는 그 자체로 이 우주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인간과 우주가 하나라는 것이다.
노인들은 죽음을 받아들인다. 부자로 산 인생이나 가난하게 산 인생이나, 후회되거나 만족하거나, 외롭든 풍요롭든, 어떤 인생이었든 간에 그게 헛되지 않았음을 아니까. 이 우주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해 왔으니까.
「이곳은 외계인의 휴양지이다」 인간이 손가락이 왜 열 개일까? 발가락은 왜 열개고 눈은 왜 두 개인가? 외계인이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확히 외계인과 똑같은 생김새로 진화 당했다. 문명도 마찬가지다. 의식주 모두 다 철저하게 외계인이 설계했다. 철근 콘크리트와 강철의 열팽창계수는 신이 건축계에 내려준 선물이라고 불릴 만큼 신기하게 똑같다. 지구의 모든 것은 외계인이 조성한 환경이고, 우리 인간이 탄생하고 진화한 이유는 그 환경을 관리하고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래야만 그들이 지구로 휴양 왔을 때 어색함 없이 편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죽고 싶어야만 죽는 세상이 왔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세상에서 죽음은 굉장히 고귀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가장 전통적인 방식의 죽음이 뭘까? 가장 클래식한 죽음의 방식. 과거 조상이 했던 것처럼, 수명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거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뿌리를 찾는 이들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모든 궤변은 실패한 궤변이다」 궤변을 성공한 궤변과 실패한 궤변으로 나눴을 대, 성공한 궤변은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공한 궤변은 궤변이라는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성공한 궤변은 사람들에게 ‘사실’이기 때문에 궤변이 아니다. 그럼 우리가 알 수 있는 궤변은 모두 실패한 궤변이니까 사실상 모든 궤변은 실패한 궤변이다.
작가의 상상력에 동의한다. 재밌다.
책 소개
『궤변 말하기 대회』 김동식 지음. 2022.07.22. 요다. 198쪽. 13,000원.
김동식. 1985년 경기도 성남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중퇴, 주물 공장에서 노동하며 2016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 공포 게시판에 창작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2017년 『회색 인간』 등을 출간하며 데뷔했다. 10권의 김동식 소설집과 『성공한 인생』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