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앞선 고령사회 리포트」
이 책의 부제목은 「10년 앞선 고령사회 리포트」 이다.
저자는 2000년 초반에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길을 찾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후속편이다.
2022년 일본의 고령화율(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29.1%에 달했다. 75세 이상 초고령자도 2,000만 명을 넘었다. 대한민국도 2025년 초고령사회로 들어선다. 신생아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로 50년 후 없어질 나라로 예견되고, 노인인구는 급증하고 있다. 일본의 앞선 초고령사회 모델을 우리나라에 참고하려는데 이 책의 집필 의도가 있다.
초고령사회 일본에서는 두 가지 현상이 있다. 하나는 새로운 문화의 출현이다. 노인들만의 고령자 중심의 문화가 아닌 중장년층과 젊은 층의 가치관과 생활 습관의 교집합이 커지고 있다. 또 하나는 고령화 정책과 기술이 더 정교해지고 고령 친화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함께 천천히’는 고령사회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핵심 키워드이다. 치매 고령자와 가족, 지역 주민들이 한데 모여 교류하는 치매 카페가 지역 곳곳에 있다. 버스 노선이 폐지되면서 발이 묶인 고령자를 위해 상점가 주인들이 힘을 합쳐 버스와 택시의 중간 형태인 AI 택시를 운행한다.
고령자를 위한 슬로우 계산대를 설치한 대형마트. 고령자의 짝꿍이 되어 스마트폰 조작이나 IT 기기 사용법을 가르쳐주고 말동무도 되어주는 젊은 대학생들이 있다. 치매 환자 배회를 예방하기 위해 ‘버스가 오지 않는 정류장’을 만든다. 기저귀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첨단 케어로 당사자와 간병 가족의 고통을 완화해 준다.
병원과 요양원을 하나로 합치 의료‧간병 복합체가 있고, 마을 전체가 하나의 병원이 되어 혼자 사는 고령자들이 재택 간병을 실현하는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피트니스와 의료가 결합한 메디컬 피트니스로 노인들의 건강을 돌본다. 성인 기저귀를 땔감으로 재활용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평균 연령 60세 이상이 다니는 대학이 있다. 시니어 대학생들은 또 한 번의 학창 시절을 즐긴다. 시내 번화가로 귀환한 시니어들이 젊은이들의 공간에 녹아든다. 유쾌한 시니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여행과 취미를 함께하고, 인생의 마무리도 주체적으로 준비한다.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일본에는 ‘손자의 날’이라는 기념일이 있다. 1999년 일본 백화점업계가 의기투합해서 민간 기념일로 만들었다. 손자의 날은 10월 셋째 주 일요일이다. 일본에서는 손자의 날로부터 딱 한 달 전인 9월 셋째 주 일요일이 ‘경로의 날’이다. 경로의 날 자녀, 손자로부터 받았던 선물이나 축하 편지에 대한 답례를 손자의 날에 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손자의 날’은 테마파크 등 놀이공원, 도쿄 디즈니랜드 등 3세대 패키지 상품이 대목이다. 여행사도 3대가 같이 하는 여행상품을 계속 내놓고 있다. 젊은 고령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연구하는 신어른연구소는 ‘손자의 날에 신발을 선물 하자’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일본 조부모들은 손자를 위해 돈을 얼마나 쓸까? 미쓰비시 총합연구소가 조사한 ‘손자 소비’는 연간 3.8조 엔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 정부는 2015년부터 30세 이하 손자들에 대한 교육자금을 1명당 1,500만 엔까지 비과세로 일괄 증여할 수 있는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
일본 국민 개인은 2,000조 엔이 넘는 천문학적 규모의 금융자산을 갖고 있는데, 이 돈의 60%를 60세 이상이 갖고 있을 정도로 일본 고령자들은 재력이 있다. 저출산, 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살의 대상인 손자들의 수는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늘어나면서 손자 소비 시장이 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유증’이 확산되고 있다. 유언을 통해 자기 재산을 법정 상속자가 아닌 제3 자에게 증여하는 것을 ‘유증’이라고 한다. 제3 자는 비영리단체가 많다. 유산의 사회적 기부라고 할 수 있다. 유증을 흐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속자가 없는 홀로 사는 고령자이다. 유증의 이면에는 초고령사회, 무연고사회라는 민낯이 숨어 있다.
노인 대국 일본에는 팔순이 넘은 인구가 1,230만 명이 된다. 2005년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이후 십수 년이 흘렀기 때문이다. 나이 든 사람이 많다 보니 사망자 수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2022년 기준 연간 사망자 수가 140만 명을 넘어서면서 일본 언론에서는 ‘다사多死 사회’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일본에서는 웰 다잉 대신에 ‘종활’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종활이란 마지막이라는 뜻의 종終과 활동의 활活을 합쳐 만든 조어다. 인생의 끝을 위한 활동이라는 의미로 사람이 스스로 죽음을 의식하면서 인생의 최후를 맞이하기 위한 다양한 준비와 이와 관련한 삶의 총괄 활동을 뜻한다. 종활은 여생의 생활 설계, 생전 정리, 장례, 장묘 준비, 엔딩노트 작성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간병은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에게 정신‧육체적으로 큰 부담이 따르는 일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렵과 힘든 것이 배변, 배뇨를 돕는 일이다. 일본에서는 ‘디 프리’라는 배설 케어 첨단 디바이스를 활용하고 있다. 초음파를 활용해 이용자의 배뇨 타이밍을 예측해 알려주는 웨어러블 디바이스다. 방광 하복부에 초음파센서를 부착해서 방광 내 소변량을 계측하고 그 결과를 블루투스 등 클라우드 통신을 활용해 태블릿 단말기나 스마트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간병자는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배뇨가 필요한 적절한 시점에 개별적으로 배뇨를 유도한다.
일본에 19번째 전문의가 생겼다. 일본의 전문의 영역은 내과, 정신과, 산부인과, 재활의학과 등 18개였다. 2018년 4월부터 종합 진료의가 전문의에 합류하면서 일본의 전문의는 총 19개 분야로 늘었다. 종합 진료의는 ‘일상적으로 직면하는 질병과 상해 등에 적절한 초기 대응과 수요에 따르는 지속적인 진료를 전인적으로 제공하는 의사’로 정의한다. 한국이 ‘가정의’에 해당한다.
고령화는 필연적으로 질병 구조의 변화를 가져온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질환의 수도 함께 늘어난다. 일본 전문 진료의 기구 최근 자료에 따르면 한 사람당 질환 수는 65세 미만이 2.3개, 65세 이상은 4.6개이며, 1인당 수진 진료과도 65세 미만은 2.5개 과에 그친 반면, 65세 이상은 4.3개 과로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에서는 치매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국민적 합의를 거쳐 2004년부터 정부 공식 용어에서 추방됐다. 국민 공모를 통해 ‘인지증’이 치매를 대체하는 공식 용어로 선정됐고, 인지증으로 정착됐다. 일본에서 인지증은 감추고 싶은 가족의 질병이 아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인성 질환으로 받아들여진다.
일본에는 손자뻘 되는 대학생들이 혼자 사는 고령자의 짝꿍이 되어주는 서비스가 있다. ‘못토 메이트’, ‘베스트 파트너’라는 뜻이다. MZ세대가 시니어의 짝꿍이 돼 정기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개별적인 고민과 잠재적 요구를 끌어내고 이에 대응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시행하고 있는 초고령사회 정책이나 방법을 벤치마킹해서 우리 실정에 맞게 활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책 소개
『초고령사회 일본이 사는 법』 김웅철 지음. 2024.02.14. 매경출판(주). 269쪽. 18,000원.
김웅철. 서강대 경영학과 졸업. 같은 대학원 석사. 상명대 박사. 일본 게이오대 연구원. 매일경제신문 도쿄 특파원. 국제부장. 경제방송 EBC 대표. 저서.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길을 찾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