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스 소설
이 소설은 출간 50년이 지나 내셔널 북 어워드 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은 1965년 처음 출간되었다. 1994년 작가가 사망한 후에 2006년 ‘뉴욕 리뷰 오브 북스’ 판으로 다시 출간되면서 ‘빈티지 클래식스’ 판으로 출간되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독자들의 호평이 쏟아지고 네덜란드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다.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의 아름다운 문장과 표현력에 감탄했다. 자연 풍경, 인물 등 모든 소재를 세심하며 아름다운 문체로 현실감 있게 표현하였다.
소설의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는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0년 열아홉 살에 농업을 공부하려고 미주리 대학에 입학한다. 교양과목으로 수강한 영문학에 매료되어 영문학도가 되었고,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8년 공부했던 대학의 종신교수가 된다.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특별할 것이 하나도 없는 평범한 삶이다.
1918년 12월 파티에서 운명적으로 아내가 될 이디스 엘레인 보스트윅을 만난다. 그리고 결혼한다. 주택을 마련하고 딸을 낳는다. 대학에서 보직이나 지위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학문에 대한 열정에 모든 것을 바쳤다. 가정생활은 원만하지 못했다. 아내 이디스는 마음을 꽁꽁 닫아놓고 스토너를 평생 괴롭혔다. 아내는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딸 그레이스마저 스토너에게서 떼어버렸다.
사랑도 없고 희망도 없는 외로운 중년이 된 어느 날 대학원 수강생 캐서린을 만난다. 그에게 캐서린은 첫사랑과 같았다. 불륜 관계로 발전한 사실이 대학과 마을에 소문으로 퍼진다. 대학에서 문제 삼고 징계 절차를 진행한다. 결국 캐서린은 떠나고 스토너는 폭삭 늙는다. 그를 괴롭히던 학과장과 마찰로 직장생활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스토너는 괴팍한 노교수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러든 어느 날 암을 진단받고 수술하지만, 죽는다.
스토너는 평생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과 환경이 좋던 나쁘든 순응하면 산다. 대학 진학도 아버지의 권유로 한다. 아내와 마찰도, 딸에 대한 애정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인다. 한때 캐서린과 일탈이 있었지만, 그냥 거기까지로 끝낸다. 더 발전하거나 이혼해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지만, 포기한다. 공부와 학문 연구에 몰두하고 자신의 몸에 어떤 병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생전 처음 병원에 입원하고 그것으로 인생이 마감된다.
보통의 사람들은 스토너 같이 살아간다. 그냥 인내하고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문제를 일으키거나 일탈하면 가혹한 비난과 주변의 시선을 이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스토너처럼 처음 간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그길로 세상과 작별하는 것이 평범한 인생의 길이다. 뉴스에 보도되지 않는 평범한 삶! 스토너의 삶도 평범했지만 한 권의 소설이 되었다. 누구나 삶은 한 권의 소설이 된다.
그해 1918년 여름에 그는 죽음을 자주 생각했다. 매스터스의 죽음은 인정하기 싫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유럽에서 발생한 최초의 미군 사상자 명단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전에는 죽음을 문학적 사건 또는 불완전한 육체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조용하게 마모되어 가는 과정으로만 생각했다. 전장에서 터져 나오는 폭력이나 파열된 목에서 쏟아져나오는 피를 생각한 적은 없었다. 이처럼 다른 종류의 죽음이 존재하는 까닭, 그리고 그 차이가 지니는 의미가 궁금했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 친구 데이비드 매스터스의 살아 있는 가슴속에서 뜻 보았던 씁쓸함이 자신의 마음속에서도 점점 커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이 마흔셋에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두 사람 모두 수줍어하면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서로를 알아갔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도 하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다가 물러나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에게 억지로 자신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두 사람을 보호해 주던 과묵함이라는 막이 한 층씩 떨어져 나가서 마침내 두 사람은 세상의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이 지극히 수줍어하면서도 서로에게 무방비하게 마음을 열고 함께 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지는 관계가 되었다.
스토너는 아이의 변화를 지켜보며 슬픔을 느꼈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만을 보여주었다. 죄책감이라는 편안한 사치품을 자신에게 허락할 수는 없었다. 타고난 본성과 이디스의 생활이라는 조건을 감안할 때, 지금까지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이런 깨달음이 죄책감 보다 훨씬 더 슬픔을 부추겼고, 딸에 대한 사랑은 더욱 깊어졌다.
아이가 워낙 섬세한 도덕적 본성을 타고났기 때문에 계속 그 본성을 보살피고 키워주어야 하는 드물고 사랑스러운 인간에 속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세상과 이질적인 본성이 도저히 집이라고 할 수 없는 곳에서 살아야 했다. 부드러운 애정과 조용한 생활을 갈망하는 본성이 무관심과 무정함과 소음을 먹고 자라야 했다.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했다. 그를 강타한 것은 국가적인 비극에 대한 감정이었다. 거기서 느낀 경악과 비통함이 무엇에든 배어있어서 개인적인 비극이나 불행은 다른 세상의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이 처해 있는 전체적인 상황의 무게가 워낙 거대했기 때문에 개인적이니 일들에 과한 느낌도 한층 강렬해졌다. 사막에 홀로 솟아 있는 무덤이 바로 주위를 둘러싼 광할한 사막 때문에 더욱 외롭게 보이는 것과 같았다. 무심함에 가까운 연민을 안고 그는 지켜보았다.
이 소설은 특별할 것 없는 한 남자의 인생을 진실하고 강렬하게, 인간에 대한 연민을 품고서 펼쳐 보인다. 소설 자체로서 문학의 힘에 바치는 찬가이며, 슬프고 고독한 삶들을 위한 따뜻한 위안이다.
책 소개.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2024.09.02. (주)알에이치코리아. 575쪽. 비매품.
존 윌리엄스(1922~1994)
1942~45년까지 미국 공군 소속으로 중국, 버마, 인도에서 복무했다. 덴버대학교에서 학사학위와 석사학위, 미주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4년 덴버대학교로 돌아와 30년 동안 문학과 문예창작을 가르쳤다. 저서, 『오로지 밤뿐』 등 네 편의 소설과 두 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김승욱.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뉴욕 시립대학교에서 공부했다.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로 근무했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