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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기술의 문화사』

「핵, 우주, 인공지능, 생명공학으로 본 야누스의 과학기술」

by 안서조

이 책의 부제목은 「핵, 우주, 인공지능, 생명공학으로 본 야누스의 과학기술」이다.

2018년에 나온 책이다. 핵, 우주, 인공지능, 생명공학 네 가지 기술이 전개되어 나간 ‘문화사’를 기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술의 발명, 혁신, 확산의 과정과 기술의 수용자 내지 소비자가 실제로 경험하고 느끼는 기술의 모습을 그려내려고 했다. 그런 점에서 대중매체, 광고, 언론 등 대중문화의 영역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1950년대는 핵전쟁의 공포와 핵 유토피아의 전망이라는 주제로 정부와 그로부터 지원을 받은 기업들이 다양한 용도의 핵기술을 개발하는 구체적 기술 프로젝트들이 등장했다. 그중에는 냉전 상황에서의 군사적 필요에 의해 추진된 것들이 많았다.


원자력으로 도시에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청정하게 공급해 산업도시에 흔히 수반되는 매연이나 우중충함이 사라진 ‘순백의 원자 도시’나 자동차, 세탁기, 심지어 작은 손목시계용 라디오까지 동력을 공급할 수 있는 초소형 원자 전지가 가능할 것이라는 낙관적 예측이 성행했다.


핵에너지의 유토피아적 미래에서 가장 각광받은 분야 가운데 하나는 운송이었다. 소량의 우라늄만 가지고도 엄청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 연료를 재보급하지 않고도 운송 수단에 필요한 동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분야는 육군이 실용화하진 못했지만, 원자력 탱크의 모델을 구상하기도 했다. 2차대전 직후부터 미 해군이 하이먼 리코버 제독의 주도하에 핵잠수함 개발에 착수해 1954년 최초의 핵잠수함 USS 노틸러스호의 진수에 성공함으로써 실용화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핵기술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전망과 유토피아적 전망은 1960년대로 접어들며 모두 크게 쇠퇴했다. 1950년대 열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핵기술의 평화적 응용인 핵발전을 둘러싼 논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1960년대, 냉전과 우주개발의 전망이라는 주제에서는 1968년 12월 아폴로 8호가 처음으로 달의 뒷면을 돌아오는 데 성공하고, 1969년 7월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을 이뤄냄으로써 애초의 목표를 달성했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과 선장인 닐 암스트롱의 유명한 경구 “한 인간에게는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다”라는 말은 미국인들뿐만 아니라 당시 이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고 있던 전 세계 많은 사람을 열광시켰다.


인간을 넘어선 기계, 우리는 사람처럼 생기고 또 행동하는 로봇을 보면서 매혹과 호기심을 느낀다. 각종 과학관이나 박람회에 전시된 로봇들은 많은 관객을 동원하며 큰 인기를 끈다. 로봇이 공장에서, 또 사무실에서 우리의 일을 대신하며 일자리를 빼앗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그런 일이 이미 일어나고 있으니 조속히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로봇 내지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넘어서는 ‘특이점’을 예언하기도 한다.


1940년대와 1950년대에는 핵기술에 대한 열광과 전면핵전쟁에 대한 두려움 양자 모두가 절정에 달했다.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까지는 1930녀대 이후 점차 대중화된 우주개발의 낙관적 시나리오와 1957년 스푸트니크 발사가 빚어낸 우주적 공포가 팽팽하게 대랍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로봇과 인공지능에 대해서 인간에 필적하거나 이를 뛰어넘는 물리적, 지적 능력을 지니고 사람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하인’으로서 이미지와 바로 그러한 능력을 통해 인간에 반항하고 심지어 인간을 지배하려 드는 ‘패륜아’로서의 이미지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1970년대, 생명 조작의 꿈과 그 실현, 20세기가 물리학이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생물학의 시대가 될 거라고 한다. 20세기 전반기는 물리학에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대표되는 ‘혁명’이 진행된 시기였다. 물리학이 지닌 ‘힘’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원자폭탄이라는 극적인 형태로 표출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 초 DNA 이중나선 구조의 규명으로 촉발된 분자생물학의 급부상과 1970년대 DNA 재조합 기법의 개발에서 비롯된 유전공학의 발전은 20세기 후반 들어 과학계의 중심추를 생물학 쪽으로 옮겨놓았다. 이러한 변화는 1970년대부터 ‘기초’ 연구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생의학 분야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이 전개된 사회 분위기의 변모와 무관하지 않다. 생명공학은 과학의 상업적 응용이 강조된 1980년대 이후 흐름을 타고 빠른 속도로 발전해 왔다.


현대적 생물 기술의 출발점은 독일의 효모 기술의 전통에서 시작되었다. 19세기 말 독일에서 맥주 양조는 국가 경제에 대한 기여도에서 철강산업과 비견할 만한 엄청난 영향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따라 발효 기술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대학과 연구소, 맥주 양조 산업에 자문을 제공하는 민간 컨설팅 회사들이 여럿 생겨났다.


1971년 헝가리의 경제학자 카를 에레키는 다양한 생물학적 원재료에 기반한 기술을 가리키는 용어로 ‘biotechnologie’라는 단어를 새롭게 만들어 냈다. 이후 이는 효모뿐 아니라 미생물을 일종의 생물학적 기계로 활용하는 기술을 가리키는 용어로 영미권에 확산되어 쓰이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에 DNA 재조합 기법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축적된 분자생물학의 성과들이 있었다. DNA 재조합 기법의 출발점은 1972년에 스탠퍼드대학의 폴 버그 연구팀이 제공했다. 버그는 박테리아의 유전자가 동물의 세포 속에서 어떻게 발현되는 지에 관심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의 DNA를 잘라 붙인 새로운 DNA 조각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1976년 4월 최초의 생명공학 벤처기업 제넨테크가 설립되었다. 제넨테크는 1977년 11월에 DNA 재조합 기법을 써서 인간 단백질 소마토스타틴 생산에 성공했다. 이듬해 9월에는 인간 인슐린 유전자를 ‘조립’해 낸 후 이를 박테리아에 집어넣어 인슐린 단백질 생산에 성공하였다. 제넨테크가 미국 증시에 상장되었을 때 제넨테크의 주가는 개장 후 불과 몇 분 만에 35달러에서 89달러로 폭등했고, 연구 성공 발표 외에는 아직 시장에 내놓은 상품도 없는 상황에서 몇 시간 만에 3850만 달러의 자본을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DNA 재조합 기법은 새로운 돈벌이의 수단이 되었다.


새로 등장하는 기술에 대해 과장되고 부풀려진 예측이 횡행하고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극단적 전망이 경합하며 이것이 기술의 발전 궤적이나 이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모습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는 나노기술이나 신경과학뿐 아니라 유비쿼터스 컴퓨팅, 합성생물학, 3D 프린팅,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합쳐놓은 새로운 담론으로 최근 각광 받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 모두에서 유효하다.

미래 기술 혁신에 대한 투자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기술에 대한 투자이며, 기술의 발전 궤적은 결코 완전히 예측할 수 없으므로 혁신에 관한 결정은 중요한 의미에서 미래에 대한 기대, 추측, 상상력에 의해 동기부여를 얻을 수밖에 없다.


책 소개

『20세기 기술의 문화사』 김명진 지음. 2018.04.23. 궁리출판. 322쪽. 17,000원.

김명진.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같은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미국 기술사로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국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한다. 번역과 집필 활동도 하고 있다. 저서, 『야누스의 과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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