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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기/분류하기』

문학동네 조르주 페렉 선집 5권

by 안서조

이 책은 문학동네 조르주 페렉 선집 5권이다.

조르주 페렉은 20세기 후반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위대한 작가다. 작품활동 기간은 15년 남짓이지만, 20세기 유럽의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1985년에 출간된 『생각하기/분류하기』는 1982년 3월 3일 조르주 페렉이 죽고 난 후 묶어 편집한 첫 산문집이다.


이 책은 프랑스어를 아는 사람이 읽어야 할 책이다. 저자의 의도와 유머를 알기 위해서 프랑스어로 단어의 의미와 유사어, 동의어 등을 이용한 게임과 같은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예전에 우리말로 유사어나 동의어, 같은 발음의 다른 말 등을 이용한 게임이 있었다. 흔히 ‘말장난’이라고 했다.


‘모색 중인 것에 대한 노트’ 글을 쓰기 시작한 후부터 내가 모색해 왔던 것이 무엇인지 구체화해 본다면, 머리를 스치는 첫 번째 생각은 내가 쓴 책 중에 비슷한 책은 하나도 없고, 먼저 쓴 책에서 구상했던 표현, 체계, 기법을 다른 책에 절대 다시 써보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렇게 계획적으로 부린 변덕 탓에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작가가 남긴 ‘발자국’을 열심히 찾아보고자 한 몇몇 비평가들은 여러 번 길을 잃었고, 분명 내 독자들 몇몇도 당황스러워했을 것이다. 나라면 차라리 여러 밭을 가는 농부에다 날 비유하겠다.


그중 하나에는 사탕무를, 또 다른 밭에는 자주개자리를, 세 번째 밭에는 옥수수 등을 심는 농부 말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쓴 책들은 서로 다른 밭 네 필, 네 가지 질문 방식과 연관되는데, 결국에는 어쩌면 같은 질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게는 매번 각기 다른 문학 작업 양식에 걸맞은 개별적인 관점에 따라 제기된 것들이다.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를 이 글에서 명백히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원문을 그대로 읽어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현대의 글쓰기는 몇몇 드문 경우를 제외한다면 열거하는 기술을 잊어버렸다. 라블레의 목록이라든지, 『해저 2만 리』 속에 나오는 린네식 어류 열거법이라든지, 『그랜트 선장의 아이들』에서 오스트레일리아를 탐험했던 지리학자들을 나열하는 방식이라든지.


내 작업대 위의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볼까 생각한 것은 벌써 여러 해 전이다. 그때 썼던 일곱 개 물건 가운데 네 개가 아직도 작업대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그사이에 이사를 했는데도 말이다). 두 개는 바뀌었다. 압지틀을 다른 것으로 바꿨고…. 그리고 책상 위에 있는 온갖 잡동사니에 대해 일일이 그 이름을 명기하며 끝에서 “내가 하는 작업과 나의 역사와 나의 관심사에 대해 말하는 하나의 방식이자, 내 경험이 일부를 이루는 무언가를 막연히 성찰하는 수준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생겨난 중심에서 포착하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행위다. 나는 이 행위에 대해서, 단지 이 행위에 대해서만 말하고자 한다. 이 행위가 이뤄지는 방식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것에 대해 말하고 싶지, 이 행위로 인해 산출된 것(독서, 이미 읽기가 끝난 텍스트), 그 행동보다 앞서는 것에 대해서 말하려는 게 아니다. 요컨대 근 활동학(생리학, 근육의 운동)과 사회생태학(시공간적 환경)적 관점에서 본 독서의 경제학과 같은 어떤 것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읽는다는 것은 원래 어떤 행위인가 하는 문제로 되돌아가게 하는 독서, 즉 정확히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떻게 차례차례로 결정이 내려지는지, 순간적으로 어떤 선택이 이루어지는지, 사회생활의 연속체에 어떤 총체적 전략이 들어 있기에 우리가 아무거나 읽긴 해도 아무렇게나, 아무 때나, 아무데서나 읽지는 않게 되는지 하는 문제와 같은 것이다.


‘눈’, 우리는 눈으로 읽는다. 읽는 동안 눈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복잡한 문제로, 이는 내 능력 밖의 일이고, 이 논문 범위에서도 벗어난다. ‘목소리, 입술’ 입술을 움직이며 읽는 것은 교양 없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손’ 읽는 데 곤란을 겪는 사람은 맹인만이 아니다. 손이 없는 사람 역시 그렇다. 페이지를 넘길 수 없으니 말이다. 손이 하는 일은 페이지를 넘기는 것뿐이다. ‘자세’ 독서하는 자세에 대한 이론은 환경 조건과 너무나도 분명히 관련되어 있어서 그 자체로는 검토가 불가능하다.


서서 읽기: 사전을 찾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앉아서 읽기: 앉는 방법도 수만 가지가 있다. 발을 땅에 붙이기, 발을 의자보다 높이 두기, 몸을 뒤로 젖히기(안락의자, 소파), 책상에 팔을 괴기 등.

누워 읽기: 등을 바닥에 대고 눕기, 배를 바닥에 대고 눕기, 옆으로 눕기 등.

무릎 꿇고 읽기: 그림책을 남기며 읽는 아이들처럼. 이를테면 일본 사람들?

쪼그려 읽기: 마르셀 모스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 쪼그린 자세는 아이에게만 국한되는 흥미로운 자세다. 아이에게 그 자세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대단히 큰 잘못이다. 우리 사회를 제외하고는 모든 인류가 그 자세를 보존했다.”


걸으며 읽기:성무 일과서를 읽으며 헌금을 걷는 사제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손에 지도를 들고 이국의 도시를 산책하는, 혹은 가이드가 준 설명서를 읽으며 미술관 그림 앞을 지나는 여행자도 있다. 손에 책을 들고 큰 소리로 읽으며 들판을 걷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자세는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다.(현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길거리를 걸으면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이 많다. 페렉이 이 글을 쓸 당시는 스마트폰 보급이 안 되었다.)


‘주변’ 독서의 범주를 아주 거칠게 둘로 구분할 수 있다. 다른 일을 하면서 독서를 하는 경우,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책만 읽는 독서가 있다. 첫 번째 독서는 치과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잡지를 뒤적이는 신사에게 적합하겠고, 두 번째 독서는 이가 편안해진 그 신사가 집어 돌아와서 모제스 후작이 쓴 『어느 중국 주재 대사의 기억』을 읽으려고 책상에 앉는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몸’ 신체 기능에 따라 분류해 볼 수도 있다. 양식, 목욕, 자연적 필요, 잠, ‘사회적 공간’ ‘교통수단’, ‘여행’, ‘기타’ 휴가 때 읽기, 온천 요양을 하는 사람들이 독서, 여행자들의 독서. 아파서 집에 누어 있을 때,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회복기에 있을 때 읽기. 기타 등등. ‘독서’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다양하게 글을 썼다. 대단한 능력이다.


‘안경에 대한 고찰’, 앞으로 절대 하지 않으리라 생각되는 일들이 있다. 달로 여행을 간다거나, 심해 여행을 한다거나, 중국어나 색소폰, 에르고도 이론을 배울 일은 없을 것이다. 가끔 그런 일들을 해보고 싶기는 하지만 말이다. 또한 언젠가 현역 장교가 된다거나, 칠레의 발파라이소에서 일하는 하역 일꾼, 혹은 대형 은행의 대리인, 담뱃가게 주인, 농장 경영자, 프랑스의 대통령이 될 일도 없을 것이다. 반면 프랑스인 세 명 중 한 명이 그렇듯, 언젠가는 나도 안경을 쓰게 되리라는 점은 확실하다. 수정체 모양을 조절하는 섬모체근이 점차 탄력을 잃게 되면 눈은 조절 능력을 상실할 것이다.


페렉은 1982년 3월 3일 파리 근교 이브리 병원에서 마흔여섯번째 생일을 나흘 앞둔 마흔다섯에 기관지암으로 눈감아, 유언에 따라 화장 후 파리 페르라세즈 묘지에 묻힌다. 안경에 대한 고찰은 죽기 2년 전 1980년에 발표한 글이다.


이런 문체와 내용의 글을 읽고 쉽게 이해한다는 것은 어렵다. 프랑스어를 잘 안다면 모르지만. 하도 유명한 책이라고 소개해서 읽어봤다.


책 소개

『생각하기/분류하기』 조르주 페렉 지음. 이충훈 옮김. 2015.10.23. (주)문학동네. 191쪽.

조르주 페렉 Georges Perec(1936~1982).

파리에서 태어났다. 이차대전에서 부모를 잃고 고모 손에서 자랐다. 소르본 대학에서 역사와 사회학을 공부하던 시절 문학잡지에 기사와 비평을 기고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1965년 첫 소설 『사물들』로 르노도 상을 받고, 1978년 『인생 사용법』으로 메디치 상을 받으며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45세 이른 나이에 기관지염으로 사망했다.


이충훈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졸업. 프랑스 파리 제4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양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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