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금남 장편소설
백금남 작가의 장편소설 『게이코의 거짓말』은 일본 게이샤 출신 여성 ‘게이코’의 삶을 중심으로, 인간 존재의 진실과 거짓, 희망과 절망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이 책의 카피는 ‘거짓된 대답 뒤에 있는 진실을 찾아봐 진실을 찾는 방법은 단 하나.’이다.
소설의 주인공 게이코는 게이샤인 엄마가 어렸을 때 죽고 엄마의 친구에게서 양육된다. 일본의 전통 예술인 게이샤 교육을 받다가 완료하지 못하고 엄마 친구가 하는 술집에서 일하며 한국 남성 시인 ‘준 오빠’를 만나 짝사랑한다. 엄마 친구가 한국에서 술집을 차려 하는데 같이 와서 한국 생활이 시작된다. 게이코는 한국으로 건너와 술집에서 일하게 되고, 그곳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과 마주합니다. 게이코는 서양 문화의 유입과 사회 변화 속에서 점차 화류계 여성으로 전락한다.
게이코는 그림을 잘 그렸다. 어린 시절부터 소질이 있었다. 그림 공부를 독학으로 하면서 큐비즘에 사로잡혀 큐비즘 기법으로 그림을 그린다. ‘준 오빠’는 게이코가 그린 큐비즘 그림을 보고 감탄하며 서로 연애 감정을 갖게 된다. 작가는 게이코의 삶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큐비즘적 시각으로 해체하고 재조립하며, 세상의 민낯을 드러낸다.
※ 큐비즘(Cubism)이란?
큐비즘은 20세기 초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가 주도한 혁신적인 예술 운동으로, 전통적인 원근법과 사실적인 묘사를 거부하고 대상을 다양한 시점에서 분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핵심 개념
- 입체 분해: 하나의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 형태를 한 화면에 담아냄.
- 기하학적 형태: 인물이나 사물을 입방체, 원통, 구 등으로 단순화하여 표현.
- 평면 강조: 그림의 평면성을 강조하며, 원근법이나 명암을 최소화함.
게이코는 자신이 세상에 속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세상을 속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절망의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그녀는 끝내 희망을 향한 집요한 욕망을 포기하지 않고, 인간 존재의 본질을 향해 나아간다.
콘서트 공연장에서 만난 영국인 아버지에 한국 엄마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 ‘군스’를 동네 막걸리 식당에서 조우하고 그가 여장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게이코가 있는 술집에서 군스와 군스 엄마까지 같이 살게 되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게이코는 외적으로는 강인하지만, 내면에는 늘 진실을 마주하지 못한 고통과 상처가 있다. 그녀는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자문하며,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과 자기 자신 사이에서 길을 찾으려 애쓴다.
그녀가 마주하는 사람들—준 오빠, 술집 손님들, 또 다른 화류계 여성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가며, 이들이 게이코에게 ‘거짓말’을 가르치는 셈이다.
백금남의 『게이코의 거짓말』은 단순한 인간 드라마를 넘어, 문학의 언어로 인간 존재와 사회 구조의 허상에 도전하는 작품이다. ‘거짓말’은 단순한 속임수가 아닌, 인간 삶의 필연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게이코는 삶에 환멸을 느낄 때마다 마약을 하고 술을 마신다. 마약에 취했다가 깨어나면 자신이 타인의 시선 속에서 구축한 허구의 인물이었음을 깨닫고, 진실이란 무엇인가를 되묻는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독자에게 묻는다—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얼마나 진짜일까?
작가는 큐비즘적 기법을 차용하여 시간과 공간, 인물의 인식을 파편화시킨 뒤 다시 조합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한다. 그래서 작품 전개는 일정한 순서로 흐르기보다는, 인물의 기억, 환상, 현실이 뒤섞여 나타나고, 독자는 퍼즐을 맞추듯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어느 날 게이코가 있는 술집에 경찰서장이 손님으로 온다. 주인은 게이코에게 수청을 들게 한다. 경찰서장은 어린 기생을 안고 잔다. 나중에 경찰서장이 준오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게이코는 다시는 준오빠를 사랑할 수 없다는 절망에 빠진다. 자기가 사랑하는 준오빠의 아버지에게 순결을 빼앗겼는데 그 아들인 준오빠를 사랑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게이코는 14살 때 주인 여자의 기둥서방인 왕씨에게 강간당한다. 나중에 묘한 흥분을 느껴 다시 왕씨 방을 찾아 간다. 그때 왕씨가 게이코에게 욕을 하며 나가라고 한다. 이유는 그가 게이코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다. 친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하고 엄마가 일찍 죽고 사랑하는 남자의 아버지에게 정조를 바치고 게이코가 경험하는 삶은 불행과 모멸, 상실로 가득하지만, 그녀는 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가 선택한 마지막 길—그것이 비극이든 구원이든—은 독자에게 인간 존재의 끈질긴 생명력을 상기시켜 준다.
백금남의 이 소설은 단순히 게이코라는 한 여성의 인생사를 넘어서, ‘거짓말’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고 있다. 거짓말은 자기 보호인가, 자기기만인가? 게이코는 사회적 약자였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게이샤’라는 정체성과 거짓된 이미지 속에 숨어 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자신이 타인을 속이는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도 거짓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때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사회가 부여한 정체성은 얼마나 진짜인가?” 혹은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감내하는 위선은 죄인가 생존인가?”
소설은 과거·현재·환상·내면이 복잡하게 얽힌 구조로 진행된다. 이는 단순히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진실이란 한 면으로 규정할 수 없는 다면체’라는 점을 강조하는 장치이다. 게이코의 기억과 현실을 분리해서 보여주며, “무엇이 진짜인가”를 묻도록 만든다.
게이코는 결국, 자신이 ‘속은 피해자’가 아니라, ‘세상을 속이며 살아온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도달해요. 이는 이 소설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이다 “모든 인간은 진실과 거짓 사이 어딘가에서 살아간다.” 절망적 환경 속에서도, 게이코는 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녀가 끝까지 삶을 붙잡는 그 끈이 바로 ‘희망’이다.
하지만 그 희망은 장밋빛 미래가 아니라, “고통스러워도 나답게 살겠다.”는 의지에 가깝다.
이 작품은 ‘거짓말’을 통해 인간 존재와 사회 구조의 민낯을 보여주는 철학적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게이코의 삶이 슬프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건, 그 안에 우리가 숨기고 싶은 모습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 중에서
그러고 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이상한 아이이긴 했었다. 어머니가 술을 팔고 몸을 파는 사이, 나는 담벼락이나 종이에 이상한 그림을 그려대고 있었으니까. 어머니가 있는 방 안 풍경을 그리다가 혼이 난 후로는 무엇이든 사실대로 그려서는 아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려는 풍경이 세부적 묘사를 배제하고 기하학적 형태로 풍경을 단순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대상의 전면과 옆면을 동시에 그려낼 수 있었고, 전체 풍경을 나름대로 그려낼 수 있었다. 사실적 재현에서 벗어나 근원적 표현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나는 나름 미쳐가고 있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나더러 거짓을 그리는 아이라 해서 게이코의 거짓말이라고 했다. 나는 방 안 풍경을 그렸는데, 나타난 것은 원통 같은 그림이거나 도저히 이해 못 할 그림을 그려놓았으니, 그들에게는 거짓말로 비쳤던 것이다.
소설 시작부터 일본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본어와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재미있게 읽었다.
책 소개
『게이코의 거짓말』 백금남 지음. 2025.01.07. 피플워치. 334쪽. 18,000원.
백금남. 제15회 삼성 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 시작. 『등대의 불 밝히기』로 KBS 문학상 수상. 2003년에는 『사자의 서를 쓴 티베트의 영혼 파드마삼바바』로 민음사 제정 올해의 논픽션상 수상. 2014년 대종상 작품상 수상 장편소설 『관상』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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