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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

by 안서조

이 책의 원어 제목은 『GUNS, GERMS, AND STEEL』이다. 부제목은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이다. 초판에 이어 2판은 2005년 12월 15일 나왔다. 1판 15쇄, 2판 143쇄를 찍은 베스트 셀러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분위기가 생각난다.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지식인이 아닌, 아직도 이 책을 못 읽었느냐? 라는 눈총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2판에는 일본 아요이문화가 한국인에 의해 촉발되었음을 밝혀낸 논문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가 추가로 수록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생태학자로서 조류의 진화를 연구하고 있던 때인, 1972년 7월 열대의 섬 뉴기니의 해변에서 만난 뉴기니의 정치인 얄리에게서 받은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썼다고 한다.


현대 세계의 불평등에 관한 질문은 다음과 같이 재구성할 수 있다. 부와 힘은 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분포하게 되었을까? 어째서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은 유럽과 아시아의 민족들을 죽이고 복속시키고 몰살하지 못했을까?


저자는 이 책을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뉴기니는 세계의 육지 면적에서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다양성 면에서 보면 세계적으로도 불균형이라고 할 만큼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현대 세계의 6,000여 개 언어 중에서 1,000여 개가 뉴기니에 집중되어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 특이성 때문에 외부 침입이 많았다. 침입으로 나라가 망했던 적도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내부적으로 분열되었을 때였다.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도 과거와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국민이 정신 차리고 외세에 굴복하는 역사적 비극을 다시 되풀이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특히 정치권의 분열이 극심할 정도이다. 그들은 나라가 망하든, 국민이 고통을 받든 개의치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한 정치 투쟁에 혈안이 되어있다. 어리석은 정치인을 개조하는 일은 결국 국민의 몫이다. 잉카제국의 멸망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이다.


선사시대에 식량 생산이 시작된 시기는 민족마다 달랐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같은 일부 민족은 끝까지 식량을 생산하지 않았다. 고대 중국인 같은 일부 민족은 독립적으로 식량 생산을 시작했지만 고대 이집트인을 포함한 다른 민족들은 이웃에서 배워왔다. 식량 생산은 간접적으로 총기, 병원균, 쇠가 발전하는 데 필요한 선행 조건이었다.


근대에 와서 문자는 무기, 세균, 중앙집권적 정치조직 등과 나란히 행진하면서 정복을 도왔다. 군주나 상인들이 식민지 개척을 위한 선단을 조직할 때도 문서로 명령을 시달했다. 문자가 있음으로써 쉽고 자세하게, 정확하게, 더욱 솔깃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가치가 엄청난 문자를 어째서 어떤 민족은 발달시키고 또 어떤 민족은 그러지 못했을까? 오늘날 일본인과 스칸디나비아인 중에는 문맹자가 거의 없고 이라크인은 문맹자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어째서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는 오히려 이라크가 4,000년이나 앞섰을까?


1446년 한국의 세종대왕이 한국어를 위해 고안한 한글 자모는 중국 글자의 네모꼴 모양과 티베트 승려들의 문자 또는 몽골문자의 알파벳 원리에서 자극받아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세종대왕은 자음과 모음의 형태는 물론이고 한글 자모에만 있는 몇 가지 독특한 특징도 새로 발명했다. 한글과 알파벳은 고립 생태에서 독립적으로 발명되지 않고 아이디어 확산으로 만들어진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이스터섬, 중국, 이집트 등지의 문자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 논쟁의 여지가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게 결함이 있었던 게 아니라면 영국의 백인 이주민들은 불과 몇십 년 만에 문자를 갖고 식량을 생산하고 산업화된 민주주의 사회를 창조할 수 있었는데, 그 대륙에서 4만 년이 넘도록 살아온 원주민은 여전히 문자를 모르는 유랑형 수렵 채집민으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과연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이에 대한 해답은 영국의 백인 이주민들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문자를 쓰고 식량을 생산하고 산업화된 민주주의 사회를 창조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 사회의 모든 요소를 오스트레일리아 외부에서 가지고 들어왔다. 총, 알파벳, 정치제도, 심지어는 병원균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것은 유라시아에서 1만 년에 걸쳐 이루어진 발전의 최종 산물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사회를 창조한 사람들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었다. 그들이 창조한 사회에는 문자도 없었고 식량 생산도 없었으며 산업화도 민주주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오스트레일리아의 환경이 지닌 특징들 때문이었다.


세계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동아시아와 태평양 일대의 인류사회에서 배울 점이 많다. 환경이 역사를 형성한 수많은 사례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와 태평양 일대 사람들도 지리적 환경에 따라 가축화, 작물화할 만한 야생 동식물이 각기 달랐고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여건도 달랐다. 어느 한 부류의 이주민이 여러 가지 다양한 환경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 후손들도 각자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전했다.


지난 1만 3천 년 동안 일어났던 인구 교체 중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은 아무래도 구대륙과 신대륙 사회의 충돌에서 빚어진 최근의 인구 교체였다. 그리고 가장 극적이고 결정적이었던 순간은 피사로가 이끄는 스페인 작은 군대가 잉카의 황제 아타우알파를 사로잡은 순간이었다. 아타우알파는 아메리카 원주민이 이룩한 국가 중 가장 크고 가장 풍요로우며 인구가 가장 많을 뿐 아니라 행정·기술면에서도 가장 발전된 국가를 다스리는 절대 군주였다. 아타우알파가 생포된 사건은 곧 유럽인의 남북아메리카 정복을 상징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유라시아 사회와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 사이에 존재했던 불균형의 주된 궁극적 원인은 병원균, 기술, 정치조직, 문자 등의 차이였다. 이 가운데 식량 생산의 차이와 가장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요인은 병원균이었다. 혼잡한 유라시아 사회에는 전염병이 자주 발생했으므로 많은 유라시아인이 면역성 또는 유전적 저항력을 갖게 되었다. 그러한 전염병에는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페스트, 결핵, 발진티푸스, 콜레라, 말라리아 등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질병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병원균의 대륙 간 차이는 유용한 가축의 차이에서 비롯했다. 혼잡한 인간 사회에서 전염병을 일으키는 세균들은 대부분 가축에게 전염병을 일으키던 유사한 조상 세균이 진화한 것이다. 식량 생산자들은 약 1만 년 전부터 날마다 가축과 가까이 접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유라시아에는 가축의 종류가 많아서 그런 세균도 많이 생겼지만, 남북아메리카에는 둘다 별로 없었다.


아프리카 남북 축은 가축의 전파에 심각한 방해물이 되었다. 적도 아프리카의 체체파리는 트리파노소마를 옮기는데, 아프리카의 토종 야생 포유류는 저항력이 있어서 괜찮았지만 새로 들어오는 유라시아와 북아프리카의 가축들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반투족이 체체파리가 없는 사헬 지대에서 손에 넣었던 소는 반투족이 팽창해 적도 부근의 삼림지대를 통과할 때 살아남지 못했다.


아프리카의 남북 축을 따라 전파되는 속도가 느렸던 것은 인간의 기술도 마찬가지였다. 토기는 기원전 8,000년경 수단과 사하라에 나타났지만, 희망봉에 도달한 것은 1년경의 일이었다. 기원전 3,000년 이전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문자는 알파벳 형태로 메로웨이 누비아 왕국에 전파되었고 에티오피아에도 알파벳 문자가 도달하기는 했지만, 아프리카 나머지 지역에는 독립적으로 문자가 창제되지 못했고, 결국 아랍인과 유럽인이 외부에서 들여왔다.


유럽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던 까닭은 백인 인종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유럽인과 아프리카인의 차이 때문은 아니었다. 그것은 지리적, 생물지리학적 우연 때문이었다. 아프리카와 유럽이 역사적 궤적이 달라진 것은 궁극적으로 부동산 차이에서 비롯한 것이다.


각대륙 사람들이 경험한 장기간의 역사가 서로 크게 달라진 까닭은 그 사람들이 타고난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 차이 때문이었다. 인간 사회의 궤적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적 요소는 무수히 많으며, 대륙마다 제각기 그 양상이 다르다. 그러나 각 대륙의 차이점을 모조리 나열한다고 해서 답이 되지 않는다.


일본인은 누구인가? 1만 2,700년 전 일본 남단의 섬 규슈에서 최초의 조몬 토기가 출토되었다. 그 후 토기는 북쪽으로 전파되어 9,500년 전쯤 오늘날의 도쿄 일대로 퍼졌으며 최북단 홋카이도에는 7,000년 전쯤 당도했다. 일본 남부지역에서 발견된 토기와 그 전파, 초기 조몬 토기의 형태 등은 일본 전역을 통틀어 통일된 형태를 취했다.


기원전 400년경 한반도 남부에서 도래한 새로운 생활 양식과 함께 일본의 두 번째 인구폭발이 촉발되었다. 이 두 번째 변화는 일본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매우 답 하기 어렵게 하는 부분이다. 조몬인은 한국에서 온 이주민으로 대체되었을까? 아니면 일본 원주민 조몬인이 그대로 일본 사회를 지배하면서 새롭고 유용한 기술을 배운 것에 불과할까? 1884년 고고학자들은 벼 잔유물을 출토했으며 특유의 토기를 확인한 후 이 새로운 생활 양식을 ‘야요이’란 용어로 명명했다.


야요이 농경문화는 당시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한 도쿄 북쪽 지역까지 퍼짐에 따라 야요이와 조몬이 뒤섞인 문화가 생겨났다. 일본 문화는 1만여 년간 지속된 조모 시대보다 700여 년간의 짧은 야요이 시대에 훨씬 더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된다. 현대 일본인의 조상은 조몬인일까 야요이인 일까, 아니면 그 둘의 혼혈인일까? 일본에서는 세 가지 학설을 둘러싼 열띤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첫 번째 학설은 조몬의 수렵 채집민 자체가 점차 현대 일본인으로 진화했다는 의견이다.

두 번째 학설은 야요이 시대의 변화가 어마어마한 수의 한국인이 한국의 농업기술과 문화 그리고 유전자를 가지고 이주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현대 일본인은 지난 2,000년간 그들이 고유한 문화를 수정, 발전 시켜온 한국인 이민자의 자손이라는 얘기다.

세 번째 학설은 한국에서 이주가 이뤄졌다는 증거는 인정하지만, 그것이 엄청난 규모였다는 견해는 부정한다. 그 대신 벼농사의 생산성이 높다 보니 수가 적은 이주 식량 생산자들이 조모 수렵 채집민보다 훨씬 빠르게 인구가 늘어나 결국 그들을 압도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조몬인의 두개골이나 골격은 아이누인과 비슷하다. 반면 야요이인의 두개골은 현대 일본인과 가장 닮았다. 현대 일본인이 한국인과 비슷한 야요이인과, 아이누인과 비슷한 조몬인이 혼혈이라는 가정하에 유전학자들은 이 두 유전자 그룹의 상대적인 구성 비율을 계산하려고 한다. 결론은 한국인/야요이인 쪽이 우세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인의 이주는 현대 일본인에게 정말로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경제적 불균등이 부분적으로 인간 제도의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가장 명확한 증거는 동일한 환경인데도 매우 다른 제도 때문에 1인당 국민총생산이 차이 나게 된 나라 네 쌍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은 남한과 북한, 서독과 동독, 도미니카공화국과 아이티, 이스라엘과 아랍 주변국인데, 비교를 바탕으로 명백한 예를 들 수 있다.


각 쌍에서 부유한 나라들을 설명할 때 ‘훌륭한 제도’가 있다. 효과적인 법률 체계와 계약집행, 사유재산권의 보호, 부패의 부재, 낮은 암살 빈도, 무역과 자본 흐름의 개방성, 투자를 위한 장려 등이다. 이러한 좋은 제도들은 당연히 국가 사이의 빈부 격차를 설명할 부분적인 대답이 된다. 빈곤한 나라들이 훌륭한 제도를 발전시키는 것을 그들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많은 정부와 기관, 재단이 그들이 정책과 외국의 원조, 대출 계획을 세울 때는 이 설명을 토대로 한다.


책 소개

『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1998.08.08. (주)문학사상. 710쪽. 28,000원.

재레드 다이아몬드 Jared Diamond.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생리학 박사 학위취득.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교수. 생리학, 조류학, 진화생물학 생물지리학을 공부했다. 그리스어, 라티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등을 구사한다. 한글에 관심이 많다. 저서 『제3의 침팬치』로 영국의 과학출판상, 미국의 LA타임스 출판상을 받았다. 『총, 균, 쇠』는 1998년 퓰리처상 일반 논픽션 부문과 영국의 과학출판상을 수상했다. 그 밖의 저서로 『섹스의 진화』 등이 있다.


김진준. 번역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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