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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단단하게, 채근담』

무너지지 않는 마음공부

by 안서조

이 책의 온전한 제목은 「고요하고 단단하게, 채근담」이다. 카피는 ‘무너지지 않는 마음공부’, ‘400년 전 중국 고전의 지혜와 오늘의 고민이 만나는 철학에세이’이다.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추천했다.

어렸을 때, 달력이 하루에 한 장씩 뜯는 ‘일력’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 ‘일력’에 채근담 구절을 적어 놓은 것을 본 기억이 난다. 채근담은 소책자, 단행본 등으로 우리에게 친근한 책이다. 엮은이는 이 책은 채근담의 다양한 판본 중에서 가장 정통성과 원형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받는 명각본을 기준으로 번역과 에세이 형태의 설명을 추가하였다.라고 책머리에 밝히고 있다.


구성은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절제의 길’,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처세의 이치’, ‘운명과 시련을 대하는 자세-역경 속의 도’,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세상을 초월한 미학’, ‘마음을 비우는 공부-백지의 여백에서’, ‘세상을 비추는 눈-속세를 초월한 관조’. ‘자연과 하나 된 삶-삶의 해탈’ 등 일곱 개 PART로 되어있다.


기억하고 싶은 글귀.

거센 바람과 사나운 바람이 몰아치면 새들도 슬픔에 젖고, 맑은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이 불면 풀과 나무도 기쁨에 찬다. 하늘과 땅도 하루라도 온화한 기운이 없으면 안 되듯, 사람의 마음도 하루라도 기쁨의 기운이 사라져서는 안 됩니다.


인생은 늘 우리의 예측을 벗어나며, 진정한 성숙은 이 기대밖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서 비롯된다.


일이 막히고 형세가 어려워졌을 때는 처음 품었던 마음을 살펴야 하고, 길을 다 걷고 공을 이루었을 때는 마지막 길이 어떤지를 살펴야 한다. 인생의 진가는 시작이나 성공이 아닌, 위기의 순간과 마지막 발걸음에서 드러난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흔들리기 쉽고, 실패 앞에서 자신을 부정하기도 한다.


간이 병들면 눈이 잘 보이지 않고, 신장이 병들면 귀가 잘 들리지 않듯,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긴 병은 결국 눈에 띄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겉으로 드러난 잘못을 피하려거든 먼저 보이지 않는 내면의 허물부터 경계해야 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마음이 그림자일 뿐이며, 삶은 결국 마음이 흘러가는 방향을 따라 드러나기 마련이다.


태평한 세상에서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좋고, 혼란한 세상에서는 융통성을 갖추는 것이 좋다. 세상이 쇠퇴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에는 원칙과 융통성을 함께 써야 한다. 선한 사람에게는 너그러이 대하고, 악한 사람에게는 엄격하게 대해야 한다. 평범한 다수에게는 너그러움과 엄격함을 조화롭게 써야 한다.


청렴하다고 해서 포용력이 없어서는 안 되고, 인자하다고 해서 결단력이 부족해서는 안 된다. 통찰력이 있다고 해서 지나치게 들춰내서는 안 되고, 올곧다고 해서 지나치게 경직되어서도 안 된다. 이는 단맛이 지나치지 않고 짠맛이 너무 강하지 않은 것이야말로 진정한 미덕이라는 뜻이다.


인생은 끝이 어떠한가에 따라 전부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사람이 인격을 평가하는 데는 일생의 초반이나 겉모습보다 마지막 순간의 선택과 태도가 진정한 척도이다. 기생이라도 말년엔 정숙하게 살면 그동안의 화려했던 삶은 허물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정절을 지켜온 부인이라도 노년에 뜻을 저버리면 그동안의 공생과 인내가 모두 헛된 것이 된다. “사람은 마지막을 보고 판단하라”라는 말이 진실한 명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이 마지막까지 바르고 진실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은혜와 덕은 내가 지금 누리는 것이며, 그 축적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되새겨야 한다. 자손이 누릴 복은 내가 남기는 것이며, 그것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늘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이 기반은 조상의 인내와 헌신 위에 세워진 것이다.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기에 그 가치를 기억하고 감사히 여겨야 한다. 우리가 남기는 말고 행동, 삶의 흔적은 다음 세대에게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가족에게 잘못이 있더라도 성을 내거나 쉽게 내치지 말아야 한다. 직접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면 다른 일을 빌려 조심스럽게 넌지시 알려주고, 오늘 깨닫지 못하더라도 내일 다시 부드럽게 일러줄 수 있어야 한다. 마치 봄바람이 얼음을 녹이고 따뜻한 기운이 서서히 얼어붙은 마음을 녹인 듯해야 비로소 가정의 참된 모범이 된다. 이것이 잘 안된다. 가까운 가족이라고 말도 함부로 하고 심지어 매를 들기도 한다. 반성할 일이다.


노년에 앓는 병은 대부분 젊을 때 부주의하여 얻은 것이고, 늙어서 겪는 죄업은 대개 한창때 저지른 잘못에서 비롯된다.


사사로운 은혜를 구하는 것보다 공정한 여론을 돕는 것이 낫고, 새로운 인연을 맺는 것보다 오래된 우정을 두텁게 하는 것이 낫다. 겉으로 드러나는 명예를 세우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덕을 쌓는 것이 좋고, 특별한 절개를 추구하는 것보다 평범한 행실을 성실히 지키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부모 형제 사이에서 갈등이나 불화가 생겼을 때는 조용하고 침착하게 대응해야 하며, 격하게 다투는 일은 피해야 한다. 반면, 친구 사이에 실수가 있을 때는 솔직하고 진심 어린 조언이 필요하며, 애매하게 넘겨서는 안 된다. 따뜻함과 단호함을 구별할 줄 아는 태도, 그것이 인간관계를 지키는 진정한 지혜이다.


아버지가 자애롭고 자식이 효도하며, 형이 우애롭고 아우가 공손한 것은 아무리 완벽하게 이루더라도 당연한 도리일 뿐이며, 거기에 조금의 감사나 보답을 바라는 마음조차 있어서는 안 된다. 만약 베푸는 사람이 자신의 덕을 내세우고 받는 사람이 은혜를 깊이 새긴다면, 이는 피붙이가 아니라 길가의 행인과 다를 바 없으며, 결국 거래 관계로 전락하고 만다.


진정한 가족애는 무조건적인 수용과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며, 도리를 도리로 받아들이는 마음이야말로 관계의 본질을 순수하게 지키는 길이다.


덕은 재능의 주인이요. 재능은 덕의 하인이다. 재능은 많으나 덕이 없다면 이는 주인이 없는 집에서 하인이 멋대로 설치는 것과 같아 얼마 지나지 않아 혼란과 어지러움이 날뛸 것이다. 재능을 이끌어 줄 덕이 없다면 그 능력은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다.


공직에 있을 때 지켜야 할 두 가지가 있다. “공정하면 밝아지고, 청렴하면 위엄이 선다.” 가정을 다스릴 때도 두 가지가 있다. “용서하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절약하면 생활이 넉넉해진다.” 공정함은 판단을 밝히고, 청렴함은 저절로 존경을 불러오게 한다. 이는 권위를 강요하지 않고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다. 반면, 가정에서는 용서와 절제가 조화를 이룬다.


책을 제대로 읽는 사람은 손발이 저절로 움직일 만큼 몰입해야 껍데기에 머물지 않게 되고, 사물을 제대로 관찰하는 사람은 마음과 정신이 하나로 어우러질 때 비로소 겉모습에 얽매이지 않게 된다.


인간이 정과 세상이 모습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없이 바뀌니, 너무 진실하게 집착해서는 안 된다. 송나라 시인 요부는 “옛날의 ‘나’라고 불리던 이가, 지금은 다른 이로 불리고 있다.” 오늘의 이 ‘나’ 또한 훗날은 누구에게로 이어질지 모른다. 사람이 항상 이런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가슴속 얽힘도 자연히 풀리게 된다.


삶은 고정되지 않는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타인’이 될 수 있고, 오늘 내가 쥔 것도 내일이면 주구의 손에 들릴지 알 수 없다. 고정된 자아에 대한 집착은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헛된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대나무 그림자가 계단을 쓸어도 먼지는 움직이지 않고, 달빛이 연못을 가로질러도 물에는 자취가 없다. 물이 아무리 급하게 흘러도 그 경치는 고요하고, 꽃이 아무리 자주 져도 마음은 한가롭다. 외부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중심을 지키는 삶이야말로 가장 단단하고 자유로운 삶이다.


세상에는 무한한 선택의 길이 열려 있지만, 사람은 종종 가장 해로운 것을 스스로 택한다. 나방이 밝은 등불에 이끌려 자신을 불태우듯, 인간도 때로는 화려하지만 위험한 욕망을 좇다가 자신을 소진한다. 맑은 하늘과 밝은 달, 어느 하늘이라도 훨훨 날 수 있을진대, 나방은 굳이 어둠 속 들불에 몸을 던진다. 맑은 샘물과 푸른 풀, 어느 것이든 마시고 쪼아 먹을 수 있을진대, 부엉이는 굳이 썩은 쥐를 탐한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은 나방이나 부엉이처럼 어리석은 선택을 하곤 한다.


나무는 뿌리로 돌아갈 때 비로소 꽃과 잎의 화려함이 헛된 영광임을 알게 되고, 인간은 죽음을 맞이해야 비로소 자식이나 재물의 덧없음을 깨닫게 된다. 삶의 진실은 끝자락에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살아 있는 동안 자식의 번성이나 재물의 많음을 자랑스러워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그것들이 본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진실한 삶은 결국 내면의 뿌리, 덕성과 정신의 깊이에 달려있다.


꽃은 반쯤 피었을 때 바라보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술은 약간 취했을 때 마시는 것이 가장 즐겁다. 그 속에 큰 즐거움이 깃들어 있다. 만약 꽃이 지나치게 피고, 술에 흠뻑 취하면 오히려 흉한 경지가 되고 만다. 가득 차고 넘치려는 사람은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삶의 모든 즐거움은 넘침이 아니라, 부족함에서 비롯되는 깊이와 여운에서 자란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오히려 본래의 의미를 잃는 것이다. 중도와 절제의 미학은 일상의 가장 깊은 품격이다.


파도가 하늘까지 일어도 배 안 사람은 두려움을 모르고, 오히려 밖에서 보는 이가 더 가슴을 졸인다. 좌중에서 거침없이 욕설이 오가도,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경계심이 없고, 오히려 밖에서 듣는 이가 놀란다. 그러므로 군자는 몸은 일의 중심에 있더라도 마음은 항상 그 일 밖에 있어야 한다. 바람 속에 서 있으되 바람에 휘둘리지 않는 것, 그것이 진정한 군자의 품격이다.


인생에서 하나를 덜어내면 그만큼 더 자유로워진다. 사람과의 교제를 줄이면 번잡함을 피할 수 있고, 말을 줄이면 실수가 줄어들며, 생각을 줄이면 정신이 고갈되지 않는다. 알려는 욕심을 줄이면 오히려 혼란이 맑아진다. 그런데도 날마다 더하려고만 하고 덜어내려 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삶을 옥죄는 일이다.


덜어냄은 무기력이나 포기가 아니라 본래의 자리를 찾는 일이다. 삶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깊게 만드는 일이다.


옛 선인의 현명한 가르침을 이 책을 통해 알고 스스로 실천하면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고요하고 단단하게, 채근담』 홍자성 지음. 최영환 엮음. 2025.08.25. 리텍 콘텐츠. 391쪽. 21,000원.

홍자성(洪自誠). 명나라 만력제 연간의 문인으로 본명은 홍응명, 한국과 일본에서는 자성이란 이름을 불렀다. 호는 환초도인이다. 1550년 전후 출생, 1610년경 『채근담』 집필.


최영환.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공부. 북 테라피스트로 ‘책을 통한 내면의 치유’ 활동하고 있다. 저서, 『인생을 바꿀 책 속의 명언 300』 등.


이 책은 리텍 콘텐츠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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