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죽음을 가로막는 불평등한 삶의 조건을 성찰하다
이 책의 카피는 ‘존엄한 죽음을 가로막는 불평등한 삶의 조건을 성찰하다’이다.
1부에서 ‘각자 알아서 살고, 각자 알아서 죽는 사회’, 집, 노인 돌봄, 커뮤니티 케어, 호스피스, 콧줄, 말기 의료결정, 안락사. 2부 ‘보편적이고 존엄한 죽음을 상상하다’, 제사, 무연고자, 현충원, 코로나19, 웰다잉, 냉동인간, 영화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늙음과 죽음에 관해 생각해 본다. 막연히 나이가 들어 요양원에 가는 일은 없었으면, 노래 가사처럼 ‘구구팔팔이삼사(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아프다가 사망)’로 죽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녹하지 않다. 죽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인간이 늙어서 병들고 무력해지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간병이나 치료비 등 비용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책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현실에서 죽음은 의료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 문제에 가깝다. 죽음은 개인적인 일인 동시에 내가 사는 일상, 사회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문제다. 환자, 보호자, 의료진의 이야기로 국한할 수 없다. 존엄하게 죽기 위해서는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 안에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다수 한국인의 생애 말기 돌봄과 죽음은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1992년 사망자 23만여 명 중 병원에서 임종한 사람은 4만여 명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 상황이 달라졌다.
2008년 한 해 사망자 중 63.7%가 ‘병원사’였지만, 집에서 사망한 경우는 22.4%였다. 2020년 병원사 비율은 75.6%를 기록했다. 환자들이 병원이나 요양원이 아닌 ‘내집’을 선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환자를 집에서 돌본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됐다. 집 구조도 과거 독립가옥 형태에서 아파트로 바뀌었다. 핵가족에 맞게 구조가 만들어졌다. 노인을 위한 별도의 공간은 없다.
2008년 7월에 시행된 노인장기요양보험은 노인성 질환자의 ‘돌봄(요양원 입소 및 방문 요양)’을 뒷받침한다. 문제는 의료와 돌봄을 분리했다는 데 있다.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경계를 쉽게 나눌 수 없다. 요양원에서도 의료는 중요한 요소이고, 요양보호사가 없는 요양병원에서도 돌봄은 필수적이다. 요양원은 ‘어르신의 마지막 집’이라고 표현하지만 대개 임종 상태에 가까워진 노인은 병원으로 옮겨진다. ‘진짜 마지막 집’은 병원이다. 돌봄과 의료는 요양원과 요양병원 사이에서 뒤죽박죽이 되고 있다.
정부는 군사작전 하듯이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공급을 늘렸다. 요양병원 수는 2000년 13개에서 2019년에는 1500개를 넘어섰다. 요양원의 수도 2008년 1700여 개에서 2019년 5300여 개로 폭증했다. 대부분 민간이 설립하고 운영하는 시설이다. 그 결과 노인 환자와 병상수는 빠르게 늘었지만, 의료진과 돌봄 노동자 수는 그만큼 늘지 않았다. 요양보호사 한 명이 입소자 20명을 돌보고, 간호사 한 명이 환자 40명을 관리하는 환경이 되었다. 이런 현실은 콧줄과 기저귀 남용이라는 노인의 인권 문제로 이어졌다.
안티에이징은 의료 기술 차원을 넘어 규범으로 작동한다. 사람들은 세포의 노화까지 걱정하며 돈을 쓰고 몸을 관리한다. 그렇게 각자도생하거나 각자도사한다.
호스피스 간병 제도가 있지만 현장을 겉돌고 있다. 호스피스 의료진 배치는 환자 수에 맞추는 반면, 간병 인력은 병상수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환자가 있든 없든 병상수에 맞는 간병 인력을 갖춰야 하는데, 국가가 지원하는 노무비는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가가 환자 부양과 간병을 가족에게 떠맡기는 현실에서 의료진은 오롯이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기 어렵다.
현재 요양원 입소에 필요한 장기 요양 1, 2등급(거동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을 받지 못해서 요양병원으로 향하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 혼자 힘으로 거동은 가능하지만, 일상적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은 크게 아프지 않아도 요양병원에 입원한다. 그러다 보니 중증 환자는 의료진이 있는 요양병원에 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2016년에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연명의료결정법’으로 불리는 이 법률에 근거해 호스피스기관을 지정하고 관리한다. 이 법은 연명의료 거부나 중단이 아니라 말기 환자가 호스피스를 통해 전인적 돌봄을 받으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사실 호스피스 병동은 병원의 수익에 별 도움이 안 된다. 따라서 호스피스 병상 상당수가 공공의료원에 의존하고 있다.
말기 의료결정이란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심폐 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의 의학적 시술을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고 말기 암 환자가 호스피스에서 생의 끝자락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절차를 말한다.
남성 환자는 부부와 미혼 자녀로 이뤄진 한집안의 가장이다.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다. 어수선하고 친밀한 수다보다는 정치나 경제에 대한 설명을 즐긴다. 타인의 시선에 예민하고 체면을 중시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직업에서 찾는 까닭에 선생님, 부장님, 사장님, 등의 직함을 중요하게 여긴다. “암에 걸렸다”라는 말을 사회 활동의 중단, 사회에서의 배제로 인식한다.
암 치료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다 끝났다”, “실패한 인생이다”와 같은 반응을 보이며 입을 굳게 다문다. 환자를 간병하는 아내, 누나, 여동생, 어머니는 각종 의료결정에 개입한다. 환자의 바람이나 몸 상태와는 상관없이 치료를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가족주의’가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방해한다. 그 결과 환자는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으며, 중환자실에서 쓸쓸하게 사망한다.
대학병원 의료진은 크게 교수, 펠로(전임의), 레지던트(전공의), 인턴(수련의)로 구성되어 있다. 연차, 직급 등에 따라 다시 서열화, 세분된다. 시니어와 주니어로 나뉘고, 또 진료 영역에 따라 구분한다. 상하로, 좌우로 분절된 구조다. 도제식으로 가르치고 배우고 일한다.
개인이 수많은 자원을 쏟아부어야 하는 투병과 간병도 문제지만, 환자의 몸 상태가 좋아져 퇴원해도 ‘온전한’ 사회 활동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질병이 낙인이 되어 사회 활동에 차별적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말기 의료결정은 선언적 가치, 의료 윤리, 소통 기술 등으로 ‘깔끔하게’ 정리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병원의 운영 체계 한국 의료 다양성, 의료진의 태도, 보호자의 돌봄, 가족 삶의 조건, 환자의 몸 상태 및 인식 등이 뒤얽혀 협상을 벌이는 정치적 행위에 가깝다. 말기 의료결정은 환자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환자가 ‘언제까지’ 살 수 있는지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일이 되었다. 환자, 보호자, 의료진은 저마다의 이유로 ‘죽음의 타이밍’을 고민한다. 죽음은 타이밍의 문제였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 따르면 2022년 12월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 수는 약 153만 명이고, ‘연명의료 계획서’ 등록자 수는 약 10만 명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의 시민이 평소 건강할 때 자신이 임종 과정을 미리 생각해 보고, 호스피스 및 연명의료에 관한 의향을 ‘본인이 직접’ 기록하는 문서다. 연명의료 계획서는 말기 및 임종기에 접어든 환자의 뜻을 확인한 ‘담당 의사’가 작성하는 서류다.
2008년 1월 호주제는 역사 무대에서 완전히 퇴장했다. 가족관계등록부가 호적을 대체했고, 가족의 단위 또한 호주 중심에서 개인으로 변경됐다. 대법원의 다수의견은 “사람의 유체, 유골은 매장, 관리, 제사, 공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유체물로서 분묘에 안치되어 있는 선조의 유체, 유골은 민법 제1008조의 3(분묘 등의 승계)에 따라 소정의 제사용 재산인 분묘와 함께 그 제사 주재자에게 승계”된다고 했다. 1990년 개정된 민법은 제사용 재산을 호주상속인(장손)이 아니라 ‘제사를 주재하는 자’가 승계하도록 정했지만, 그 제사 주재자가 누구를 가리키는 지는 정해놓지 않아 해석의 여지가 있다.
제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고, 조정되고, 변경되고, 수용되는 문화적 행위다. 조선의 제사가 종법을 따랐다면, 대한민국의 제사는 헌법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거듭나야 한다. 제사가 전통과 관습의 이름으로 일상을 흔들지 않고, 오히려 일상의 평화에 도움이 되는 의례가 될 수는 없을까? 고인을 기억하면서 하나로 연결되는 ‘오늘의 신성한 의례’가 필요하다.
『성경』 「마태복음」 16장 26절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목숨을 무엇과 바꾸겠느냐?” 생명이란 무엇인가? 건강, 목숨, 신성함 따위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생명을 무엇으로부터 지킨다는 말인가? 죽음이다. 최상의 가치를 품고 있는 유일무이한 생명을 위협하는 죽음은 제압 대상이다. 과연 그런가?
산 자는 다양한 형태로 죽은 자의 몸을 보존하고, 그 ‘물질성’을 토대로 의례(장례, 제사, 추모, 기념 등)는 이 세상과 저세상을 이어주는 매개의 역할을 한다. 산 자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죽은 자가 조상이 되거나 환생하거나 천국에 가거나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음을 ‘인지’한다. 사람의 죽음은 사회의 죽음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사회 성원 간 유대를 강화하고 확장하는 정치적 성격을 띤다.
1970년대 60세 정도이던 기대수명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현재 80세를 넘어섰다. 생명은 연장됐는데, 한국 노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자살한다. 정년의 개념은 온데간데없고, 일자리가 최고의 노인복지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미래에 죽을까 봐 두려운 게 아니라 죽지 못해 살까 봐 두려워한다.
이 책을 읽고 죽는다는 것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사자, 가족, 관련 기관, 의료진, 간병 등 한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것이 현실에서 복잡한 절차에 의해 진행된다는 것과 그에 따른 문제를 이 책에서 제시한다. 정치인들과 국민이 같은 목적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도생을 위해 그때그때 땜질식 처방이 난무하고 정치적 손익계산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법률을 제정하고 국회의원들은 그 법률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 방치하는 현실에서 현장 의료진과 죽음을 앞둔 국민은 막막하다.
책 소개
『각자도사 사회』 송병기 지음. 2025.02.15. 어크로스풀판그륩(주). 263쪽. 16,000원.
송병기. 의료인류학자. 파리대학교병원 의료윤리센터와 서울대학교병원의 생명연구원에서 생애 말기 돌봄을 연구했다. 프랑스와 모로코의 노인요양원, 일본의 노인요양원, 호스피스, 한국의 대학병원, 호스피스, 노인요양원, 노인요양병원에서 현장 연구를 수행했다. 저서,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