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졸라의 진실』

「진실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by 안서조

이 책의 부제목은 「진실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이다. 책을 읽으면서 150여 년 전, 프랑스의 정치, 사회, 사법, 문화, 국민, 그리고 군이라는 조직 등이 현재의 대한민국과 어쩌면 이렇게 닮을 수 있나? 하고 깜짝 놀랐다. 에밀 졸라의 사안을 표현하는 필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내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해 주는 것 같다.


1870년에서 다음 해까지 이어진 보불전쟁에서 프랑스는 독일에 처참하게 패했다. 이 패배로 프랑스 안에 반독일 정서가 높아졌고 애국주의가 프랑스 전역을 가두었다. 1894년 9월 프랑스 육군정보부는 누군가 프랑스의 내부정보를 파리의 독일대사관에 건네고 있음을 보여주는 문서를 입수했다. 수사가 진행되던 중 문제의 필체가 참모본부에서 근무하는 육군 포병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의 글씨체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드레퓌스가 범인으로 지목된다.


드레퓌스는 유대인이고 독일계였다. 그해 12월, 드레퓌스는 반역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후 종신형에 처 해졌고 군적을 박탈당했다. 드레퓌스는 무죄를 주장했지만 묵살되었다. 재판관이나 언론 그리고 언론의 일방적인 기사에 취한 이들은 드레퓌스가 정말 적국에 기밀문서를 보냈거나 아니든 상관없었다. 그가 유대인이며 독일계였다는 사살이 중요했다. 드레퓌스는 1895년 2월 프랑스령 기아나의 악마의 섬으로 유배당했다.

일부에서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애국주의와 반유대주의, 반독일 정서는 이를 묵살했다. 사실과 객관성을 유지하고 이를 알려야 할 언론마저 등을 돌린 대중을 현혹했다. 당시 군부는 드레퓌스가 무죄이고 문서와 드레퓌스는 아무 관계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밝히면 군부의 명예가 추락할 것이 염려되었다. 이에 사실을 은폐했으며, 가톨릭교회와 언론도 드레퓌스를 내몰았다. 그가 유대인이고, 유대인인 그에게 종신형과 군적 박탈은 너무나 당연했다. 드레퓌스는 세상에서 버려졌으나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외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로부터 2년 뒤 1896년 3월 진범이 밝혀졌다. 진상은 군 내부에 있었다. 참모본부 정보국장으로 근무하던 조르주 피카르 중령은 다른 간첩 사건을 조사하던 중 드레퓌스가 날조된 증거에 의해 범인으로 몰렸으며, 에스테라지 소령이 진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피카르 중령은 이를 상부에 알려 드레퓌스 사건을 바로 잡으려고 했지만, 돌아온 것은 침묵을 지키라는 대답뿐이었다. 명백한 증거와 함께 에스테라지 소령이 진범이라는 사실을 상부에 보고한 죄로 피카르 중령은 북아프리카 튀니지로 좌천당했다. 1년 뒤 파리로 돌아온 피카르 중령은 드레퓌스가 진범이 아니라는 것을 친구인 변호사에게 털어놓았고, 이 사실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드레퓌스 사건을 재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이들은 에스테라지를 진범으로 고소했지만, 군사법원은 에스테라지를 무죄로 풀어주었다. 에스테라지가 사실과 전혀 맞지 않는 주장을 늘어놓는 동아나 군부와 재판관들은 눈을 감았다. 더구나 에스테라지가 무죄로 풀려나자 조작된 증거들을 토대로 피카르 중령을 체포했다. 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진범도 드러났지만, 진범은 여전히 드레퓌스여야 했고, 에스테라지의 범행이 확실했지만, 군부는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고 국가는 권위를 지키는 데만 급급했다. 군사법원은 피카르가 군사기밀을 누출했다는 이유로 체포하는 등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1898년 1월 13일 이 재판 결과에 분노한 에밀 졸라는 신문 《로로르》에 ‘공화국 대통령 펠리스 포르 씨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가 달린 〈나는 고발한다!〉를 기고하며 드레퓌스 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알렸다. 발행 부수 3만 부이던 이 신문을 이날 30만 부를 찍었다. 에밀 졸라의 글은 프랑스를 뒤흔드는 이슈이자 정치적 쟁점이 되었다. 이 일로 에밀 졸라는 군사법원을 중상모략했다는 이유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으며, 항소하는 중에 영국으로 망명했다가 년 뒤에 귀국했다.


1899년 6월 3일 고등법원은 재심하기로 결정했고, 그달 10일 드레퓌스는 유배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906년 대법원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드레퓌스는 모든 혐의를 벗고 복권되어 육군에 복직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 내내 장교로 복무하다가 육군 중령으로 전역했다.


드레퓌스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에밀 졸라는 굳이 세상에 나서지 않아도 되었다. 언젠가 진실을 말할 사람이 있을 테고, 나서서 자기 이름에 흠을 낼 이유가 없었다. 이미 자연주의 문학의 수장으로 평가받는 그였다. 인세 수입만으로 넉넉한 삶을 누리며, 작품 활동만 해도 충분했다. 1888년에는 프랑스 국가 최고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상하는 등 작가로서 모든 것을 이룬 상황이었다. 57세까지는 그랬다.


그런 에밀 졸라가 명성을 내려놓고 58세에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하며’ 그로써 ‘멈추지 않는 진실’의 길을 택했다. 그것은 누가 떼민 것이 아니라 양심의 소리였다. 그로써 얼마나 큰 피해와 고통이 몰려올지 짐작했을 것이다. 프랑스 전역을 휩쓴 반독일 정서와 극단적인 애국주의, 반유대주의와 맞서는 것은 그 자체로 위태로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에밀 졸라는 그 길에 섰다. 진실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에밀 졸라는 지식인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지성으로 사회적 책임과 도덕적 의무를 다하고자 했다. 그는 ‘행동하는 지성’이 세상에 설 때 사회정의를 실현할 수 있으며 정의 역시 자리매김한다고 믿었다. 마침내 1906년, 프랑스 최고재판소는 “드레퓌스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은 오류였다”라고 판결했다. 이로써 에밀 졸라를 비롯해 지식인 이기 보다 지성인, 극단적인 선동보다는 양심에 충실한 이들의 투쟁으로 드레퓌스는 12년 만에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에밀 졸라는 《멈추지 않는 진실》에서 “진실과 정의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존엄하다. 진실과 정의만이 국가의 위대함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한순간에 정의와 진실을 가릴 수도 있지만, 진실과 정의를 유일한 존재 가치로 삼지 않는 민족이야말로 오늘날 가장 저주받은 민족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드레퓌스 사건은 개인의 비극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건이자 언론의 왜곡된 보도와 이로 인한 대중의 광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책은 우리 시대를 되돌아보게 하며, 우리의 양심과 함께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자행되는 일들을 ‘드레퓌스 사건’과 비교하고 싶진 않지만, 사법부의 행태를 보면 법과 양심에 의해 재판하고 있는지 의아할 때가 많다. 약자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원칙을 적용하고, 권력자들에게는 솜사탕처럼 부드럽게 연약하게 법이 잣대를 갖다 댄다. 이게 나라냐?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패하고 편향된 법과 권력에 에밀 졸라는 아니지만 나는 어떻게 대항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 법원도 잘못된 판결을 하고 바로잡지 않으려고 했다는 점이 위안이 된다. 선진국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데 하물며 민주주의를 채택한 지 80여 년밖에 안 된 대한민국에서 사법부가 흔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 같다.


개딸이라고 하는 일부 맹신적인 국민도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 선진국 국민도 언론에 휘둘리고 맹목적 애국주의에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진실을 말하는 에밀 졸라를 비난하고 처형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광장으로 나왔다는 점에서 위안을 얻는다. 이리저리 위안을 얻고 나니 나도 그냥 시류에 휩쓸려 사는 것이 맞는 듯하다. 15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것은 비슷비슷한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에서 있었던 계엄과 계엄을 둘러싼 재판이 상기되는 것은 사법의 잘못된 판단이 국가에, 개인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을 느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계엄선포가 왜 내란죄에 해당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형법 내란죄의 구성요건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인재로 꼽히는 판사들이 잘못된 것일까? 범부인 내가 잘못된 것일까? 당연히 권력도 없고 사법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자격도 없는 내가 잘못일 것이다. 그러나 에밀 졸라처럼 석연치 않은, 이해할 수 없는 판결에 대한 의구심을 어떻게 해야 해소할 수 있을까.


책 중에서

그는 자신이 불러올 파장을 아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실과 정의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존엄하다. 진실과 정의만이 국가의 위대함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한순간에 정의와 진실을 가릴 수도 있지만, 진실과 정의를 유일한 존재 가치로 삼지 않는 민족이야말로 오늘날 가장 저주받은 민족이 될 것이다.


사법적 오류는 매우 유감스럽지만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법관의 판결이 잘못될 수도 있고, 군인이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그런데 어째서 이 일로 지금 군부의 명예가 실추되었다고 언급하는가? 사법적 오류가 있었다면 응당 해야 할 유일한 길은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다. 결정적인 증거 앞에서도 오류를 범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고집을 부린다면, 그때부터 잘못이 시작될 것이다. 그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다. 자신이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으며, 그것을 인정하기가 힘들어 망설였다는 사실을 솔직히 말한다면 모든 것이 수월하게 해결될 것이다. 이 사건의 전모를 아는 사람이라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정치적인 이유를 들어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지연시킨다면, 그것은 필연적인 결말을 더 늦어지게 할 것이며,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새로운 잘못이 될 것이다. 진실은 전진하고 있고, 그 무엇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


나는 어리석음과 기만을 증오하고, 진실과 정의를 강렬하게 희망하며, 요동치는 마음이 평범한 소시민을 순교자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론을 돌아보자. 우리는 돈 냄새에 발정이라도 난 것처럼 저열한 언론을 보았다. 그들은 더러운 신문을 팔기 위해 대중의 얄팍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판단력을 흐리게 했다. 이런 신문은 나라가 평온하고 건강하고 강해지는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한다. 방탕을 암시하는 헤드라인으로 대중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신문들은 어둠 속에서 호객하는 매춘부와 다르지 않다. 몇몇 신문에서는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수치로 남을 만큼 치졸하고 저열한 방법으로 거짓과 중상모략, 밀고를 습관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도자들이다. 벌써 1년도 넘게 이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자들 말이다. 우리는 폭풍우가 한 단계 한 단계씩 밀려올 것을 예고하면서 그들에게 간곡히 요구했다. 그들은 사건을 직접 맡는 대신 사건을 축소하기 위해 관련 인물 몇 명을 희생시키며 타성에 젖어 무기력한 태도로 일관했다.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잘못이었다.


청년이여, 청년들이여! 그대들의 부모가 견뎌야 했던 고통을, 지금 그대들이 누리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이겨야만 했던 끔찍한 전쟁을 기억하라! 그대들이 자유를 느끼는 것은 마음껏 원하는 대로 오갈 수 있는 것은 생각한 것을 언론에 말할 수 있는 것은, 의견을 가질 수 있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그대들의 부모가 지성과 피로 그 대가를 치른 덕분이다.


국민 대다수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대다수 하층민, 도시에 사는 시민, 지방과 시골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 이토록 많은 이들은 자료를 볼 방도도 없고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어서 신문이나 이웃 사람이 떠드는 말을 그대로 믿어버린다. 그런데 국민은 진실의 빛에 눈 뜨기를 격렬하게 거부하며 광신도와 불한당, 죄 없는 사람의 시체를 땅속에 파묻으려 혈안이 된 이들 뒤에 숨어 있다.


그의 석방이 이루어져야만 모든 과업이 완성될 것이다. 그것은 증오의 결실이 아니라, 우리가 뿌린 선의의 씨, 정의의 씨, 무한한 희망의 씨가 맺은 결실이다. 지금으로서는 그 결실이 얼마나 풍요로울지 예상할 수 없다. 모든 정당이 침몰했고, 나라는 두 진영으로 나뉘었다.


법의 수호자인 여러분이 본래 공정해야 하는 재판부에서 피고인을 빼앗음으로써 법에 대한 공격을 허용한 것이다. 정의를 배신하는 데 동의하면 정국을 진정시킬 수 있으리라는 정부의 압박에 여러분은 공공이 선이라는 명목으로 이미 굴복했다.


정국이 안정이라니! 정국이 안정은 진실과 정의 속에서만 이룰 수 있다. 재판부를 바꾸면서 정국을 안정시킨 예전과 달리 재판부를 지운다고 해서 평화를 이룰 수는 없다. 재판부를 바꾸면서 정국을 안정시킨 예전과 달리 재판부를 지운다고 해서 평화를 이룰 수는 없다. 오히려 정국을 더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여러분이 사회적 부패를 악화시키고, 나라를 더한 거짓과 더한 증오 속으로 밀어 넣기 때문이다. 조만간 이런 술책이 얼마나 파렴치한지 드러나면 깊숙이 파묻은 추악한 사실들이 마침내 온 나라를 독살하고 혼란에 빠뜨리면 여러분이 그 악행의 책임자이자 범죄자가 될 것이다.


보통선거는 공정하고 논리적이라고 여겨지지만,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대중의 선택을 받은 자는 내일의 후보에 불과할 뿐이다. 다시 뽑혀야 한다는 열망 때문에 대중에게 선택받은 즉시 저들이 노예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대중이 지금 우리가 겪는 것과 같은 위기 속에서 광기에 휩쓸리면, 그들에게 선택받은 자 역시 그들의 뜻대로 휘둘린다. 그가 자유로운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용기가 없는 자라면, 그는 자신을 선택한 대중이 생각을 자기 생각처럼 되풀이한다.


의회는 자신의 권한을 잃는 것이 두려워 그것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고 정부는 반동분자와 국민의 정신을 더럽히는 자들의 손에 나라를 넘겨주고는 시시각각 전복의 두려움에 떨며, 단지 며칠 더 나라의 지배자 자리를 지키려고 자신이 대표하는 체제의 적들에게 더없이 비겁한 양보를 하고 있다.


진실과 정의가 없는 나라를 기다리는 것은 몰락과 죽음뿐이라는 신념 속에 진실과 정의를 되살리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아무리 진실을 묻어버린다고 해도 진실은 그 안에서도 전진해 언젠가 사방에서 뚫고 나와 싹을 틔우고, 마침내 거대한 복수의 초목으로 자랄 것이다. 당신의 과오 중 더 나쁜 것은 청소년들의 정의 의식을 흐려놓아, 청소년들의 풍기 문란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처벌이 없어지는 순간부터 범죄자도 없어지니까. 우리가 보여준 부패한 거짓 속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무엇을 배우기를 바라는가? 국민에게는 교훈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국민의 양심을 암흑 속에 빠뜨렸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 국민을 타락시키고 있다. 모든 문제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우리는 진실이 가진 힘을 믿으며 진실의 승리를 기다렸다. 계몽한 국민이 모두 떨쳐 일어나고, 나라가 양심을 되찾고, 정의를 위한 제단을 세우고,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권리가 영광스럽게; 회복되어 이를 축하하는 것은 정의의 극치였다. 그날에는 평화를 되찾은 모든 시민이 인간 연대의 한마음으로 모여 화합의 입맞춤은 나누며 끝을 맺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역사의 심판을 약속함으로써 우리를 위로했다. 하지만 어쩐지 이 약속은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 같은 것처럼 들린다.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이 땅의 가엾은 이들을 계속 인내하게 하는 감언이설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친구들이여, 계속 고통스럽게 살아가세요. 마른 빵으로 배를 채우고 딱딱한 맨바닥에서 잠을 청하시오. 그동안 지상의 행복한 자들은 맛있는 것을 배불리 먹으며 깃털 이불을 덮고 자겠지.


책 소개

『에밀 졸라의 진실』 에밀 졸라 지음. 이진희 옮김. 2021.12.01. 이다북스. 297쪽. 15,000원.

에밀 졸라.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 1840년 4월 2일 파리 생 조제프 가에서 태어나 파리 생 루이 중등학교를 다녔다. 1862년 아셰트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첫 단편집 『니농에게 주는 이야기』와 자전적 소설 『클로드의 고백』을 펴냈다. 1894년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나자,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며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형식의 『나는 고발한다』를 발표했다. 1902년 3월 29일 파리에서 가스중독으로 사망했다.


이진희.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불과에서 국제회의 동시통역 석사학위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에서 통번역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바른번역의 회원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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