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삶의 기술』

「즐거움을 잃어버린 시대의 행복 되찾기」

by 안서조

이 책의 부제목은 「즐거움을 잃어버린 시대의 행복 되찾기」이다.


원어 제목은 『Wofir es sich zu leben lohnt-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이유』

부제는 ‘Elemente mateerialistischer Philosophie-유물론적 철학의 요소들’이다.


저자 로베르트 팔러는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좌파 학자이다.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팔러는 이 책에서 고전적이지만 잊힌 물음을 제기한다. 이 질문은 답을 구하기 위해서만 제기하는 질문은 아니다. 이 질문은 그보다 일종의 ‘생각도구’로서 “환상에 자동적으로 굴복하거나, 필연이라는 허상에 속거나, 시각의 편집증적 협소화로 인해 맹목적 행동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질문이다.


하지만 안전, 효율성, 건강 등을 삶의 최우선 순위로 두는 지금 시대에서 이런 질문은 더 이상 제기되지 않는다. 이미 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는 점점 더 일상의 삶에서나 정치적으로 바른 생활 시민들의 사회가 된다. 상상력을 잃은 미적 기준, 사회적 관계의 회피, 해로운 것이라면 모두 끊어내는 금욕주의적 태도가 칭송되고 정치적으로는 정체성 정치와 정치적 올바름이 교조적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 이는 사람들이 잘못된 환상에 지배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팔러의 분석이다.


팔러가 이런 태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이런 태도가 바로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자기가 아닌 것은 아무것도 수용하지 못하는 나르시시즘을 더욱 강화하는데, 나르시시트들은 이런 점에서 외부로부터 어떤 진정한 쾌감도 느낄 수 없기에 삶의 행복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사는 것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삶에서 느끼는 쾌감이다.


이 쾌감은 망상에서 벗어난 유물론적인 쾌감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자신의 안녕과 자아감의 강화에서 느끼는 쾌감과는 다른 문화적 쾌감이다. 이 쾌감이 느껴지는 때는 우리가 파티하며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이고, 사람들과 맥주 한 잔을 마실 때이고, 담배 한 대를 피울 때이다. 그럴 때 우리는 나르시시즘적 향유의 탐닉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쾌감을 위해 반드시 타자가 우리 앞에 현존해야 할 필요는 없다. 신문에서 오늘의 운세를 보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운세를 읽을 때 우리는 쾌감을 느낀다. 이때 우리는 비록 스스로 알아채지는 못하더라도 어떤 가상의 존재를 의식하며 그 앞에서 오늘의 운세를 믿는 사람인 듯 연기한다. 그 가상의 존재는 그렇게 하면 내가 오늘의 운세를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내가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잠시나마 내 것이 아닌 타인의 환상을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이유’를 묻지 않는 사람들은 시민을 점점 더 미성년자처럼 취급하는 정치권력에 대해 순종적이 되어 권력에 주지 말아야 할 것을 내주게 된다고 비판한다. 아무리 중요한 가치라도 적절함을 잃으면 해가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강조하며 절제를 절제하라고 충고한다.


우리가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은 이미 말했듯이 상대적으로 간단한 대답을 상기하는 것이 필요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질문이 ‘무효화 사고법’의 하나로 특히 현재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대해 이런 질문을 제기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죽음을 걸고 하는 칸트의 사고 시험과는 반대로 이 질문은 삶에 대한 시험이다. 이 질문은 삶에 대한 집착을 상대화하고 완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브레히트가 강조하고 오늘날의 모든 경험이 가르쳐주듯이 현세의 삶에 대한 집착만큼이나 유혹적인 혐오를 상대화하고 완화하려는 것이다.

삶에 대한 이러한 혐오가 건강, 안전, 올바름 등에 대한 숨 막히는 집착으로 나타날 때마다 우리는 이 질문을 던짐으로써 숨 쉴 공간과 평온함과 신중함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신중함을 가질 때 명철한 행동도 나올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삶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삶을 살고 싶다면 초지일관 이성적이거나 어른스럽기만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약간의 미친 짓이나 유치한 어리석음에도 빠질 수 있어야 한다. 이중화의 능력 없이 단순하게 어른스러운 것은 오히려 일부 어린아이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특장이다. 진짜 어른스럽다는 것은 모든 면에서 어른스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따금 자신에게 어린애 같은 비이성적 순간을 허용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스토아학파의 에픽테토스는 강조하기를, 인생이라는 연극에서 중요한 것은 좋은 역할을 맡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을 잘하는 것이라고 했다. 잘하는 방법을 모르는 한 모든 행위는 괴로움만 더하기 마련이다. 끈적거리는 액체를 닦아내는 일이나 절망에 빠진 친구를 위로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잘하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게 되면 그 행위는 바로 즐거움을 주기 시작한다.


삶의 이유가 되는 것들은 사라져 버리는 작은 것들, 우리에게 살아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는 하찮은 것들이다. 가끔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생명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어떤 생각이나 대의에 기꺼이 생명을 걸 수 있는지 묻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이때 삶의 이유로 인해 가지게 된 첫 번째 태도가 없다면, 이 두 번째 질문은 삶을 적대시하는 ‘원한감정’으로 바뀌게 된다. 그렇게 되면 생명과 맞바꿀 수 있을 만큼 가치 있는 것, 그래서 그것이 가진 가치만큼 삶을 가치 있게 해줄 수 있는 것을 찾게 된다.


삶을 사랑하고 즐거움을 지킨다는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투쟁을 회피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와는 정반대로 정물화가 표현하는 즐거움에 대한 찬사를 이해하고 죽기도 전에 벌써부터 좋은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철학은 어렵다는 것을 이 책은 가볍게 증명해 준다. 어찌어찌 끝까지 읽었다.


책 소개

『나쁜 삶의 기술』 로베르트 팔러 지음. 나유신 옮김. 2024.09.10. 사월의책. 356쪽. 21,000원.


로베르트 팔러 Robert Pfaller.

196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빈과 베를린에서 철학 공부. 시카고, 베를린, 취리히, 스트라스부르에서 문화학을, 린츠에서 문화이론을 가르쳤다. 빈 응용예술대학교 교수 엮임. 린츠예술산업조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으로 꼽힌다. 저서, 『타자의 환상』(2002) 등.


나유신. 이화여대 영어교육과 졸업 서울대 미학과에서 석사. 베를린 자유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를린 GPB 칼리지에서 한국어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 『키치의 비진지함』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