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가지 물질이 그려내는 인류 문명의 대서사시」
이 책의 부제목은 「6가지 물질이 그려내는 인류 문명의 대서사시」이다.
이 책의 이야기가 모래에서 시작하는 것은 인류가 모래를 활용하여 환경의 많은 부분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제품인 유리, 가장 고도화된 제품 중 하나인 반도체가 바로 모래로부터 나왔다. 모래가 물건을 만드는 물질이라면, 소금은 물건을 변형하는 데 필요한 마법의 물질이며 인간의 건강과 영양에 필수 요소이다. 철과 구리에 관한 이야기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철은 석탄과 얽힌, 반면 구리는 전기의 매개체이다.
이 책은 세상이 물질 중 여섯 가지, 모래, 소금, 철, 구리, 석유, 리튬을 이야기한다.
모래는 가장 오래됐지만, 가장 현대적인 물질이다. 인류가 실리콘을 구슬, 컵, 보석으로 변형시키면서 호모 파베르(도루를 만드는 인간) 시대가 열렸다. 모래가 어떤 성분으로 이루어졌는가, 지질학자들은 우덴-웬트워스 입도분석 기준을 사용해 모래를 분류한다. 우덴-웬트워스 기준은 0.0625~2mm 크기인 고체의 느슨한 상태의 결정을 모래로 규정한다. 이 책에서는 주성분이 실리카 70%인 모래만 집중한다.
실리카 함량의 중요한 이유는 이 수치가 모래의 용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실리콘은 금속성 물질이지만 온전한 금속은 아니며, 전도성을 디지만 일정한 조건에서만 그렇다. 고분자 물질인 플라스틱을 만들 수도 있다. 모래는 부드러운 촉감이지만 각각의 알갱이는 매우 단단하다.
인간은 유리 덕분에 우주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같은 천문학자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일정한 궤도로 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리는 사람들이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안경에 들어가는 볼록 렌즈 덕분에 수백만 명이 은퇴를 미루고 더 일할 수 있었다. 유리 렌즈와 프리즘 덕분에 로버트 훅,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 같은 과학자들이 현미경을 발명할 수 있었다. 인류는 현미경을 통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박테리아의 존재와 세포 생식에 관해 알게 됐다. 유리는 근본적 혁신이었다. 인터넷은 대개 광섬유를 통해서 전송되는 정보의 망이다. 우리가 없었더라면 최첨단 컴퓨터의 두뇌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자연에는 놀라운 여정이 존재한다. 유럽뱀장어는 북대서양의 사르가소해까지 길고도 신비로운 여행을 한다. 극에서 극으로 여행하는 극제비갈매기는 평생 250만 km를 이동한다. 왕연어는 강의 거친 물살을 역류하며 수백 km를 거슬러 올라간다. 석영모래의 절반 정도가 암석-모래-암석의 과정을 여섯 차례 반복한다. 암석은 오랜 세월에 걸쳐 마모되지만, 모래는 순환하는 과정 동안 원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다. 실리콘은 경이로운 물질이다. 유리가 될 수 있는 독특한 성질을 갖고 있고, 콘크리트가 되어 건물을 지탱할 정도로 단단하다. 전기적 특성을 갖고 있어서 반도체가 될 수 있다.
1947년에 나온 최초의 트랜지스터는 약 1cm였다. 1971년 최초의 현대식 컴퓨터 칩인 이넬 4004가 나왔다. 1cm의 칩에 약 2,000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가 있었다. 2020년대 초반 스마트폰 프로세서에는 1㎠보다 더 작은 공간에 약 120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갔다.
반도체는 어느 한 회사,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완벽한 실리콘 웨이퍼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여러 공장과 장소를 거친다. 하나의 과정도 생략하면 반도체는 만들어지지 못한다. 최종 칩을 생산하는 회사는 TSMC와 삼성전자가 반도체 칩을 대량생산 할 수 있다.
하나의 반도체 칩이 완성되기까지 참여사 수백 개가 관여하는데, 이들의 도움이 없다면 반도체 공급망에서 가장 눈에 띄는 화사들조차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초크랄스키법을 위한 도가니, 그리고 볼을 얇게 자르는 다이아몬드 톱을 만드는 린턴 크리스털이 없다면, 포토레지스트 기술 분야에 JSR이 없다면, 각각
웨이퍼 접합과 포토마스크 생산을 맡은 오스트리아 회사들이 EV 그룹과 IMS 나노패브리케이션이 없다면, 비코, 도쿄일렉트론, 램리서치, ASM 퍼시픽,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에드워드 등반도체 공장에 들어가는 주요 기계를 만들어 내는 회사들이 없다면, 여기서 한두 곳만 사라져도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만들 수 없다.
TSMC와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반도체가 만들어지는 곳이지만, 반도체는 주로 미국에서 디자인된다. 그 지식 재산권은 영국 케임브리지에 본사를 둔 회사 ARM에 있다. 반도체 공장들은 네덜란드와 일본의 공작 기계, 독일의 화학물질, 전 세계에서 수입한 각종 부품이 없으면 가동되지 못한다. 완벽한 실리콘 웨이퍼를 만들 수 있는 소수의 회사는 미국이나 중국에 본사를 두지 않는다. 웨이퍼가 결정화되는 도가니에 들어갈 규사를 생산하는 국가는 전 세계에 딱 한 군데밖에 없다.
인간의 역사와 현재는 소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 몸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해마다 수 kg의 소금이 필요하다. 소금은 우리 몸의 신경, 근육, 인대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해주고 우리 몸에 생체 전류가 흐르도록 돕는다. 인간의 신체 역시 전기가 불충분하거나 과부하가 걸리면 문제가 발생한다. 소금에는 박테리아를 죽이는 방부 기능이 있어 고기를 소금에 절이면 부패를 막을 수 있다. 그래서 지상의 소금은 생명의 물질이라고도 한다. 소금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 품목이었고 이름 모를 다양한 소금이 우리 삶을 지탱해 왔기 때문에 인류의 초창기부터 권력의 도구로 이용되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서로 협력하고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으로 정의된다면, 철과 강철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핵심이다. 모래가 세상을 직조하는 실이고, 소금이 세상을 변형하는 마법의 재료라면, 철은 우리가 무언가를 할 수 있게끔 만든다. 장소를 이동하는 일, 건물을 짓는 일, 상품을 만드는 일, 서로를 죽이는 일을 가능하게 한다.
철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심지어 우리 몸을 흐르는 적혈구 속에도 있다. 지구의 핵을 구성하는 주요 원소이고, 지각을 구성하는 두 번째로 많은 원소이다.(알루미늄이 지각의 8%, 철이 5%이다)
구리는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위대한 기본 물질이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만약 구리가 없다면, 우리는 글자 그대로 어둠 속에 매몰 릴 것이다. 강철이 세상의 뼈대를 세우고 콘크리트가 살을 붙인다면, 구리는 문명을 이루는 신경계라 할 수 있다. 구리로 만든 회로와 전선이 없다면 세상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다. 구리는 유리보다 더 보이지 않고 석유보다 덜 눈에 띄지만, 마법적 특성을 지닌 비상한 금속이다.
UN 산하에 있는 국제해저기구의 주 임무는 전 세계의 해저를 관리하면서 바다 밑의 광물들이 누구의 소유인지 판단하는 일이다. 국가를 기준으로 자국의 연안으로부터 200해리를 벗어나면 ‘공해’로 보는데,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서 공해는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규정된다.
공해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국가 중 선두 주자는 중국이다. 중국은 국제해저기구와 네 건의 계약을 체결했고, 해저에서 대량의 자원을 채굴하겠다고 한다. 한국과 러시아는 국제해저기구와 각각 세 건의 계약을 맺었다. 독일, 프랑스, 영국은 각각 두 건의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영국은 그 권리를 미국의 방위산업체인 록히드마틴에 넘겼다.
원유는 천연가스와 더불어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강철이 현대 사회의 뼈대를 이루고 구리가 혈관을 만든다면 석유는 이 세계를 지탱하는 식량이라고 할 수 있다. 석유는 에너지를 제공하고, 비료를 만드는 화학물질의 원료가 되어 지구의 절반을 살게 한다. 자동차부터 제트기까지 동력 수송 혁명을 촉발하여 인류의 생활에 위대한 가속장치가 되었다. 석유 제품과 석유 에너지는 영아 사망률을 낮추었고 영양실조와 싸움에 힘을 보탰다. 연로와 화학물질의 원천인 석유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렵다. 한편으로 온실가스 배출로 기후변화가 가속화되었다.
소금은 지하에 매장된 원유를 그 자리에 고정시키는 데 완벽한 물질이었다. 소금이 있는 곳에는 원유와 가스가 있다. 페르시아만에 엄청난 양의 소금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08년 이란, 1927년 이라크, 1930년대에 쿠웨이트와 바레인에서 원유가 발견되었다.
정유공장과 가스공장에서 나오는 나프타와 에틸렌을 화학회사에서 탄화수소 분자로 맞춤 설계할 수 있는 화학물질과 의약품, 플라스틱을 대량 생산했다. 플라스틱의 발명으로 인류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플라스틱은 저밀도 폴리에틸렌, 고밀도 폴리에틸렌, 폴리스티렌, 폴리염화비닐, 폴리프로필렌 등이 있다. 이들을 5대 범용 플라스틱이라고 한다. 폴리스티렌은 폭신한 스티로폼 포장재, 단단하고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성형할 수 있다. 폴리염화비닐로는 단단한 파이프나 부드러운 샤워 커튼을 만들 수 있다. 폴리프로필렌은 플립탑 병의 뚜껑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하지만, 가구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다. 그 외에도 다양한 고분자가 있다. 부드러운 스타킹을 만드는 재료인 나일론, 에폭시 수지 같은 열경화성 물질도 있다.
리튬은 매혹적인 금속이다. 빅뱅 당시에 수소, 헬륨과 함께 창조된 세 가지의 원시 원소로 우주에서 가장 오래된 물질 중 하나다. 리튬처럼 가볍고 전도성이 있으며, 전기화학적 특성을 모두 갖춘 원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리튬처럼 에너지를 잘 저장하는 금속도 없다. 가벼워서 기름 위에 뜨고, 아주 물러서 식칼로도 자를 수 있지만, 반응이 매우 빨라서 물과 공기에 닿았을 때 거품이 일거나 폭발하는 등 화학 실험실 외부에서 원소 형태로 본 적이 없는 물질 중 하나이다. 일반적인 전기차 배터리는 리튬 40kg, 코발트 10kg, 망간 10kg, 니켈 40kg을 포함한다.
인류는 지금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구축하는 중이다. 지난 몇 세기 동안 인류는 땅에서 에너지 자원을 찾았으나 오로지 연소만을 목적으로 했다. 석탄, 석유, 가스는 추출되고 소각되는 사이 탄소를 배출한다. 탄소 중립을 이루고자 하면서 우리는 열력학과 물질의 제약이라는 피할 수 없는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인류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미래가 걸려있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으로 『광물 전쟁』 (어니스트 사이더, 2025.05. 위즈덤하우스)와 『배터리 전쟁』(루카스 베드나르스키, 2022.12.08. 위즈덤하우스)가 있다.
책 소개
『물질의 세계』 에드 콘웨이 지음. 이종인 옮김. 2024.03.08. (주)인플루엔셜. 583쪽. 29,800원.
에드 콘웨이 ED CONWAY. 옥스퍼드대학교 펨브로크컬리지에서 영문학 석사, 하버드대학교 케네디공공정책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더타임스》, 《선데이타임스》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 경제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 저서, 『위대한 경제』 등.
이종인.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남.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국장, 성균관대학교 전문 번역가 양성 과정 겸임 교수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