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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오 Apr 19. 2023

우리의 지인님께

안녕, 우리의 지인님. 지난 주 너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어. 사실 크게 놀랍진 않았어. 왜냐하면 네가 우리들에게 아버지가 위중하시다는 말을 전했을 때는 그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뜻이었을테니까.

그랬어도 나에게도, 또 우리에게 그 소식은 참 가슴 먹먹한 이야기였고,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던 일이기도 했어. 우리의 지인님, 평소에는 항상 존댓말을 썼지만 오늘은 지인에게 쓰는 편지라는 뜻에서 편한 말로 그냥 작성할게. 지금이 지나면 또 존댓말을 쓸테니까 ㅎㅎㅎ 지금 이순간만 참아줘. 이전에는 항상 네가 이야기해주고, 그 이야기를 우리가 듣곤 했잖아. 근데 오늘은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됐어.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닌 내가 말을 주도적으로 하려니 참 쑥스럽네.


난 2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그날은 지금도 생생해. 아침에 출근하려는데 아버지가 목이 갑갑하셨는지 목덜미를 감싸쥐고는 나에게 어서 출근하라고 손짓하셨었어.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지. 우리 아버지도 마지막 즈음에는 건망증이 심해지셨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용변을 보고 물을 안 내리실 정도였어. 그걸 볼 때마다 내 마음이 무너져 내렸었지. 강해보이던 우리 아버지가 언제 이렇게 되셨을까, 저 모습이 나중에 치매로 번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치매로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으셨나봐. 그렇게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지.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들어왔는데 우리 집에서 전화가 왔던거야. 이상하게 다시 전화해야겠다 싶더라고. 그랬는데 그 전화가 바로 아버지의 부고를 알리는 연락이었어.


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달려가는데 계속 믿어지지 않았어. 우리 아버지는 꽤나 정정하셨고, 연세가 70대셨거든. 한창 청춘이라는 60대를 겨우 지났는데, 어떻게 벌써 돌아가셨다는 건지.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어. 그랬는데 병원에 가보니 정말이었더라고. 황망하고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데 한 가지 위로가 되는 장면이 있었어. 우리 아버지의 돌아가신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는 거야. 우리 아버지는 살아생전 무척 고민거리가 많으셨거든. 내 동생들의 잘 풀리지 않는 인생도 그렇고, 내가 결혼을 못했던 것도 우리 아버지의 고민거리 중 하나였어. 그랬어도 그 많은 고민을 다 내려놓고 하늘 나라로 가셨구나, 싶은 생각이 드니까 마음의 위로가 되더라.


장례식을 치르면서 어떤 마음이었는지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안나.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와의 좋았던 날들에 대한 기억은 생생해져 갔어. 난 어릴 때 아버지와 친하지 않았어. 사사건건 아버지와 대립했지. 내가 스무살이 넘어가고 병으로 아팠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시기를 지나면서 아버지와 화해를 했었어. 아버지는 내 병이 다 본인의 잘못이라고 하셨고, 나는 그게 아니라 내 잘못으로 그런거라고 했거든. 서로 병의 원인이 자신이라며 탓하느라 함께 운적도 있어. 그 기억을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떠오르더라고. 우리의 지인님께도 아버지와의 좋았던 기억이 분명 많이 있을 거야. 그 기억만 간직하고, 아버지를 힘들게 했던 기억은 모두 잊어버려. 아버지께서도 아마 우리의 지인님이 성장하면서 말썽부렸던 것은 다 잊으시고, 훌륭하게 큰 기억만 갖고 계실거야.


옛날에 우리 조상들은 삼년상을 치렀다지? 삼년 동안은 낳아주신 부모에 대한 은혜를 기억하며 살았다는 얘기잖아. 그래서인지 내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삼년 정도는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하면 눈물이 펑펑 나는데 이후로는 조금씩 괜찮아지더라, 고 해. 우리 조상들도 그걸 알기 때문에 삼년이라는 시간을 아예 정해놓았던 게 아닐까 싶어. 그래서 난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2년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아직은 눈물이 펑펑 나와도 괜찮다고 생각해. 삼년이 지나면 이렇게 울고 싶어도 눈물이 안 날지 모르잖아. 그러니 우리의 지인님도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나오면 그냥 펑펑 울어. 그 다음에 다른 일도 생각하고, 앞으로의 일도 궁리하고 해도 괜찮더라. 이건 그냥 내 경험이니까, 참고로 해도 좋아.


다 쓰고 보니 두서가 없고, 위로가 안될지도 모르겠어. 우리의 지인님, 그렇더라도 슬픈 경험을 공유해줘서 정말 고마워. 덕분에 우리도 너를 위로해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잖아. 언제나 우리의 지인님에게서 도움만 받는다고 느꼈는데, 처음으로 너를 도와준다는 느낌이 들었어. 삼가 고인의 명목을 빌며, 언제나 그랬듯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너의 이야기를 들을게. 항상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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