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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오 Apr 24. 2023

꿀벌 뒷다리에 달린 꽃가루 맛이 궁금해서.

정말 궁금했던 나머지 벌어진 일

어린 시절 본의 아니게 꿀벌을 괴롭힌 적이 있다. 우리 집 텃밭에서 참깨를 심어 깻잎을 따다 먹기도 하고, 늙은 호박씨를 심어 호박 덩쿨이 퍼지게 했던 적이 있었다. 어느 날 호박꽃이 탐스럽게 피어난 것을 보고 있는데 할머니가 얘기하셨다. 저 호박잎을 쌈싸먹으면 무척 맛있단다, 라고.


그 말에 호박잎을 따기만 하려고 했다. 호박 덩쿨을 요리조리 살펴보는데 문득 호박꽃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꿀벌이 눈에 들어왔다. 꿀벌은 뒷다리에 꽃가루를 뭉쳐서 달고 잘도 날아다녔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저 꽃가루가 얼마나 맛있길래 꿀벌이 다 모아가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꽃가루가 맛있는 게 분명하다는 결론을 혼자 내려버리고는 꿀벌을 잡아 저 꽃가루를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꽃가루를 먹어보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호박꽃 속에 손가락을 넣고 휘휘 젓기만 해도 손가락에 묻어나는 게 바로 꽃가루 일 터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꽃가루를 손쉽게 먹어볼 수 있었을텐데. 어리석게도 그때의 나는 꿀벌을 잡아다가 뒷다리에 달린 꽃가루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해버렸다. 왜인지 모르게 그게 더 맛있어 보였다. 


꿀벌을 잡는 일은 안타깝게도 무척 쉬웠다. 어떻게 손쉽게 잡을 수 있었느냐면 호박꽃의 구조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호박꽃은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통꽃으로 꿀이 있는 쪽으로 꽃잎이 모여서 하나의 통 같은 모양을 이루고 있다. 안으로 좁아지는 구조라 꿀벌이 호박꽃 속의 꿀을 먹으려면 반드시 배를 밖으로 내밀고 머리를 안으로 들이밀어야 했다. 그 덕분에 나는 뒤로 엉덩이를 내민 꿀벌의 날개를 잘 모아서 두 손가락으로 잡고 억지로 꽃 밖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 그 꿀벌의 뒷다리에는 꽃가루가 가득 달려있었다.




나름 머리를 굴려서 미리 준비해 놓은 핀셋으로 꿀벌의 뒷다리에서 꽃가루를 살살 떼어냈다. 꿀벌은 날개를 모두 붙잡혀있던 터라 마구 몸을 흔들었지만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해서 떼어낸 꽃가루를 한번 혓바닥에 대어보았다. 동시에 나는 긴장이 풀어지며 꿀벌을 붙잡고 있던 손가락에서 힘이 살짝 풀어지고 말았다. 


바로 그 순간 꿀벌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꿀벌은 날개를 부르르 떨더니 자신의 몸을 잡고 있던 내 손가락 위로 올라왔다. 그 상황을 내가 깨닫고 대응하기 전에 꿀벌은 힘껏 내 손가락에 무엇인가를 발사했다. 바로 벌침이었다.




나는 그대로 손가락을 감싸쥐며 난리를 피웠다. 방방 뛰어다니고 아프다며 소리소리를 질러댔다. 그 바람에 놀란 할머니가 내 손가락에 된장을 발라주셨고, 잠시 후 병원에 가기도 했다. 그러는동안 그 꿀벌은 아마 장렬히 전사했을 것이다. 꿀벌이 죽은 모습을 확인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벌침을 쏘고 난 뒤 꿀벌은 보통 죽는다고 하니 아마도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그 덕분에 나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꿀벌 뒷다리에 달렸던 꽃가루의 맛을 볼 수 있었다. 그 맛은 무척 씁쓸하고 단맛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이걸 대체 왜 먹는걸까? 하는 의문만 가득 들었다. 호기심덕분에 사고를 쳤으니 그날 가족 모두에게서 알밤을 한대씩 쥐어박히긴 했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는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앞으로는 꿀벌 괴롭혀서 꽃가루를 빼앗는 짓은 하지 말자는 교훈을 말이다. 꽃가루는 꿀벌에게는 무척 소중한 먹을거리이다. 그걸 내가 호기심으로 빼앗으려 했으니. 꿀벌에게는 생사가 오고가는 중대한 사건이었을텐데 말이다. 그 당시 나를 쏜 꿀벌에게도, 그 모습을 지켜본 자연에게도 새삼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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