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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오 Mar 27. 2023

시력 2.0

내 시력이 빛나는 순간

내 양쪽 눈의 시력은 짝짝이이다. 한쪽 눈은 0.6이 살짝 안되고, 다른 쪽 눈은 0.6 이 살짝 넘는다. 살짝이라고 표현했지만 그 살짝이 두 번 붙자 희한하게도 차이가 꽤 나게 되었다. 그래서 잘 안 보이면 잘 보이는 쪽 눈을 크게 뜨고 잘 안 보이는 쪽의 눈을 살짝 감기도 한다. 시력이 조금 안 좋다보니 어렸을 때는 시력검사 판의 숫자나 글씨를 외워서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안경을 쓰기 싫다는 게 그 이유였는데 나중에 '어느 쪽으로 뚫렸는지 맞춰봐라.'라며 간호사 언니가 모양을 집었을 때 들키고 말았다. 도저히 그 많은 모양들이 어느 방향이 뚫렸는지 외울 재간이 없었다. 그때 어찌나 혼나기도 하고, 어른들이 어이없어 하셨는지 모른다.




이런 나도 시력이 매우 빛나는 순간이 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건 바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찾아내는 순간이다. 길을 가다가 바로 앞의 간판 글씨는 잘 못 읽어도 그 뒤에 서 있던 사람이 담배꽁초를 길거리에 버리는 모습은 희한하게도 금방 알아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저렇게 비양심적인 사람이 다 있나.' 

 그러면서 나는 차가 안 지나간다는 이유로 횡단보도 신호등이 빨간불인데도 그냥 막 건너가곤 했다.




바로 어제 있었던 일이다. 한 아버지가 아이와 함께 길을 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아이가 큰 소리로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빠는 왜 운전만 하면 그렇게 욕을 해?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잘못을 많이 해?"

그 말에 아이의 아버지는 무안한 듯 아이의 손을 재빨리 낚아채어 자리를 피했다. 아이를 데려가면서 아버지는 아이에게 무엇인가 속닥거렸다. 그 속삭이는 소리가 무엇이었을지 제법 궁금해졌다. 과연 '그 사람들이 욕을 먹을 만 하니까 욕을 한 거야.'라고 말했을까. 아니면 '아빠 창피하게 왜 그리 사람 많은 데서 그런 말을 해!'하며 혼을 냈을까. 아니면 '네가 듣는 앞에서 욕을 해서 미안하구나.' 라며 사과를 했을까. 




그 아버지도 분명 눈에 보이는대로, 다른 사람의 운전하는 중 하는 잘못이 보일 때마다 욕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욕은 놀랍게도 그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들은 게 아니라 뒤에 타고 있던 아이가 듣고 있었다.  아이는 들으면서 이상하다고 느꼈나보다. 평소 욕을 잘 안 하는 아버지가 운전만 하면 욕하는 모습을 이상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의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왔을 것이라 추리할 수 있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보고 투덜거리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아무도 듣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며 생각하고 말했던 나의 불평섞인 말들. 그 말들을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듣고 있었다. 어째서 스스로에게 좋은 것만 주고, 좋은 말만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해놓고서는 타인에 대한 것이라며 '불평섞인 말'을 나에게 들려주고 있었을까. 게다가 타인의 잘못에는 삿대질을 하면서 어째서 내가 하는 더 큰 잘못에는 눈을 감고 지내고 있었을까. 그 아이는 분명 자신의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한 것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나에게 그 말을 한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아이는 그 자리를 지나가던 주위 모든 어른들에게 들으라고 큰 소리로 말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한 마디에 가슴이 콕콕 박힌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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