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잠도 제대로 못 잔 데다가 출발예정시간까지 늦지 않고 약속 장소로 가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차량에 탑승하기 전까지 긴장의 연속이었다.
긴장이 풀리니 때를 기다리고 있던 무거운 눈꺼풀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한 시간 여쯤 달렸을까?
알마티시내를 벗어난 외곽의 전경은 정말 시원하고 아름다웠다. 하늘은 하늘색 들녘은 초록색.
아르바트 거리에 진열되어 있던 그림들처럼 자연의 모습은 원색 그대로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아직 본격적인 투어가 시작된 것도 아닌데 카자흐스탄의 자연과 첫 만남으로도 마음이 설레었다.
잠시 휴게소에 들르는 시간. 다들 간단히 화장실 용무를 해결하고 간식을 사들고 가벼운 스트레칭을 한 뒤 차에 올라탔다. 인사를 못 나눴던 팀원들과도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서로 간식을 나누어 먹으며 서로를 알아가고 얼굴을 익히기 시작했다. 처음의 어색함은 어느덧 사라지고 다들 오늘의 일정이 즐겁고 또 무사히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한마음으로 다시금 목적지를 향해서 차는 출발했다.
샤이. 정말 한적하고 조용한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에 우리는 푸르공이란 차로 갈아탄 뒤
첫 목적지인 카인디호수를 향해 달릴 예정이다.
러시아군용 지프였던 푸르공은 이제는 군사적인 용도가 아니라 이렇게 관광객들을 위한 이동수단으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푸르공을 처음 봤을 때 차제가 귀엽기도 했지만 오래된 철판떼기 같은 이 녀석이 과연 잘 달릴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푸르공은 나의 걱정을 가볍게 무시해버리기라도 하듯 비포장도로를 폭주하기 시작했다. 울퉁불퉁한 길을 내달리니 차 속에 있던 팀원들의 몸은 좌우로 흔들리고 위로 점프를 하다 제자리도 내려앉고 난리가 아니었다. 마치 놀이동산의 놀이기구라도 타는 듯이 우리는 신이 나서 소리를 지리고 깔깔 웃으면서 푸르공의 질주를 함께 즐겼다.
이럴 땐 어른들도 아이들과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점점 나이가 들면서 우린 잊혀가고 있는 옛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삶이 너무나도 바빠 그럴 시간조차도 가질 여유도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오늘만큼을 어른들도 동심의 세계에 빠져보자~!
아악~!!!
갑자기 비명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졌다. 우리가 타고 있던 푸르공은 아주 아슬아슬하게 길 위에 평화롭게 누워있는 '양'님을 요리조리 피해 가고 있는 중이었다. 겂없는 양 떼들은 차량의 질주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배를 깔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혹시라도 양들이 밟히면 어쩌나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노련한 운전기사는 가뿐하게 양들을 피해 가며 내달리기 시작한다. 비포장도로와 양 떼들을 피하니 이번에 시냇가가 등장했다. 그 어떤 곳도 거침없이 내달리는 푸르공은 이번에도 가볍게 물길을 건너는 데 성공했고 그렇게 달리고 달려 드디어 카인디호수 입구까지 도착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호수가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은 아니다.
신비로움으로 꽁꽁 감추고 있는 호수를 보기 위해서는 다시 산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 도보 또는 말타기.
정상까지 걸어가려면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했는데 충분히 해볼 만한 코스라고 생각했다.
동행이 있으면 같이 걸어 올라갈까 했는데 때마침
위아래 모두 흰색으로 깔맞춤 하고 머리까지 파리가 미끄러지듯이 뒤로 넘긴 스페인출신의 한 팀원이 '렛츠고'하자고 한다. ok
말을 타고 올라가겠다는 나머지 팀원들을 뒤로하고 우리 두 사람은 먼저 걷기 시작했다.
알마티에 와서 트레킹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로라면 가벼운 체험이라고 생각하며 도전했던 나.
하지만 그런 호기는 금방 후회로 바뀌고 말았다.
말똥으로 뒤덤벅된 산길은 진흙처럼 미끄러웠고 거기에 빗방울까지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며 등반은 금세 고행으로 바뀌고 말았다. 미끄러운 가운데를 피해 길 가장자리로 걸으니 밑으로 굴러 떨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허허~!!! 숨이 차오른다. 자신 있게 걸어 오르기로 결심했지만 운동 부족으로 인해 금방 내 몸은 지치고 땀으로 목욕을 하고 말았다. 스페인 팀원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산책하듯 사뿐하게 올라가는데 여간 부러운 게 아니었다. 뒤따라갈 테니 먼저 올라가라고 한 뒤 물을 들이켜고 호흡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린 뒤 다시 일어섰다. 그러기를 4~5차례 반복하니 드디어 내리막길이 나타나고 산속 깊숙한 곳에 꽁꽁 아름다운 자태를 숨기고 있던 카인디호수가 눈앞에 내게 인사를 건넨다.
우리는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던지 혹은 숲 속의 요정들이 살 것 같다는 표현을 종종 사용한다.
사실 다른 미사여구로 카인디호수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그런 진부한 표현 외에 또 다른 단어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 카인디호수는 그렇게 아름다웠다.
거의 다 죽어갈 듯이 산을 넘어 찾아왔지만 어느새 피로는 사라지고 말았고 널찍한 돌판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멍을 때리기 시작했다.
아~아름답다. 정말 아름답네~!!!
혼자서 이 말을 몇 번이나 되네이며 호수를 바라보았다.
깊고 깊은 산속에 짙은 청록색의 에메랄드빛 호수 그리고 물속에 잠긴 찬 채로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나무의 모습은 정말 신비로웠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은 인증숏을 남기기 바빴고 한쪽에서는 카자흐스탄 전통 의상을 입고 독수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힘들었지만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이 호수는 앞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하니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을 때 찾아와서 얼마나 다행인가~
잠시 그쳤던 빗방울이 다시 굵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감상도 마쳤고 사진도 남긴 팀원들과 함께
우린 다시 카인디호수입구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이번에는 걸어서 아니라 말을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참 고맙게도 영국친구가 자긴 걸어가면서 파노라마를
찍고 싶다며 공짜로 말을 태워줬다. 올라오느라 기진맥진 힘이 다 빠졌는데 갈 때는 편하게 내려갈 수 있어서 너무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