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쯤 되었을까? 침대 위에 누워 있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버린 것 같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새벽 3시경.
깊이 잠이 들었어야 했는데 애매한 시간에 잠이 깨버렸다. 밖은 아직도 깜깜하다. 내리던 비는 그치고 온 세상은 조용하다.
두 시간 정도 뒤척인 것 같다. 혼란스러운 첫날을 보내서인지 둘째 날의 기대감 때문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익숙하지 않은 잠자리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잠이 들고 두 시간 정도 있다가 결국은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각오를 단단히 했다. 어제 제대로 못한 일정들을 소화야내야지. 본격 도보여행의 시작이다. 패키지보다 더 빡빡한 일정으로.
호텔에서 간단히 조식을 해결하고 짐을 꾸리고 나섰다.
하늘이 무척이나 맑다. 오늘은 좋은 일들이 있을 것 같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알마티의 지하철은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길게 늘어서있다. 첫 번째 섹션으로 구분 지었던 raiymbak batyr 역으로 이동한다. 오늘 여행은 그곳을 시작으로 남쪽으로 걸어 내려와 하나하나 둘러볼 예정이다.
알마티의 지하철역들은 정말 지하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참 내려가야 지하철을 탈 수 있는 플랫폼에 당도할 수 있다.
역은 굉장히 깨끗하고 조용한 편인 데다가 이용객이 그리 많지도 않았다. 땅덩이는 넓은데 인구가 적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알마티는 버스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배차간격이 좀 있는 지하철의 이용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알마티의 지하철은 우리나라 회사가 참여했다. 그 사실을 알고 가서인지 모르겠지만 지하철이 출발할 때 나는 소리가 우리의 서울지하철소리와 비슷한 것처럼 들렸다. 왠지 모를 반가움과 꼭 이럴 때 느끼는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은 어쩔 수 없나 보다.
raimybak batyr역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들른 곳은 알마티 기차역이다.
왜 이곳에 가게 되었는지 무척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사실, 시간적 여유가 좀 더 있었다면 이 기차를 타고 다른 도시들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고려인들이 정착해 거주하고 있는 우슈토베나 카자흐스탄 제3의 도시 쉼켄트, 카라칸다를 거쳐 수도인 아스타나까지~
내겐 상상만으로 낭만적인 기차여행이다. 기차를 타보지는 못하더라도 그냥 역을 배경 삼아 기념사진도 찍고 벤치에 앉아 음악을 들으면 잠시나마 오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각자의 사연을 갖고 오고 가는 사람들~
다음에는 나도 저들처럼 꼭 한번 기차를 타보겠다 다짐하며 다음 코스를 향해 걷는다.
알마티 센트럴 모스크, 이슬람 사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 사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나는 종교가 없다. 그리고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를 존중하는 입장이다. 이슬람 사원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기에 이슬람 사원이 있는 나라로 여행을 할 때 꼭 들르는 편이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를 여행했을 때에도 꼭 이슬람 사원을 거쳐갔다.
예배 시간이 아니어서 그런지 주변은 매우 조용했고 몇몇 관광객의 모습만 볼 수 있었다.
마침 말레이시아에서 온 관광객들을 만나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간단한 대화를 나누었다.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있는 미나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는 중앙의 돔. 아랍어로 써져 있는 글귀들과 독특한 문양의 장식들이 너무나도 이채롭고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슬람 사원을 관람한 뒤 이번에는 그린바자르,
질뇨늬 바자르로 향한다. 역시나 튼튼한 두 다리로 열심히 걷기 시작한다.
그린 바자르는 이름처럼 건물 외벽이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는 시장이다. 어느 나라를 방문하던지 시장구경처럼 재미있는 여행도 없다. 떠들썩하면서 사람 사는 냄새 도나고 이것저것 볼 것 많고 맛있는 것도 많은 곳이 시장 아니겠는가?
시장은 과일과 말린 과일을 파는 상점들이 많았다.
알마티는 일명 apple city라고도 불린다. 이곳이 사과재배로 유명한 도시이기에 이름 또한 알마티라고 불린다. 예전에는 알마아타나 알마타로 부르기도 했다. 사과가 맛있을 거 같은데 사과 맛은 생각보다 별로다. 대신에 납작이 복숭아를 샀다.
내가 이 복숭아를 처음 먹어본 건 프랑스 파리를 여행했을 때인데 모양도 참 신기한 데다가 맛까지 너무나도 훌륭해서 잊을 수가 없었다. 알마티에 와서 이 녀석을 다시 만나게 되니 너무나도 반가웠다. 얼마나 잘 익었는지 단내가 진동을 한다.
호텔방에 돌아가서 깨끗이 씻어 맛을 볼 생각에 신이 난다. 시장을 나가려는데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가 있다. 원래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데다가 팔고 있는 아이들이 똘똘해 보이고 귀엽기도 해서 하나 사 먹었다. 잠시 더위도 식힐 겸 나무 그늘 밑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주르르 녹아내려 손이 지저분해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