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설] 4. 11월 15일 금요일 심근경색(2)
4. 11월 15일 금요일 심근경색(2)
‘그놈의 심근경색’ 때문에 잊고 있었던 과거를 소환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발생한 일종의 화병 같은 거라 생각했다.
나는 한 남자와 세 번 결혼하고 세 번 이혼했다. 머리가 좋은 그는 세상 보는 눈이 빨랐다. 한발 앞선 분석으로 사업을 했고 이내 곧 망했다. 사업비가 없으니 망하기가 쉬웠고 일어서기는 어려웠다. 아마도 무선 전화기 초기, 무전기 같은 휴대전화 사용 시절이었을까? 아님 삐삐 쓸 때였을까? 모르겠다. 암튼 그는 영상전화기 사업을 했는데 적은 투자금으로 버티지 못하고 곤두박질치며 내리막길을 걷더니 너무도 빨리 망했다.
그는 나의 모든 신용을 끌어다 야금야금 대출을 받았고 급기야 나도 모르게 내 명의로 빌릴 수 있는 모든 돈을 빌렸다. 회복하려고 애쓸 때마다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진 그는 그 사실을 나에게 말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강의 도중에 은행으로부터 빚 독촉 전화를 받는 상황이 되었다.
망한 거 빼고는 가정생활에 최선을 다하는 좋은 남편이었다. 문제는 나머지 모두를 합한 것보다 경제적인 부분이 치명적이었다는 것이다. 지속적인 빚 독촉 전화를 받다 보니 나는 급격하게 피폐해졌고, 폭망해서가 아니라 나 모르게 나에게 많은 일들이 벌어졌음에 화가 났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사람이었고 같이 잘살아 보려고 애쓰다 벌어진 일이라 생각하니 화를 낼 수 없었다. 가슴을 쥐어짜는 흉통이 시도 때도 없이 생겼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난 사실 알고 있었다. 내가 진짜 화가 났던 것은 내 작은 명예에 커다란 상처가 났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콧방귀가 나올 법한데 그때는 목숨을 내놓고 싶을 만큼 그게 몹시도 괴로웠다. 흉터가 돌아다니다 가슴 언저리에 닿으면 사정없이 가슴팍을 쥐어짜는 것 같았다.
그때 처음으로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던 아버지가 역시 처음으로 이해되었다. 그 옛날 아버지는 과수원 팔고 대학에 등록할 만큼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있는 인텔리였고 어마어마한 독서광이셨지만 어느 정도 자란 내 눈에 비친 아버지는 가족이 가난에 찌들어 사는데도 경제적으로는 무능한 알코올 중독자였다.
“마시지도 못하는 술 그만 마시고 차라리 바가지 긁어.” 속이 탔던 남편이 술잔을 뺏으며 말했다.
“우리 이혼하자! 어차피 내 빚, 내가 모두 갚을게.”
“그렇게 해야 너! 안 아프겠니?”
난 강의 외에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밖에서는 ‘교수’라는 타이틀이 있어서 여러 기관에서 하는 연구, 자문, 프로그램 개발, 강의 등 전임강사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몇 년이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많은 돈을 벌었지만 내게 남는 것은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나는 사용하는 화장품이 너무 비싼 거였다며 점점 저렴한 화장품으로 바꿔나갔다.
남편은 늘 내 주변에 있었다. 그러던 중 시아버지가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고 판정 후 3개월을 버티지 못하셨다. 돌아가시기 전에 나를 찾는다 하여 두려운 맘으로 병실에 갔다. 시아버지는 ‘아들과 같이 살아라.’ 하는 유언을 남기셨다. 우리는 다시 결혼했다.
내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던 남편은 어떻게 해서라도 빨리 성공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주식을 해서 얼마간의 비용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선물옵션을 했다. 처음에는 확 불어난 수익에 조증환자처럼 좋아했다. 잠시였다. 그는 욕심을 냈고, 얼마 안 가 모든 수익을 날렸다. 그는 늪에 빠지기 시작했다. 도박중독자처럼 변해갔으며 좀처럼 헤어나질 못했다.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던 그가 소위 도박을 그만두지 못하겠다 했을 때 나는 또 이혼을 생각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