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설] 4. 11월 15일 금요일 심근경색(1)
4. 11월 15일 금요일 심근경색(1)
벌써 몇 번을 혼자 살아봤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집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무서운 일이었다. 퇴근하면 매일 조금씩 짐을 다시 정리했다. 그러나 밖이 컴컴해지면 나도 모르는 두려움에 휩싸여 얼른 불을 끄고 침대로 향했다. 침대에 누우면 11월 ‘심근경색’이 떠올랐다. 이사 이후로 계속 캘린더 보라색 글씨가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심근경색이라... 보라색 글씨는 확정된 것일까? 내 인생 내가 만들어가는 거 아닌가?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몇 해 전부터 나름 경제적 자유를 위한 재테크 공부도 하고 자기 계발도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내년 9월... 늦여름 더위에 여행을 떠날 만큼 건강하다는 거 아닌가? 일종의 경고? 어떻게 이걸 플러스로 만들 수 있을까?
아, 어머니! 추워지기 전에 고향에 한 번 다녀가야 할 텐데... 자고 있었던 것인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아침에 잠이 깰 때까지 머릿속에서는 생각의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밤마다 괴롭히고 있었다.
“10월 가기 전에 아니면 11월 초에 어머니 고향에 한 번 다녀가야 하지 않을까?” 서울에 있는 오빠한테 전화했다.
“어머니? 왜?”
“아니, 겨울이 오면 외출이 힘드니까. 추워지기 전에 한 번 다녀가면 좋잖아. 동생도 보고 살던 곳도 둘러보고.”
“일단 생각해 볼게. 어머니 10m도 걷기 힘들다. 그리고 시간마다 기저귀 갈아입어야 해서 멀리 떠나는 게 힘들 것 같은데.”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 있을 때 와야지. 내려오면 내가 알아서 할게.”
“알았다. 요양원 가서 의논해 보고 전화할게.”
결국 오빠한테 들은 답은 내년 봄에 추진하겠다는 답이었다. 내년 봄이라... 어머니에게 봄이 올 수 있을지, 11월에 요양원 한번 다녀와야겠다.
“이사했는데 축하주 한잔할까요? 10월도 끝나가고.”
“좋아요. 언제적 불금인지는 모르겠지만 금요일 저녁 6시 반에 거기서 봐요.” 오랜만에 곰팅한테서 연락이 왔다.
곰팅은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계약 관계의 술친구였다. 내가 대학 전임강사를 그만두고 제주도 임기제 공무원이 되었을 때 같은 과 소속 회식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돌하르방처럼 생긴 외모에 몸은 곰처럼 뚱뚱하고 귀는 부처님 귀처럼 크고 축 늘어져 있어서 ‘곰팅’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집이 같은 방향이라 술 마시면 늘 집까지 바래다주고 가서 친구처럼 친하게 된 남자 사람 동생이지만 서로 존대를 했다.
어느 한쪽에 다른 사람이 생기면 술친구의 관계는 끝난다는 조건으로 친구 계약을 맺었다. 겉으론 늙어 보여도 아직 미혼인 곰팅은 둘이 술을 마시다 아는 사람들 눈에 띄어 구설수에 오를까 봐 조심했었는데 언젠가부터 개의치 않았다. 아직도 우리는 2~3주마다 주기적으로 술을 마시고 있다. 이번에는 한 달 만에 만났다.
“뭔 일 있어요?” 소주를 계속 들이키고 있는 나에게 곰팅이 물었다.
“저, 이러다 정말 심근경색 걸리겠어요. 잠을 못 자서요.” 뭐라 말은 못하겠고 이사한 집이 낯설어 잠을 못 잔다고 했다. 곰팅은 웬만해선 술이 취하지 않았고, 나는 가끔씩 술을 마시면 필름이 끊길 정도로 폭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니까 인도 할머니가 마이너스 캘린더를 주셨는데 나보고 심근경색 주시려나 봐요.”
“뭔 말이에요? 어디 아파요?”
“그러니까 인도 할머니가 마이너스 캘린더를 주셨다고요. 암만 그래 봐라, 내가 아프나!”
어떻게 집에 왔는지 또 필름이 끊겼다. 새벽에 눈을 떴을 때 가슴이 쫙~ 조이는 고통에 움직일 수 없었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아! 또 시작되었구나!’ 한동안 잊고 있었을 뿐 돌이켜 보면 이런 증상이 여러 번 있었다. 가슴이 쥐어짜듯 아픈데 턱관절과 이도 같이 아팠었다. 고춧가루 뿌려 놓은 것 같은 작열감과 공포! 그럴 땐 그대로 멈춰서 증상이 사라지길 기다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