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설] 6. 1월 31일 어머니 장례식(2)
결혼 전까지 일본 유학파 출신의 아버지 밑에서 곱디곱게 자란 어머니는 그 옛날 중학교도 다녔고 제주도에서 제일 먼저 책가방과 운동화도 신었다. 조그맣고 고운 얼굴에 순하고 착해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고 했다. 지금으로 치면 어머니가 살았던 그 곳에서는 ‘여신’이었던 것이다. 그런 어머니는 전염병에 뇌손상을 입었어도 가족들을 살리려 모진 고생을 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그 당시에는 누구나 다 그렇게 힘들게 살았지!’ 할 수도 있다. 어머니의 기구한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큰오빠 28세 때 암으로, 언니 28세 때 백혈병으로 어렵게 키워 낸 자식들이 28세만 되면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나머지 자식들도 28세가 되어 세상을 떠나면 어쩌나? 하는 그 속을 누가 알 수 있을까?
3남 2녀 다섯 명의 자식은 어렸을 적부터 뿔뿔이 흩어져 구두닦이며 옷가게 점원이며 일찌감치 각자 자기의 삶을 살아내야 했다. 나름 무탈하게 살았으나 28세가 되면 약속이나 한 듯 떠나버렸다. 그렇게 둘째 오빠는 큰오빠가 되었고, 막내 오빠는 둘째가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범위 내에서 모든 식구가 다 함께 살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단칸방에 살 때도 어머니, 아버지, 막내 오빠와 나였다. 우리는 모두 세 살 터울이었고, 중학교만 졸업하면 독립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집안일은 늘 내 몫이라 집에서 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 공부는커녕 신나게 놀아본 기억도 별로 없다. 확실한 건 나는 늘 외로웠고 한밤중에 일에서 돌아온 어머니의 품이... 음식 냄새 켜켜이 박혀 있던 그 어머니의 품이 몹시도 그리웠다는 것이다. 밑바닥에 구멍 뚫린 옹기마냥 내 가슴에 메꿔지지 않는 조그만 틈이 늘 있었고, 그 틈을 갉아 먹는 뭔가가 공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교직생활 했던 아버지는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다. 가끔씩 드물게 법률 자문을 하고 문서를 써주는 걸 본 적이 있기는 하다. 그런 날이면 목돈을 받아와서 밀린 집세를 냈다. 하지만 그런 날은 많지 않았다. 간경화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술을 완전히 끊으셨지만 66세에 세상을 떠나셨다. 남은 자식들 세 명은 모두 서울에 올라가 살았고 혼자가 된 어머니는 제주도에 살았다.
12월 말에 또 요양원에 갔다. 어머니는 손뜨개로 보이는 털모자에 서너 겹의 옛날 옷들을 입고 있었다.
“어머니, 옛날에 우리 집에서 살았던 거 기억나?” 이번에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아버지는 기억나?”
“니네 아버진 아주 젊었을 때 죽었지!”
“젊었을 때?”
“니네 아버진 스물 몇 살에 죽었지.”
“아니, 옛날에 아버지하고 금강산 구경 간다고 했었잖아.”
어머니는 모르겠다고 했다. 나의 기억에는 있다. 아버지는 어머니하고 금강산 구경 간다고 달력에 동그라미 표시를 해뒀지만 그 날짜는 아버지에게 오지 않았고 어머니에게서도 사라졌다. 어머니는 무슨 이유로 남편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린 것일까? 그래도 어머니 중년에는 아버지하고 꽤나 잘 지내신 것 같은데.
“나, 어렸을 때 냇가에 빠졌던 건?”
이번에는 나를 보며 새벽에 자는 나를 업고 내가 빠졌던 장소에 3일 동안 넋 드리러 갔던 일을 신이 나서 말했다. 세상 떠난 큰오빠와 언니에 대해서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내년 봄에 제주도 가자.” 다시 촉촉해진 눈으로 어머니는 끄덕끄덕하셨다.
“그러니까 밥도 잘 먹어야 해. 그래야 힘내서 제주도 가지!”
“그래그래, 내년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