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설] 6. 1월 31일 어머니 장례식(1)
6. 1월 31일 어머니 장례식
지난 11월 셋째 주 주말 일산에 있는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보러 갔었다. 박사 딸이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그렇게 자랑했던 어머니가 언제부터인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냥 내가 딸이라고 하니 딸인가 보다 했다.
“나, 지은이!”
“지은이냐?” 손 붙들고 눈물 글썽글썽 하시지만 어머니는 찾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그렇게 하신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머니, 제주도 가고 싶지 않아?”
“제주도?” 잠시 고민하듯 말이 없으시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어머니가 제주도 떠날 때 그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어머니는 70년 넘는 세월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10년 넘는 세월을 혼자 제주도에서 살았다. 디스크 수술로 잠시 우리 집에 계시다가 오빠 집에 갔을 때 오빠는 제주도 집을 팔겠다고 했다. 집이 없어질 거면 어머니가 제주도 집에 가서 뭔가 정리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나는 우겼고 오빠는 반대했었다.
살던 집에 마지막으로 갔던 어머니는 서랍장, 장롱에서 정말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것들을 보따리에 쌌다. 한참을 아무거나 쌌던 어머니는 이내 뭘 해야 할지 몰라 넋을 잃은 사람처럼 앉아 계셨다. 황망한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것을 나는 외면했고, 이모가 분위기 바꾸느라 보따리를 풀어헤치고선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부산억양으로 ‘필요한 거’를 물어보며 다시 골랐다.
진행성 치매가 있었던 어머니는 오빠 집에서 1년도 살지 못했다. 며느리가 자궁암에 걸린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는 요양원에 가셨고 그 후로 10년 넘게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었다. 오빠는 올케언니 병이 완치되었어도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지는 않았다.
나에게 글 쓰는 재주가 있다면 언젠가 어머니의 인생을 소설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머니의 삶이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삶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대학 3학년쯤 외할머니께 들은 이야기이다. 어머니는 열여덟 살에 아버지와 결혼했는데, 어머니 20대 시절인 1960년대 전국적으로 유행하던 일본뇌염에 걸렸다. 어머니만 걸린 게 아니라 아직 어린 둘째 아들도 같이 걸렸다. 시댁에서 나 몰라라 하니 친정에서 딸과 손자를 데려와 서울 큰 병원으로 갔다. 이들을 살리려고 과수원 팔고 병원비 마련하며 애썼지만 손자는 너무도 짧은 삶을 마감했고, 딸은 다행히 살아났다.
살아나는데 조건이 필요했던 것일까? 정말 다행히도 기적처럼 살아나긴 했지만 곧 들려온 소리는 ‘정신연령 0살!’
할머니가 ‘정신연령 0살이라는 것은 뇌손상을 입었다는 것’이라고 알려주지 않았으나 나는 그렇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딸을 친정으로 데려온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린 아기 돌보듯 딸을 돌봤지만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가 어머니를 요강에 앉혀 놓고 과수원 갔다 돌아오면 그때까지 어머니는 그 자세 그대로 돌처럼 있었다. 말도 잃었고 행동도 잃었고 모든 것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러가고 있을 때 부산에 살고 있던 동생이 “아이고, 언니~! 우리 언니 이게 뭐야?”하면서 달려와 끌어안고 대성통곡을 했다. 어머니가 그런 동생을 알아보고 어버버...어버버 하더니 말문이 트였다. 어머니는 빠른 속도로 말을 다시 하게 되었고 말을 하기 시작하니 수다스럽기까지 한데다가 난데없는 욕설도 펑펑 쓰게 되었다고 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어머니가 아팠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냥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다 큰 내 눈에 ‘기계치’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을 뿐, 오히려 삶의 지혜가 엿보이는 정 많고 여유로운 분이었다. 말투가 촌스럽고 이상한 욕을 써도 신기하게 어머니에게는 조급함이라는 것이 없었다.
어쨌든 어머니가 일상생활이 가능하게 되자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머니를 시댁으로 보냈다. 시어른의 구박이 얼마나 심했는지 무성한 소문들이 바람만 불면 바람타고 외할머니 귀에 쉽게 들어왔다. 그러나 당사자인 어머니는 그 사실을 절대 친정에 알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으신 것일까?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식당에서 청소며 설거지며 온갖 궂은일 하며 가족들을 먹여 살렸다. 내 기억에 내가 고등학교 막 올라갔던 시기에 1년 정도 어머니가 없었다. 돈을 벌려고 일본에 있는 공장을 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