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설] 5. 12월 24일 퇴직 통보
5. 12월 24일 퇴직 통보
병원에 다녀오면서 보라색 글씨에 대해 더 이상 예민하게 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선물 받은 것이니 최대한 활용하자 작정한 것이다. 여하튼 크리스마스 전날 퇴직 통보는 어떻게 된 걸까? 아직은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임기제 공무원이라 이렇게 중간에 퇴직 통보를 받는 일은 없다.
3년 전 도청에 임명장 받으러 갔을 때, 부지사님이 “임공?”하고 흘겨보시며 곧 내가 담당해야 할 센터에 대하여 개념과 목적, 운영 방향을 물으셨다. 14대 1의 경쟁을 뚫어서 된 사람답게 명랑한 목소리로 줄줄 답을 했더니 나를 쳐다보며 웃으셨다. 그런데 “임공이 뭐예요?” 나의 질문이었다.
내 이름의 빚을 거의 갚았을 무렵 나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이왕 하는 일이라면 즐기면서 하자’라고 생각해도 모든 일들이 싫었다. 힘들다가도 강의를 하면 에너지를 얻어 오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래서 모든 일을 그만뒀다. 한동안은 퇴직금으로 지낼 수 있으니 일단은 쉬어야 했다.
곧 조교수가 될 거라는 소식이 들려왔으나 기쁘지 않았다. 맘먹었을 때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꾸역꾸역 억지 삶을 살게 될 것이 분명했다. 되돌아보면 대학 졸업부터 이때까지 쉼 없이 일만 하고 살아왔어도 남는 게 하나도 없는 삶이었다. 뭔가 다시 재정비를 해야만 할 것 같아서 그 좋은 대학교수 타이틀을 휙! 버렸다.
홀가분한 마음도 잠시! 내 인생 꼬이는 게 뭐가 이리도 많은지... 제주도에 혼자 살고 계셨던 어머니한테 전화했더니 횡설수설하는 어머니의 힘없는 말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폭풍 전야 같은 예감에 온몸이 긴장되어 바로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어머니는 거의 사경을 헤매는 상태로 누워 계셨다. 그때는 남편이 옆에 있었을 때라 남편과 같이 어머니를 큰 병원에 모시고 갔다. 자초지종을 따져보니 허리가 아파서 시내 병원에 갔고, X레이 찍고 확인한 병원에서는 대수롭지 않다며 약만 처방해 줬다. 약을 먹어도 어머니의 통증은 더해 갔고 급기야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되어 며칠 동안 먹지도 못했다. 의사 오진이었던 것이다.
급히 서울 전문병원에 예약했다. 오빠들한테 어머니 수술 후 모실 수 있는지 물었더니 모두 자기들 사업 하느라 힘들다고 했다. 남편이 선뜻 우리가 모시자 했다.
어머니는 서울에서 디스크 수술을 받으셨고, 우리는 나의 퇴직금으로 약간 넓은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약 1년 어머니는 우리와 함께 살았다. 어른들한테 넉살 좋은 남편은 어머니를 잘 모셨지만 성향이 정반대인 나는 툭하면 어머니와 싸웠다. 그렇게 싸웠던 게 지금까지 내 가슴 속을 후벼파고 있다. 잘해드릴 걸!
퇴직금은 날아갔고 둘째 오빠가 어머니를 모셔갔다. 남편이 종부세 날벼락 맞은 게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우연히 마감에 임박한 제주도 임기제 공무원 공고를 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부리나케 작성하여 빠른 등기로 보냈다.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아서 마감일까지 도착이 안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사실 임기제 공무원이 뭔지도 몰랐다. 센터장을 뽑는다 하니 지원한 것이다. 내리지 않았던 눈이 폭설로 내린 2월 말에 급한 대로 한달살이 원룸을 구하고 내려왔다. 제주도 이사... 30여 년 만에 돌아왔다.
조례에 의해 설립된 센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직무수행계획서에 작성한 대로 나는 새로운 사업들을 펼쳤고, 다행히 성과들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가장 높은 등급의 근평을 받아서 다시 또 일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갑자기 퇴직이 가능한 일일까?
“팀장님, 우리 센터 때문에 국장님하고 도의원들하고 막 싸우고 있다던데요.”
“우리 센터 때문에?”
“전에 왜 센터를 외주줘야 한다고 김성희 의원인가 김성휘 의원인가가 계속 제기했다 했잖아요. 이번에도 또 그러고 있나 봐요.”
“내년 예산안 지난달에 이미 끝난 거 아니에요?”
“그러게요. 그 의원이 센터 건립 초기부터 계속 전문적인 집단에 줘야 한다고 해서 해마다 갈등이 있다 하네요.”
12월 초에 7급 주사님이 한 말이었다. 나는 센터장이었으나 5급 팀장이라 통상적으로 공무원들은 팀장이라 불렀고, 일반인들은 센터장이라 불렀다. 센터는 나만 임기제이고, 나머지 직원들은 모두 일반 공무원들이다. 즉, 나는 전문가로서 공무원에 뽑힌 것이다.
“국장님, 혹시 센터 없어져요?” 전자결재 올려도 되는 걸 나는 굳이 출력물 들고 바쁜 국장님을 뵈러 갔다.
“왜? 모팀장 쫓아낼까 봐?” 구리빛 피부, 매서운 눈매, 핵심을 찌르는 질문들... 내년 6월 정년퇴임이라 항간에는 곧 부시장으로 발령 날 거라는 소문이 있는 국장님을 뵈면 ‘관록’이란 게 저절로 느껴졌다.
“걱정하지 말고 지금처럼 센터나 잘 운영해. 거 옥상 방수는 어떻게 되었나?”
“옥상은 보수가 끝났는데 외벽이 문제예요. 계단 옆면이 부식되고 있는 것 같아요. 지난번 의회 갔을 때 그렇게 설명을 해도 예산 반영이 안 되었네요.”
“허, 참! 추경 올렸나?”
“네!” 국장님께서 방수 문제를 기억하고 계실 줄은 몰랐다.
얼마 뒤 다른 부서 과장님으로부터 타시도 센터 사례 및 직영과 위탁 운영의 장단점을 비교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나는 직영의 장점이 잘 드러나도록 일목요연하게 가독성 높은 자료를 만들어 제출했다. 며칠 뒤 또 다른 부서에서 같은 자료 제출 요청 공문이 왔다.
“국장님, 그 의원님 좀 만나게 해주세요. 그분이 생각하는 전문성이 뭔지 알고 싶어요. 전국 센터 다 참여한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건 우리 센터 하나예요. 그 집단 직원들이나 공무원들이나 하는 일은 같아요. 업무 효율성을 따지자면 우리 센터가 훨씬 좋지요.”
“허허, 우리 모팀장 열받았나 보네. 누가 그걸 모르나! 지사님도 위탁할 생각 없으시니 걱정 안 해도 된다니까.”
‘보라색 글씨가 남아 있든 사라지든 나는 내가 할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설령 24일에 퇴직 통보를 받는다 해도 말이다. 이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내년 계획안도 모두 끝났고, 남은 일은 미진한 정산을 처리하는 것뿐이었다. 담당 직원이 미루고 미루다 처리하느라 용역 건 정산 처리가 지연되고 있었다. 도청 회의가 끝나고 센터로 돌아오는 길에 지난번 위탁 운영 문서를 요청했던 과장님을 만났다.
“국장님 대단하시던데요. 센터는 별일 없어 보입니다.” 센터에 도착하자마자 핸드폰 캘린더를 봤다. 보라색 글씨는 사라졌다. 오늘은 12월 20일이다. 크리스마스가 기쁘게 다가올 것 같다. 그렇다면 내년 2월 재취업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