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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소설] 6. 1월 31일 어머니 장례식(3)

by 아드리아나

1월 16일에 오빠한테서 연락이 왔다. 어머니 폐렴증세로 CT촬영하다가 심장동맥에 석회화가 의심되어 심장초음파 등 여러 가지 검사를 진행했다고 했다. 검사결과 심장동맥에 석회화가 심하고 통로가 좁아진 부분이 있어 22일에 입원하여 심장동맥 조영술 하면서 스텐트를 삽입한다고 했다.


“몸이 저리 약한 상태인데 괜찮을까?”

“의사가 환자 상태를 고려해서 하라 한 거지.”

“내가 올라갈까?”

“일은 어떡하고? 뭔 일 있으면 연락할게.” 의사선생님이 해야 한다고 했으면 해야 ‘장례식’이 사라지겠지?


22일 오후 시술결과 막힌 부분은 없는데 폐렴으로 인한 염증수치가 높아 당분간 입원치료 하기로 했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저녁에 여러 약을 투여해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중환자실에 있으며 면회불가라는 연락이 왔다.


23일 순환기내과 의사 면담 요청이 있었고, 중풍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설날 오전 어머니가 위독하니 빨리 중환자실로 오라는 연락이 왔다.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비행기 표를 끊어야 하는데 손이 벌벌 떨려 어찌할 바를 몰라 전남편한테 전화했다.


내가 서울로 올라가기도 전에 어머니는 자식들을 아무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셨다. 다섯 명의 자식 중 둘은 먼저 떠났고, 남아 있는 세 명의 자식도 떠나는 날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것이다.


오빠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설날 오전 11시쯤 병원에서 위독하다는 연락이 오자마자 달려갔는데 그때 이미 어머니는 돌아가신 후였다는 것이다. 간호사가 어머니를 봤을 때 이미 돌아가신 후였는데 위독하다고 전화했던 것이고 의사는 사망 시간을 12시 20분으로 기록했다고 했다.


“이거 의료사고 아닌가요?” 가까운 조문객들은 ‘의료사고’에 대해서 수군덕거렸으나 오빠들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설날... 남은 형제라도 잘 모여서 자신을 기억해 주길 바랐던 것일까? 그렇다면 왜 아무도 보지 않고 떠났을까? 누구도 그 깊이에 대해서는 알 수 없을 테지만 어머니는 떠날 때까지도 외로웠을 것이고, 살아왔던 수많은 세월의 외로움을 모두 가지고 갔을 것만 같아 가슴이 미어졌다.


상엿소리 한 가락 없는 조용한 장례식이후 몇 날 며칠 미어져 내려 쌓여있었던 시커먼 응어리들이 불구덩이에 녹았는지 뜨거운 눈물로 콸콸 쏟아져 나왔다.


결국 봄을 보지도 못했고 제주도에 오지도 못했다. 빈소 복도까지 빼곡하게 늘어서있던 국화꽃 화환들이 어머니의 꽃길이었을까? 그게 마음에 들었을까? 그래서 어머니는 평안에 이르렀을까?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보라색 글씨가 지난번처럼 사라지길 마냥 바라기만 했다.


내가 무얼 할 수 있었을까? 그 사실을 오빠들한테 알렸다면 상황이 바뀌었을까? 상황을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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