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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소설] 8. 3월 16일 일요일 결혼식(1)

by 아드리아나

8. 3월 16일 일요일 결혼식


몸에 하나둘씩 생겨나는 검버섯처럼 보라색 글씨! 신경 쓰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은근히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다. 뜬금없이 3월에 결혼식이 있다 하니 온갖 사람들을 머릿속에 불러 모았다. 1순위 전남편. 전남편은 아주 가끔 만나 밥을 같이 먹었다. 어머니 장례식에 같이 갔더니 오빠들이 물었다. 우리는 어떻게 된 것이냐고. 장례식에 갔다 해도 우린 달라진 게 없다.


2순위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 혹시 설대 경영? 그는 공식적으로 관계 정리를 선언한 작년 8월 이후 아직까지 연락이 없다. 과거 인물들과 다시 엮이고 싶지는 않은데 현재 추정 인물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과거가 따라왔다.


설대 경영은 내가 연구소 감사로 있을 때 알게 된 사람이었다. 감사라기보다 사실 연구 총괄을 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제주도 내려오기 전 1년 좀 넘게 관여했고 8억짜리 정부과제 제안서 작성하면서 자잘한 도움을 받았다. 연구소 대표님이 서울대 출신이라 주로 서울대 출신의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었다.


그는 한때 기업평가에서 레전드로 불릴 만큼 자기 분야에서는 탁월한 실력의 소유자였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그를 알게 되었던 그 시기에 그는 자기 사업이 망해서 지인들과 사업을 도모하기 위해 매일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던 때였다.


내가 제안서 발표하러 갈 때 그도 같이 가겠다고 했다. 시큰둥한 나의 반응에 다소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그 이후 그는 매우 조심스럽게 내게 다가왔고 그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 웃겨서 종종 만나게 되었다. 언젠가 그가 나에게 마치 연인처럼 대하려 하자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유부남이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그가 공감 능력이 부족해 보여 이성으로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같은 집에 살지만 실질적으로는 별거 중인 상태라고 나에게 말했다. 조만간 이혼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뜻을 내비쳤으나 나는 그에게 좀처럼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아마도 늘 1등만 하고 부족하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던 사람이라 내가 ‘당신은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라는 말을 했을 때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틀린 것은 아니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는 능력은 부족해 보였다.


그렇다고 내가 완벽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단지 그러한 이유로 그에게 마음이 가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지적질을 했다고 생각한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그 공감을 해보려고 부단히 애썼다.


“왜 그렇게 노력해?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지는 않아.”

“그냥 내가 좋아서!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야.”

“혹시 거절당한 거... 쟁취하고 싶은 거 아니야? 남자들은 그런 거 있다던데!”

“하늘에 맹세코 그런 거 아니야. 난 모박이 진짜로 좋아.”

“무슨 감정이 그리 쉽게 빨리 생겨날 수 있어?”

“그건 나도 모르지. 그냥 그렇게 된 거니까!”

“어쨌든 난 다른 생각은 없어. 대신 나를 사업파트너로 생각해 주면 좋겠어.”


서울에 있을 때 사람들은 종종 나를 ‘모박’이라 불렀다. 난 기업평가, 현금흐름표 작성, 사업계획서 작성 등 그를 통해 내가 몰랐던 부분들을 배웠다. 그는 생각보다 프레젠테이션 작성 능력이 뛰어났다. 나는 어떤 사업이든 사업이라는 걸 해보고 싶었고 어떻게 시작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사업이 성사되길 기다리는 일은 언제부턴가 희망 고문이 되고 있었다. 두바이에서 엄청난 자금이 온다고 하더니 코로나 팬데믹으로 무산되었고, 내가 처음으로 공들여 작성한 쓰레기 매립지 수소발전 계획은 총선과 맞물려 정치권 이슈로 무산되었다. 내가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온갖 사업들이 계획되었다가 물거품처럼 사라지길 반복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고 있을까? 곧 사업이 시작될 것처럼 부푼 희망을 안고 온갖 서류 만들며 열심히 뛰어들었다가 일순간에 파쇄기에 들어가거나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길 반복하는 거... 마치 파도가 크게 일었다가 어느 순간 모래나 바위틈으로 사그라드는 것처럼 말이다.


어쨌거나 그 시간을 통해서 여러 가지를 배웠으니 우물 안에서 한 발짝 우물 밖으로 나가게 된 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사업을 도모하는지 약간은 알 수 있었다. 나는 나만의 사업을 해보고 싶었다. 물론 아이디어도 있다. 언젠가 작게 시작하겠지만 나중에는 커질 것이라는 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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