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캘린더

[연재 소설] 11. 6월 16일 이혼

by 아드리아나

11. 6월 16일 이혼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6월 캘린더에 ‘이혼’은 사라져야 할 거라 생각했다. 지난 3월 조카 결혼식 이후로 간간이 캘린더를 봤지만 6월 이혼은 그대로 있었다. 이번에는 나도 궁금했다. 이 이혼이 무엇을 말하는지. 분명 나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캘린더에 기록되어 있을 테니... 벌써 추억이 되어버린 5월 여행 이후로 16일이 궁금해서 언제 소식을 알 수 있을까 내심 기다리고 있었다.


전혀 감이 잡히지 않고 있었던 6월 첫 주 금요일... 현충일 저녁에 설대 경영한테서 장문의 문자가 왔다.


잘 지내? 보고 싶다! 오래전 내가 쓴 서약서를 우연히 발견했어. 내가 써놓고 지키지 못한 게 많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 저 바닷물이 다 마를 때까지 ‘모지은’만을 사랑한다고 했는데 못해준 게 너무 많았다. 정작 혼자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는지 헤아리지 못했어. 정말 미안해! 우리,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잊고 지낸 지 꽤 오래되었다. 아무런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가물가물해진 저 ‘서약서’는 내가 아니라 그가 스스로 작성한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유부남을 만나겠나! 난 유부남을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니 그가 A4 한 장 가득 작성한 서약서를 파일로 보내온 적이 있다.


그 서약서에는 ‘살아있는 동안 모지은만 사랑한다, 경제적인 부분이 해결되면 이혼한다, 술은 1주일에 한번 마신다, 담배는 피우지 않는다.’ 등 일종의 각서처럼 작성된 내용에 그의 서명이 들어있었다.


그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가 ‘이혼’하는 것이 혹여 나 때문이라면 그건 안된다고 했었다.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정확하게! 그리고 그와 결혼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정확하게! 말했었다.


그렇다면 혹시 ‘이혼’이란 게 설대 경영의 이혼을 말한 것일까? 캘린더에 기록될 만큼 나한테 그의 이혼이 중요한 일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문자에 답을 해야 하는지 모른 척 해야 하는지 고민하다 답을 보냈다. ‘아니!’


난 대체로 누가 이성적으로 접근해 오면 그의 감정이 아니라 ‘나의 감정이 우선이다. 이기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사실이다’라고 늘 말하는 편이다. 이성을 만나는 것은 사랑받는 느낌이 좋아서 만나는 것이었고, 내가 사랑해서 만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혼이라는 것도 내가 사랑받고 보호받고 있는 느낌이 좋아서 했다. 전남편은 자기의 여자한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 그게 좋았다. 물론 그 사람을 좋아했다. 사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니!’를 보낸 이후 다시 문자는 오지 않았다.


“모박, 잘 지내냐?”

“어, 오랜만이네! 잘 지내?”

“민철선배 어제 이혼했다 하는데 알고 있어?”

“아, 그래? 몰랐어. 그랬구나!”

“너, 선배랑 연락안하냐? 깨졌어?”

“깨지긴 사귄 적도 없는데! 그런 사이 아니었어.”

“선배는 너 사랑한다고 하던데... 암튼 선배 그동안 엄청 힘들어했으니까 연락 한 번 해봐.”


코넬대 출신 쭌의 전화가 온 것은 17일이었다. 형준을 우리는 쭌이라 불렀다. 쭌은 나와 동갑이라 그야말로 친구였고, 설대 경영은 나보다 두 살 더 많았으나 내가 이성이 아니라 그냥 친구하자 하며 말을 높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결국 16일 이혼은 설대 경영의 이혼이었다. 그게 왜 내 캘린더에 기록되어 있을까? 그가 이혼했다 해도 난 그와 다시 만날 생각이 없다. 연락은 하지 않았다.


내 이혼의 경우, 나 혼자 잘살아보겠다 해서 이혼한 것은 아니었다. 같이 살아갈 삶의 미래를 공유할 수 없어서 이혼한 것이다. 어느 낯선 척박한 산골짜기에 산다 해도 어떻게 살아갈 지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할 수 있다면 나는 그 마지막 ‘이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혹시 진정 사랑했다면 이혼하지 않았을까? 혼자가 된 나는 외로움이 컸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 외로움이란 건 공갈빵처럼 마음 한구석에 크게 자리 잡지만 그 속이 비어있어서 늘 허기진 상태를 만드는 것 같다. 그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이것저것 가끔은 일탈마저도 허용하면서 뭔가를 쑤셔 넣기는 하나 늘 충족되지 못하고 번잡하기만 하다. 결국 외로움을 상쇄시킬 수 있는 것은 사랑이거나 행복뿐이다.


내 남은 삶에 내가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이 있을까? 만일 다른 누군가와 삶을 공유한다면 이제는 이혼은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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