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캘린더

[연재 소설] 13. 8월 15일 나를 다시 찾은 날

by 아드리아나

13. 8월 15일 나를 다시 찾은 날


다시 여름이 한참이다. 말복도 지났다. 작년에 호된 무더위를 경험해서인지 올해는 작년보다 견딜만하다. 그러고 보니 매미를 본 지 꽤 오래되었다. 그 많던 매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나는 지난 1년을 되돌아봤다. 캘린더 보라색 글씨가 남아있는 것도 있고 사라진 것도 있고 바뀐 것도 있다. 인도 할머니가 생각났다. 그녀는 무엇 때문에 내게 이런 선물을 준 것이었을까? 단지 버스 정류장까지 모셔다 드려서? 그 정도는 누구나 하는 일이다. 큰 선행도 아니고 그야말로 인지상정 아닌가?


어쨌든 나는 1년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래서 뭐가 달라졌을까? 내가 생각했던 일들에서 한 발짝 나아갔을까? 아님 여전히 그대로인가? 아직도 살아내느라... 먹고살기에 급급한가? 적어도 퇴보하지는 않은 것 같고... 보라색 글씨 덕분에 1년 가까이 플러스로 만들어낸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플러스를 잘 모르겠다. 아프지 않은 거? 아니면 투자 실패하지 않은 거? 이것도 좋다. 중요한 거다.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니까! 그렇기는 해도 1년 동안 뭐가 변했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물론 무조건 변화가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여유를 좀 더 가지고 판단해 보자. 나는 어떤 의미로 8월에 나를 다시 찾았다고 했을까? 잃었던 게 있어야 다시 찾는 것인데 무엇을 잃었던 것일까?


진짜 그게 무엇인지 찾고 싶었다. 그걸 찾았으니 캘린더에 기록이 되었을 것이다.


모든 걸 철저하게 무시하고 나의 내면만 들여다보면 지금 현재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을까? 앞으로 3년, 5년, 10년, 20년을 인도 할머니가 또 내게 선물로 주신다면 잘 살 수 있을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고 대비하는 삶보다는 내가 그 어떤 좋은 일들을 만들어 가는 삶을 살고 싶다. 물론 그렇게 살지 않았던 것은 또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삶이 코앞에 닥친 일들을 처리하느라 허덕이며 살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나를 다시 찾는다는 것은 뭔가 삶의 방식 자체의 변화를 뜻하는 것은 아닐까? 자칫 이런 생각들이 너무 강해서 집착처럼 변하면 안되겠지만 어쨌든 원하는 큰 그림을 그려봐야 할 것 같다.


잠시 머물다 가는 바람도 하늘을 여행하는 구름도 가끔씩 폭주하기는 해도 집착하지는 않는다. 나도 ‘내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하는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 편하게 찾아봐야겠다.


‘나’라는 나무가 그럭저럭 나름 단단해진 것은 비바람도 이겨냈고 폭풍도 이겨냈으며 병해충도 이겨냈기 때문이다. 때때로 가지가 부러지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언젠가 고목이 될 것이고, 고목이 되어서도 아름다운 꽃을 만발하게 피울 것이다. 아름답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세월을 이겨내고 피우는 꽃은 모두 아름답다!


며칠 고민 끝에 나는 또 한 번 이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기로 맘먹었다. 직장생활 하면서 종잣돈을 마련하고 그 돈으로 내 사업을 시작하려 했으나 종잣돈이 언제 만들어질지 지금 상태로는 너무 멀게 느껴졌다. 현시점에서 가능한 방법을 찾아봐야 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내가 나를 다시 찾았다는 것은 내 삶을 내 방식대로 만들어 가는 것을 뜻하는 말이 맞는 것 같다. 12월 31일 내 인생의 마지막 직장을 끝내고 2026년 나의 일을 시작해야겠다.


올해 남은 약 4개월 차분히 준비해야지!


드디어 평안에 이르렀다. 살면서 수많은 우여곡절이 생기고 힘든 시절이 또 찾아올지 모르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그리 힘든 일도 그리 감당 못할 일도 아니었다. 그러니 설사 그러한 일들이 또 찾아온다 해도 무섭지 않다. 무엇보다 그런 일들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이제는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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