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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정 Nov 03. 2023

기미, 주근깨가 사랑스러워 보이는 나이

어린 시절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선생님이 내주신 과제를 먼저 했다. 아무리 친구들과 놀고 싶어도 항상 머릿속에는 ‘과제’가 1순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굳이 왜 그렇게까지 과제에 집착했는지 모르겠다.     


학교에 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오늘의 과제’를 점검하는 일이었다.

선생님의 기억력은 유달리 ‘과제’에서만큼은 빛을 발휘하셨기에

숙제를 하지 않고 학교에 가는 날이면 온종일 마음이 불안했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과제’가 1순위였다.     


그러다 보니 사회에 나와서도 ‘업무’가 내 인생의 1순위가 되어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을 한다.   

 

업무가 끝나지 않으면 ‘야근’까지 해가며 결국 그 일이 전부 끝나고 나서야 마음 편히 집에 돌아갈 수가 있었다. 절대 ‘일 중독’이 아니라고 했지만 어쩌면 그때의 나는 ‘일 중독’이었는지도 모른다.     


주말까지 반납하며 일을 하는 일상이 왠지 모르게 뿌듯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년을 ‘어설픈 직장생활’에 익숙해져 가던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에 ‘무기력’ 해지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번 아웃’이라고 했다.     


너무 열심히 살아서 생기는 병이 있다니,

처음에는 황당했다.     


한국에서 살면서 ‘게으름은 나태함’이라는 생각에 누구보다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열심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가 되어 나를 힘들게 했다.

‘번 아웃’에서 탈출하기 위해 나는 모든 것을 ‘멈추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잠시 멀어져 보기로 한 것이다.     

천천히 그렇게 나는 ‘업무’보다는 ‘나의 삶’으로 복귀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 취미생활이 뭐였는지조차 잃어버린 채 바쁘게 살아온 삶이 갑자기 멈추자 심한 ‘후유증’이 찾아왔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은 곧 나태한 사람이라는 근거 없는 정의를 내리기 시작했고, 마음은 생각과는 다르게 점점 시들어져 갔다.     


‘하고 싶은 대로 전부 다 하고 살 수 없다’라는 어른들의 말이 생각났다.

‘하기 싫은 일을 전부 하지 않고 살 수 없다’라는 어른들의 말이 또 생각났다. 

    

우리는 ‘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나의 내적 갈등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렇게 씁쓸한 고민을 안고 깊은 겨울이 찾아왔다.


‘내년이면 또 한 살을 더 먹는다’라는 생각이 들자 내 마음은 또다시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음은 바다와 닮아 한 번 일렁이기 시작하는 파도는 좀처럼 잠잠해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떠난 동유럽 여행에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물건을 살 때도 ‘빠르게’

계산도 ‘빠르게’

걸을 때도 ‘빠르게’

먹는 속도도 ‘빠르게’     

한국은 ‘빠른 것이 일상화된 문화’이다.     


그런 내가 동유럽에서 물건 하나를 살 때도 기다리고 기다리며 ‘느림의 미학’을 겪게 되자, 나의 빠름이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느림’으로 느리게 스며들어 갔다.      


손님이 많은 것도 아닌데 점원분들은 전혀 빠르게 움직일 마음이 없어 보였다. 내가 아무리 ‘빨리 계산을 해주세요’라고 말해도 ‘웃으면서, 기다리세요’라고 했다. 발걸음도 행동도 모든 것이 우리나라보다 한 템포씩 느렸다.     


처음에는 답답했고 답답했다.     

고구마를 100개 정도 삶아 먹어 본 사람이 느끼는 ‘답답한 숨 막힘’은

나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보름 정도 지나가자 나는 천천히 알게 되었다.

그들의 삶 속에는 ‘행복’이 함께하고 있었다.     


많은 양의 업무보다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업무와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 두는 여유로부터 시작되는 행복이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누군가와 경쟁하며 살아가는 치열한 전쟁과 같은 일상이 아닌     

좋은 대학은 아니어도

좋은 직장은 아니어도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평화가 살아 숨 쉬는 일상이었다.   

  

책 한 권을 들고 해변에 앉아

바다가 들려주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휴식을 취하는 그들의 모습에는 하나같이 ‘미소’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찌는 듯한 태양 아래에서

양산도, 선크림도 바르지 않고 온몸으로 태양을 맞이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라면 기미와 주근깨가 걱정되어 한낮에는 양산이나 선크림은 필수로 바르고 다닌다. 거기에 자칫 얼굴에 검버섯이라도 생기면 당장 병원에 가서 제거 시술을 받는다. ‘기미와 주근깨, 검버섯이 있는 얼굴은 예쁘지 않다’라는 인식이 자꾸만 ‘자연스러움’보다 ‘인위적인 아름다움’으로 닿는다.     


큰 키와 갈색의 눈동자 그리고 노란색인 듯싶은 빨간색의 머릿결 뽀얀 얼굴에는 기미와 주근깨가 가득하지만 그들에게서는 우리에게 없는 ‘여유와 미소, 행복’이 있었다. 아무리 얼굴이 예뻐도 항상 찡그리고 투덜대고 다니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미운 얼굴이 되어버린다.     


보통의 얼굴이지만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어디서든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은 빛이 난다.     


1년이면 수 천만 원 넘게 피부와 성형에 돈을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돈을 들이면 그만큼 아름다워지는 것은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을 하는 자신만의 충분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외모에서 느낄 수 없는 내면의 아름다움은 아닐까?         

 

아름다운 장미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어 버린다.

그러나, 아름다운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여물어 간다.


기미와 주근깨조차 아름다워 보이는 나이가 있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온종일 투덜대는 얼굴에서는 ‘행복’을 찾아볼 수 없다.     

하기 싫은 일을 하더라도 온종일 미소를 머금은 얼굴에서는 ‘행복’이 살아 숨 쉬고 있다.     

한낮의 태양 아래에서 기미와 주근깨조차 사랑하는 그들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에는 쉼과 행복이 있었다.          

나는 이제 예전처럼 바쁘게 살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조금은 더 여유로워지기 위해 노력한다.     


물질적으로 가진 것이 많지는 않더라도

마음만은 행복으로 넘쳐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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