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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씨앗 하나가 저무는 오후를 건너올 때

by 이안정

학교 화단에 코스모스 씨앗을 뿌리던 날, 나는 안온한 기대를 묻어두었다.
바람이 부드럽게 스쳐가고, 햇빛이 잔잔하게 내려앉던 그 순간, 씨앗들이 흙 속에서 작은 손을 뻗으며 일어설 것만 같았다.


‘한 달이면 충분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들처럼 금세 자라고, 금세 꽃피고, 금세 세상을 환하게 채울 거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록 화단은 조용했다.

힘껏 피어날 것만 같던 자리는 여전히 빈 화면 같았고, 기대가 오래 머물수록 마음 한편은 슬며시 기울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성급했나?’
‘씨앗이 죽은 건 아닐까?’
나는 화단 앞에 서서, 막연한 기다림이 얼마나 사람을 작아지게 하는지 새삼 배웠다.


그러다 어느 날, 아무 기대 없이 지나가던 순간—
눈 끝에 아주 작은 분홍빛이 걸렸다.
화단 구석, 잡초 사이에서, 딱 한 송이.
누군가 일부러 숨겨놓은 듯 조심스레 피어난 코스모스 한 송이가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자리에서 자기 때를 견디며 온 힘으로 올라온 꽃이었다.

그 한 송이를 보는 순간, 나는 마음이 이상하게 아릿해졌다.
많은 꽃이 아니라 한 송이였기 때문이다.
화려하게 만개한 풍경이 아니라, 겨우 한 송이어서 더 소중했다.
마치 누군가 조용히 말하는 것 같았다.


“기다린다고 다 제때 오지는 않아. 그렇지만 오지 않는 것도 아니야.”


그날 이후로 나는 화단 앞을 지나갈 때마다 잠시 멈춰 섰다.
그 한 송이가 꽃꽂이를 한 듯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아직 오지 않은 것들에 대한 서운함 대신 ‘언젠가는’이라는 희망을 생각했다.
기대가 무너진 자리에서도, 삶은 결국 작은 방식으로 피어난다는 걸 그 코스모스가 알려주었다.


나는 씨앗을 묻었지만,

꽃을 피운 시간은 그 꽃의 것이었고,

나는 다만 그 시간을 조금 늦게 알아본 것뿐이다.


“꽃이 피는 건 기적이 아니라, 계속 자라는 용기인지도 모른다"

지나가는 바람 하나에도 삶은 조용히 나를 가르친다.

오늘도 조용히 배움 하나를 품고, 천천히 나의 속도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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