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특별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특별함이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산타할아버지가 다녀가신다.
그것도 밤에 몰래 미스터리하게.
유치원에 오시는 산타할아버지 말고 집에 다녀가시는 그 '진짜' 산타할아버지는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모두가 강력한 믿음의 마음으로 기다린다.
12월 한 달 동안
크리스마스의,
크리스마스에 의한,
크리스마스를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하며 시간을 보낸 우리 유치원에도 이번 주에 다녀가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공짜는 없다. 선물을 받으려면 나의 지난 1년을 돌아보는 고뇌의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평소에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내며 울지 않는 '착한 어린이'는 그냥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착한 어린이'가 아니었던 어린이들이다.
우리 반에는 유치원 전체 원생들이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착한 어린이'가 아닌 어린이들이 꽤나 여러 명 속해있는데 이들에겐 고난의 12월이었다.
선물 중에도 특히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을 받으려면 산타할아버지께 편지를 써야 한다.
Dear. Santa...로 시작하여
-I listend to my teachers.
-I wasn't picky with food.
-I shared my toys with my friends.
-I used beautiful voice to my friends.
등등
내가 한 해동안 잘한 일들을 적고,
당당히 나의 위시리스트를 적는다.
그리고 이 편지를 씩씩하게 읽는 영상편지를 산타할아버지께 전송하면 산타파티하는 날 마법처럼 내가 적었던 그 위시리스트의 선물을 가져다주신다.
6년 혹은 7년의 일생일대 최고 중요한 순간이므로 받고 싶은 선물이 있다면 이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
각 반에서 회개 혹은 참회가 이어졌다.
특히 우리 반.
반성과 후회. 걱정과 불안함. 부러움.
도통 떠오르지 않는 '잘한 일' 때문이었다.
거짓말로 쓸 수도 없다. 왜냐하면 산타할아버지는 이미 다 알고 계셔서 아무리 내가 거짓말로 편지를 쓴다 해도 선물을 가져다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이 가득가득 써 내려가는 동안 7살 남자친구들 E과 L는 연필을 굴리며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는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I washed nicely. 에서 멈춰버린 E의 편지.
구겨지는 편지지 만큼 심란해지는 L의 마음과 꼼지락 손가락
거짓말로라도 쓰면 될 것이라 믿었던 6세 반 남자아이들도 심각해졌다.
눈치 없이 장난을 치며 당치도 않는 '잘한 일'을 써오길래,
'편지 내용은 너희 마음대로 쓸 수 있지만, 모든 친구들이 다 선물을 받을 때, 너희는 거짓말을 해서 못 받는다고 해도 선생님은 도와줄 수가 없다. 그 선물은 선생님이 준비해 주는 게 아니고, 산타할아버지가 직접 들고 오시는 거라 그날 너희만 선물이 없다고 울어도 선생님은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라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얼굴로 심각하게 얘기했더니
재빨리 편지지를 아주 깔끔하게 싹 지우고 한숨을 내쉬며 연필을 굴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스스로 반성의 시간을 갖는 동안 나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속으로 산타할아버지께 감사했다. '매 달 다녀가시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는 그 친구들을 위해 우리 반 다른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잘한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마음 착한 친구들 덕분에 간신히 세 가지를 기억해 내어 편지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꼭 잘 지켜보자는 다짐과 내년에는 편지를 길게 써보자는 약속도 받아냈다.
선물을 못 받아 우는 친구 없이 모두가 행복한 산타 파티로 2024년도의 '산타라이팅'도 끝이 났다.
그리고 어린이들의 기다림은 다시 시작된다. 길거리의 크리스마스 장식이 사라지고 유치원의 트리를 정리하는 순간 한 달 동안 열심히 입력시킨 산타라이팅도 효력을 잃겠지만, 그럼에도 올해의 이 쓰디쓴 경험이 내년 중 단 몇 번의 순간에라도 기억나길 바란다.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