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에서 학살을 자행하던 이들은 과연 인간성이 절멸되어서 그런 일을 행하였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양심의 부름을 어떤 환상으로 은폐하여 자신을 정당화했기에 그런 일을 저질렀다. 지젝에 따르면, 그들은 “내가 사람들에게 한 짓은 얼마나 끔찍한가!”라고 말하는 대신, “이런 의무를 수행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가!”, “내 어깨에 지워진 과업은 얼마나 무거운가!”라고 자신을 정당화하였다. 그들은 어떤 환상, 즉 어떤 이념을 끌어들였는가? 자신의 고통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다. 이러한 동정과 연민은 그 자체로는 지극히 인간적이라고 볼 수 있고, 일상에서도 자주 행해지는 태도이다.
왜 인간은 양심의 부름에 직면하기를 두려워하는가? 그것은 양심의 부름이 보여주는 바가, 인간 자신 안에 있는 ‘괴물’, ‘더러운 말들’이기 때문이다. 이를 억누르고 환상에 자신을 투영하여 세상에 ‘빠져 있음’으로 살게 되면, 그 괴물은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게 되며, 다시 우리를 또 다른 고통으로 이끈다.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은폐하려고 하는 욕망은 무엇인가?’라고 끊임없이 묻는 것은 우리를 ‘알아차림’으로 이끌 수 있다. 욕망은 비일관적으로 운동하므로 ‘영속적으로, 또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정하기란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그 물음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알았다’라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무지한 순간일 수도 있다. 철학은 세속의 관점에서 바보의 학문일 수밖에 없다. 철학은 끊임없는 물음표이고, 절대적 정답을 제시하는 교설(敎說)은 구체적인 현실에서 모순을 마주한다.
‘생각을 깊게 하는 건 삶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적당히 현실에서 살면서 인생을 즐기면 안 되나?’라는 생각은 이러한 ‘질문-던지기’를 가로막는다. 그러나, 물음표의 강도(intensity)는 그것이 은폐되면 은폐될수록 강해진다. 은폐는 억압이고, 억압은 균열을 낳고, 균열은 폭발을 일으키며, 폭발은 해체이다. 우리 안의 괴물은 억압될수록 성장한다. 우리 안의 더러움은 억압될수록 성장한다. 강렬함은 그 자신을 반복함으로써 힘을 키워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소위 ‘성장’, ‘어른다움’이라고 할 만한 모습이 형성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해체의 강렬함 또한 함께 성장시킬 뿐이다. ‘어른다움’은 해체를 감당하지 못한다.
위의 질문에 대해서 논해보겠다. ‘생각을 깊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심연을 들여다보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심연을 들여다보기’는 과연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가? 자기기만을 가지고 살아감에 있어 한치의 찜찜함도 없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이 찜찜함을 고통스러워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 찜찜함의 정체가 무엇인가에 대해 마음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또, ‘적당히 현실에서 삶’은 무엇인가? ‘적당히’라는 말이 가진 애매함은 그 속의 의도를 은폐한다. ‘적당함’은 자신의 기준에 ‘적당함’일 것이기에, 어떤 가치를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인생을 즐김’은 무엇인가? 해당 문장에는 ‘인생을 즐겨라!’라는 기만적인 당위-환상이 내포되어 있다. 꼭 인생을 즐겨야 하는가? 우리는 진정으로 인생을 즐길 수 있는가? 우리의 ‘즐거움’ 속에 은폐된 욕망은 무엇인가? 고통을 감내할지라도 빛을 좇아 헤매면 안 되는가?
일상성 속에 ‘상식’의 이름으로 통용되는 많은 표어는 위와 같은 애매함을 내포하고 있다. 그때 그러한 표어들은 어떤 의도를 은폐한 채 드러나며, 물음표를 낳는다. ‘저런 생각은 미친 거야! 저런 생각은 더러워! 저런 생각은 나빠! 나는 안 그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돼!…’라는 생각을 따르며 일상을 살아가는 건 편리하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미친 것’은 무엇일까? ‘저런 생각은’ 과연 미친 걸까?, ‘더러움’은 무엇일까? ‘저런 생각’은 과연 더러울까? ‘나쁨’은 무엇일까?, ‘저런 생각’은 과연 나쁠까?, 과연 나는 안 그럴까?, ‘상식’이란 무엇일까?, ‘말이 안 됨’은 무엇일까? 과연 ‘상식’은 ‘말이 안 됨’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의 물음표에 정확히 ‘스스로’ 답을 할 수 있는가? ‘이런 생각이 성가시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모습’을 명철히 마주할 때, 삶의 부조리를 견딜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