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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아 Jun 26. 2024

다정하고싶은 간호

<다정하고싶은 간호>


아이가 한 번씩 아프고 나면 나는 엄마로서 또 한 계단을 올라간 듯한 기분이 든다. 아이를 키우며 매 순간 어려움투성이긴 했지만, 아이가 아플 때는 특히나 그 정도가 심해지는 것 같다. 아이의 쿨럭이는 기침 소리 한번에도 가슴이 얼마나 아플까 내 마음이 철렁하고, 코가 막혀 쌕쌕거리는 숨소리에는 얼마나 답답할까 내가 안절부절못하고, 열이 나서 축 처진 모습에는 아닌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코에 손을 대서 숨결을 확인하기도 한다. 할 수만 있다면 대신 아파주고 싶은 마음은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갖는 마음일테다.  

얼마 전, 이렇게 불안한 마음과 긴장된 시간 속에서 엄마로서 여전히 부족한 나를 마주할 수밖에 없는 밤들이 이어졌다. 며칠간 계속되는 고열로 아이는 새벽마다 힘들어했고, 나는 아이의 상태를 밤새도록 체크하며 열을 내리려 애를 쓰며 몸도 마음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열이 너무 높아 혹시나 아이가 잘못될까 나 스스로도 굉장히 불안하면서도, 힘들어하는 아이에게는 괜찮다고 힘내자고 다독이던 시간들. 아이의 고통을 잠시라도 내 것으로 가져와 아이를 쉬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만 들던 고통의 밤들이었다.

아이가 아플 때 나는 죄인 같은 마음이 든다. 아이가 아픈 건 하나의 성장 과정이라는 것쯤은 너무나 당연하게 이해하고 있지만, 막상 그 상황이 되면 모든것이 나의 책임이라 느끼며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 이번 병치레를 하면서도 내가 그동안 아이의 영양을 잘 챙기고 있었는지, 피곤한 아이에게 충분한 쉼을 제공한 건지, 온습도는 어땠는지 등등 하나하나 체크하며 나의 잘못을 찾아내려 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며칠간 잠도 못 자고 아이를 케어하고 있는데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 아닌가, 왜 시간을 돌려가면서까지 나의 잘못을 찾으려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나 스스로가 굉장히 안쓰럽게 느껴졌다.


한 사람에 성장 과정에 있어 너무나 당연하듯이, 나의 유년 시절에도 열과 싸우며 밤을 지샜던 날들이 있다. 어릴 적 기억의 나의 엄마는 강하면서도 어딘가 좀 차가운 사람이었다. 내가 아파서 잠 못 들던 밤에도 지금의 나처럼 불안해하는 기색이나 미숙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아픈 나를 책망하는 듯한 말을 했었다. 아픈 건 내가 잘 먹지 않았기 때문이고, 추운데 나가서 놀았기 때문이며, 일찍 자라는 말에도 늦게 잤기 때문이라는 엄마의 차가웠던 말들이 나의 어린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그때 엄마의 말들은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나를 간호 하느라 피곤하고 힘들어서 본심과는 다르게 좀 모진 말들을 쏟아냈던 것일까? 진실이 무엇이든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적어도 나는 아이가 아플 때마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반면교사로 삼는다. 아이가 아프고 힘들어서 짜증 내도 나는 다 받아주리, 나의 가장 다정한 모습으로 아이를 간호하리 다짐한다. 바이러스와 싸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 텐데 지친 엄마의 표정, 눈빛, 말투로 상처받는 건 아이로서 감당하기 힘든 일이니 절대로 그러지 말자고 매번 마음에 새긴다.


유난히도 작고 마른 아이를 품에 안고 있으니 6살이라는 나이에도 너무나 작고 여린 존재로 느껴져 가슴이 애리던 새벽. 내 품에 안겨 기침을 하는 아이의 몸의 형태, 움직임 그리고 고통이 내 몸에 그대로 전해져 어쩔 줄 몰라 괴로운 마음이었다. 널 지켜줘야 하는 엄마이지만, 대신 아파 주고 싶지만, 아이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마음에 나와 아이가 너무 먼 거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고열로 축 처진 아이를 보고 울기도 하고, 기침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안절부절못하는 미숙하고 어리숙한 엄마이지만 적어도 아이를 며칠간 밤새워 간호하는 동안 예민해져서 신경질을 내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하진 않았다. 아이가 아픈 것은 나의 탓도 아이의 탓도 아니다. 그러니 나는 힘들어하는 아이를 잘 보살펴 주고, 같이 밤을 보내며 괜찮다고 토닥여 주며, 다정한 태도로 간호해 주면 그걸로 되는 거다. 적어도 나의 엄마를 떠올릴 때 결여되어 있는 따뜻함과 다정함의 기억이 아이가 회상하는 나의 모습에는 남아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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