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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찬제티 Feb 04. 2024

태도가 주는 품격

# 새로 이사한 아파트의 경비아저씨 

이사를 하는 토요일 아침.

이사차가 도착할 즈음 준비를 위해 아파트 입구의 경비실을 찾았다. 경비아저씨가 계시지 않아 아파트 주변을 둘러보던 중 재활용품 수집장에 계시는 아저씨를 발견했다.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인사를 드린 후 오늘 이사 오게 되는 704호이며 이사차와 사다리차가 들어올 수 있게 입주민들의 협조요청을 드렸다. 아저씨는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한 번 보셨다. 서서히 하던 일을 멈추고 정중한 태도와 위엄 있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 안 그래도 출근해서 어제 근무자로부터 메모를 전달받았습니다. 먼저 안타까운 말씀드립니다." 

경비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고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혹시 너무 늦게 이야기를 드려 협조를 할 수 없다는 건가?' 놀란 마음을 뒤로하고 대화를 이어갔다.

 " 네에 어제 근무자 아저씨게 말씀 드렸더니 오늘 오전에 이사차가 도착할 즈음 다시 한번 오늘 근무자 아저씨께 말씀드리라고 하셔서요."

"예, 그래서 지금부터 입주민들에게 협조를 구할 것입니다. 주말이다 보니 협조가 바로 될지는 모르겠으나 지금부터 협조를 구하고 이사차가 들어올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인사가 늦었지만 이사 오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늦게 말씀드려 다시 한번 죄송해요."

죄송하다는 말을 하며 돌아서는데 평소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어떤 일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 직업에 대한 태도가 그 일에 대한 편견을 없애주기도 한다는 사실과 마주했다. 만약 다른 경비아저씨라면 늦게 이야기해서 안 된다며 적어도 하루 전날에는 이야기를 했어야 한다고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경비아저씨의 말씀을 듣고 나의 조급한 마음 때문에 많이 놀라기도 하고 걱정이 되었지만, 마음이 진정되자 예상하지 못했던 대화의 흐름으로 의외의 상황을 맞이한 느낌이었다. 경비아저씨의 입주민을 대하는 태도와 일처리를 보며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만의 이사였고, 나의 예약 실수로 짐을 보관했다 다시 이사를 하느라 2배의 이사비용을 감당하며 얻은 경험의 대가가 혹독했지만 경비아저씨의 품격 덕분에 심란한 마음이 매우 가벼워졌다. 어제 근무하는 경비아저씨는 친절하게 나의 요구사항을 완벽하게 들어줄 것처럼 나로하여 기대하게 만들었다면 이사 오는 아침 경비아저씨는 태도에서 어제 경비아저씨와 다른 품격과 인격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사 오는 7층에 올라가서 1층 주차장을 내려다보니 몇몇 분의 입주민들이 차량을 이동주차 하고 있었다.   

사다리차를 타고 올라온 짐들은 빠르게 전에 살던 장소의 위치로 옮겨졌다. 욕실까지 공사 중이라 욕실짐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하나 상자에 담긴 채 꺼내 놓으며  

"이건 욕실 짐이니까 욕실 공사하고 사모님이 넣으시면 돼요. 상자에 담겨있으니까 그대로 저희가 내려만 놓고 갈게요." 

당연하다는 듯 짐을 내려놓고 마지막으로 못 박을 곳이 어디냐며 시계 위치만 정해서 드릴로 못을 박고 시계를 걸어두고 쫓기듯 이삿짐을 부려놓고 이사업체는 빠져나갔다. 몇 시간 전 경비아저씨의 품격과 태도에 매우 감동한 나의 마음을 이사업체 직원들은 매우 끔찍하게 밟아주고 있었다. 




내손으로 짐정리를 해야 하는 일이 남아있었다. 먹는 일이 가장 우선이기에 먼저 싱크대정리를 위해 서랍을 열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짐을 아무렇게나 해놓고 갈 거라면 네 명의 인원은 왜 필요했던 거였지?라는 의문이 생기고 2배의 이사비용에 대한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어쩌겠나 주말 동안 완벽하게 정리를 마무리해야 했다. 주말이 지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푸념을 하며 지나간 상황을 원망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짐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때가 되었다. 짐정리를 하며 또다시 생기는 쓰레기를 배출하기 위해 재활용품 수집장을 찾았다. 경비아저씨는 여전히 수집장에 모이는 여러 재활용품들을 정리하고 계셨다. 나는 자연스럽게 아침에 있었던 일을 뒤로하고 질문을 했다. 

"여기 아파트의 재활용 배출일은 언제예요?"

"예에, 차량이 직접 수거해 가는 요일은 수요일이고요. 보시는 것처럼 여기는 매일 배출이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따로 요일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 입주민들은 편리하죠. 타 아파트에 비하면요."

"그런데 조금 전 이사차가 돌아가며 704호의 전 입주세대가 버리고 간 거라고 빨래건조대를 내려놓고 갔는데요. 문제는 재질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만약 재활용품 제외품목이라 하면 폐기물처리를 위해 따라 비용을 감당하고 처리해야 하거든요."

"그건 제가 처리를 하도록 할게요. 경비아저씨께 불편함을 드려 죄송해요. 환경을 위해서라도 다른 건 몰라도 정확한 분리배출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맞습니다.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고 하셨지요? 그래서 제가 이사업체 사람들한테 말을 했는데 던지듯 버리고 가면서 어차피 버리는 물건들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는데, 사람마다 이해도는 모두 다르니까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에효, 정말 죄송합니다. 이래저래 이사하면서 불편한 일들이 만들어져 죄송해요. 만약 수요일에 수거차량이 배출 안 되는 품목이라고 하면 저에게 꼭 이야기해 주세요. 그리고 애써 주셔서 감사드려요."




이삿짐을 정리하느라 지치고 힘든 마음이었지만 여러 상황을 접하며 새로운 보금자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월요일 아침이었다. 운동을 가기 위해 1층을 나서며 이사오던 날 경비아저씨가 계시길래 인사를 드렸더니 나를 뒤따라 나오시며

"직장에 다니시는 것 같은데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드릴게요."

"말씀만도 너무 감사해요. 다른 업무도 많으실 텐데요."

한걸음 옮기려다 생각해 보니 전등이 생각났다. 

"혹시 기전실에서 세대 전등교체도 해주시나요?"

"저는 전기 쪽은 무뇌 안이라 어렵지만 제가 아는 기사가 있으니 물어보고 도움을 드릴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네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애쓰세요."

"행운이 가득한 하루 되시고 안녕히 다녀오세요."

하시며 경비초소로 들어가셨다.




그날 저녁 퇴근을 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낯선 휴대폰 번호였지만 반드시 받아야 하는 전화일 것 같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경비실입니다. 제가 아는 기사에게 이야기를 해보니 세대 내 전기공사는 입주민이 하게 되어있다고 이야기를 하네요. 도움을 주지 못해 매우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네에 아닙니다. 도움을 주시려는 아저씨 마음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제가 업체에 전화해서 해결해 볼게요."

"도움을 드리고자 이야기를 드렸는데 상당히 죄송한 마음입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이미 충분하게 마음으로 보여 주셨어요. 고맙습니다."

통화를 종료하는데 마음이 참 따뜻했다. 경비아저씨의 남다른 배려가 느껴졌다. 




태도는 일반적으로 말과 행동으로 타인을 통해 느껴지게 된다. 말은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언어표현이라면 행동은 태도의 무게를 나타낸다. 품격이 느껴지는 태도는 자신만의 인품일 것이다. 어떤 상황에 놓여 우연히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경비아저씨의 태도가 주는 품격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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