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번째 이야기 네덜란드 잔세스칸스 그리고 고흐
다음 날 새벽, 6시 K의 집을 나섰다. 기분도 발걸음도 매우 경쾌했다. 겨울이었지만 춥지 않았고 바람이 상쾌했다. 예정되었던 시간보다 약 20분 정도 늦게 네덜란드행 플릭스버스가 도착했다. 우리 자리는 2층 맨 앞자리였다. 2층 버스의 맨 앞자리는 시야가 트여 독일에서 네덜란드로 이어지는 내내 경비행기를 타는 느낌이었다. 180도 이상의 파노라마 영상을 시청하는 것처럼 시야가 트여 가는 길 내내 눈이 매우 호사를 누렸다. 네덜란드 일일 여행의 시작은 매우 좋았다.
4시간 30분을 달려 버스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Sloterdijk역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며 저녁에도 이곳에서 출발하냐고 물으니 기차역 반대편을 가르쳐준다. 장소를 확인한 후 역사 안에 화장실에 들렀다. 유럽여행에서 가장 불편한 점은 화장실 사용에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역의 화장실은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고 상주하는 직원이 있어 나름 안심하며 사용할 수 있었다.
기차를 타고 40분 정도를 달려 Zaanse Schans역에 도착했다. 네덜란드는 독일보다는 춥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역에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노란 수선화가 피어있었다. 한국이라면 3월 말이나 4월 초에 꽃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유럽의 거리는 어디를 두고 카메라를 눌러도 작품이 되었다. 언니와 나는 중년 특유의 감탄을 연발하며 편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Zaanse Schans에 도착했다. 호수 옆으로 길게 뻗은 유럽이야기 속 예쁜 건축물들, 색깔이 쨍한 풍차는 전통의상을 입고 치즈를 만들고 있는 그때 당시 사람들을 만날 것만 같았다. 가볍게 사진을 찍으면서 풍차마을을 한참 돌아보다 간단한 아침을 먹기로 했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음식인 와플을 먹기로 했다. 바로 앞에서 구워주니 따뜻하고 커피와 마시니 은은하게 느껴지는 시나몬 향이 매우 좋았다. 커피의 양이 좀 적어서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아침식사 대용으로 괜찮았다. 아침을 먹고 다시 치즈 박물관을 돌아보았다. 치즈를 만드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 가격이 쌀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오면서 기념품 가게에서 가족들에게 선물할 스트룹와플을 사니 작은 백팩이 꽤 무거워졌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코스트코에 같은 물건을 팔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여행 첫날부터 기념품을 사모으는 일은 긴 여행이라면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Zaanse Schans의 풍경은 마치 아이들과 읽었던 코르니유 할아버지의 비밀에 나오는 장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코르니유 할아버지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그곳은 프랑스의 작은 시골마을에 밀을 빻는다. 밀과 겨자를 빻는 것이 다르지만 18세기 유렵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야기 속 마을의 분위기를 상상하며 다시 중앙역으로 기차를 타고 돌아왔다.
중앙역에서 트램을 타고 고흐박물관으로 이동했다. 트램을 타고 가는 창 밖의 풍경은 전형적인 네덜란드 시내를 볼 수 있어 매우 좋았다. 약 20분 정도 트램을 타고 고흐 박물관 바로 앞에 도착했다. 이미 한국에서 직접 입장권을 구입해 출력해 왔기 때문에 여유 있게 들어가면 되었다. 언니와 나는 제대로 된 점심을 먹기 위해 수제 햄버거집으로 들어가 햄버거를 주문하려는데 언니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고 속이 좋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 당황이 되기도 했지만 우선 언니의 컨디션을 회복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에 허둥지둥 햄버거를 먹고 계산을 마치고 맑은 공기를 쏘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한결 숨쉬기도 편하고 속도 좀 괜찮아지는 것 같다는 말에 나도 안심이 되었지만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픈 언니를 세워놓고 고흐박물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언니는 매우 불편하면서도 동생의 주문에 찡긋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고흐박물관으로 입장을 하기 위해 실내로 들어서니 언니의 편하지 않은 속이 다시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언니를 등 그런 의자에 앉혀 기대어 쉬게 한 후 박물관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언니를 손으로 가리키며 나의 언니인데 배가 아프다. 잠시 눕거나 기댈 곳이 있으면 그곳으로 안내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구급차를 불러야 하는 정도냐며 물어왔지만 그럴 정도는 아니니 잠시 기대어 쉬면서 안정을 취하면 된다고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사무실로 함께 가자고 했지만 오히려 언니가 불편함을 느낄 것 같아 사양했다. 데스크의 직원들이 매우 분주하게 움직이며 나의 상황을 처리해 주기 위해 노력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후 직원 한 명이 직접 나서서 우리를 모유수유실로 안내해 주었다. 새벽부터 바쁘게 제대로 된 식사도 못하고 움직인 탓이 컸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정이 매우 쉴 틈 없이 짜여있어서 미안했다. 언니는 너라도 박물관을 돌아보라며 이야기했다. 마음은 언니옆에 있지만 몸은 어느새 고흐의 그림을 오디오가이드로 들으며 층을 옮겨가며 감상하고 있었다. 1시간 정도 시간이 흘러 언니에게 들렀더니 언니는 이제 좀 괜찮아졌다고 함께 돌아볼 수 있겠다고 했다. 언니와 다시 고흐의 그림과 설명을 들으며 박물관 감상을 마쳤다. 기념품 숍에 들러 고흐 작품이 담긴 컵받침을 구입한 후 직원들에게 감사인사를 뒤로 박물관을 빠져나와 다시 중앙역으로 향했다.
중앙역에서 우리는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약간의 시간을 보낸 후 저녁 8시 30분 독일행 플릭스버스에 올랐다. 네덜란드 여행의 하루는 새벽 일찍 시작해서인지 하루가 참 길다는 느낌을 받으며 버스를 타고 밤 12시가 넘어 독일 뒤스부르크에 도착했다.
사진설명 - 네덜란드 고흐박물관 소장 고흐의 아를의 방(고흐가 프랑스에서 작품활동을 하던 시절 지냈던 실제 방의 모습을 그린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