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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찬제티 Dec 03. 2023

호기심 천재소년 푸름이

# ADHD 학생과 함께 한 슬기로운 공부방 생활이야기


초겨울이 시작된 쌀쌀한 날,

공부방 수업이 끝나고 마무리를 하느라 청소기를 돌리고 있는데 누군가 벨을 누른다. 화면을 보니 푸름이 녀석이다.  아니 이 녀석 이 시간에 집에는 안 가고 왜 왔지?' 하며 문을 열어 주었다.

"집에 도착했을 시간인데 무슨 일이야?"

"선생님, 지금 저랑 같이 놀이터로 가요."

그러더니 빨리 나오라며 현관문을 발로 고인다. 마치 무언가 해냈다는 눈빛이 푸름이에게 느껴졌다. 확신에 차 있는 모습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 저랬을까 싶을 정도로 눈빛이 빛나고 있었다. 숨 고르기를 한 후 말을 이었다.

"지금은 나갈 수가 없어. 선생님 저녁도 만들어야 하고 청소도 해야 돼."

"지금 안 가면 안 돼요. 그럼 다른 애들이 망칠지도 몰라요. 빨리요 빨리."

어쩔 수 없이 패딩을 입고 따라나섰다. 놀이터로 가면서 도대체 뭘 만들었냐고 물으니 땅에 묻어 놓고 왔으니 가보면 안다고 신이 나서 겅중겅중 걷는 것이다. 덜컥 겁이 났다. 혹시 죽은 동물의 사체라던가 눈으로 확인하기 곤란한 물건이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앞섰다. 그러면서도 이 녀석을 믿는 나의 마음 한편 분명 무언가 만들었을 것이다. 따라나서는 나의 발걸음이 가벼운 이유이기도 했다.





놀이터에 도착해 보니 한편에 두둑하게 뭔가 만들어 흙으로 덮어 놓았다. 기대 반 근심 반으로 다가가 보았다. 푸름이는 아주 환한 얼굴을 웃어 보이며 그동안 작은 화약을 모아 한 줌정도 되는 폭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폭탄의 폭발력을 실험해 보고 싶은데 그걸 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유일하게 선생님만이 믿어 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푸름이의 말을 듣고 이 녀석 정말 대단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신뢰하고 믿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따뜻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감성이 앞설일이 아니었다. 푸름이에게 너무 잘했다. 어떻게 이렇게 대단한 걸 만들었니 하며 칭찬으로 마음을 다독여줬다. 우선 이 폭탄을 터뜨리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위험하니 선생님이 보관하고 있겠다고 한참을 설득한 후에 받아 올 수 있었다. 그날 만약 그 화약으로 된 폭탄을 터뜨렸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아마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고개가 흔들어진다.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 푸름이 또한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엄마손에 이끌려 공부방에 온 학생이다. 수학과 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공부방을 찾았다. 수학과 국어 모두 성적이 나쁘거나 이해가 안 가서가 아니었다. 엄마와 상담을 하면서 푸름이에 대해 듣게 되었다. 푸름이가 ADHD여서 약을 먹어야 할지 아직 고민이라고 했다. 나는 다른 아이들을 상담했던 때처럼 자연스럽게 상담에 임했었다. 무엇보다 푸름이 엄마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같은 시대에 함께 아이를 키우며 살아간다는 것, 유난스럽지 않은 마음으로 한 동네의 아이 엄마이기에 공감하고 싶었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학생을 바라보고 싶지 않았고 ADHD라고 특별하게 대하거나 선입견을 가지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푸름이와 공부방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ADHD의 정의 : 주의력 결핍/과잉행동 장애(Attention Deficit/Hyperactivity Disorder, ADHD)는 아동기에 많이 나타나는 장애로, 지속적으로 주의력이 부족하여 산만하고 과다활동, 충동성을 보이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증상들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아동기 내내 여러 방면에서 어려움이 지속되고, 일부의 경우 청소년기와 성인기가 되어서도 증상이 남게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attention deficit / hyperactivity disorder]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푸름이의 기분이 맑은 날은 학습 진도나 그날 해야 할 분량도 빠르게 끝나고 문제풀이도 술술 풀렸다. 흐린 날이 종종 있었는데 그런 날은 나도 함께 있던 다른 학생들도 매우 힘들었다. 소리를 지르거나 대들면서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며, 전기 스위치를 껐다켰다하면서 수업방해를 하고, 책상 위에 연필로 계속 낙서를 해댔다. 말을 하면 할수록 더욱 거세져서 말귀가 통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엄마처럼 달래주거나 간식으로 화제를 딴 곳에 돌려 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단호하게 선을 그으며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타일러 보기도 했다. 상황은 바로 좋아지거나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기다림을 선택했다. 내가 가진 공감 능력을 발휘해 보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기능들을 꺼내 놓으며 푸름이가 마음껏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다행히 다른 학생들과의 혼란이나 부대낌은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책을 보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유튜브나 인터넷에서 여러 사례들을 살펴보며 알아가려고 애썼다. 푸름이를 알고 이해하려면 기다리면서 마음과 정성을 쏟아보자라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다른 학생들이 오는 시간을 피해 푸름이와 시간을 따로 정해서 공부하기로 하고 어머님의 협조를 구했다. 푸름이가 오는 시간이면 되도록 푸름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읽어주며 기다려 주었다. 좋아하는 놀이를 해주기도 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나 보면 문제집은 겨우 1장을 푸는 날도 있었다.




매우 빠르게 변화가 있거나 푸름이가 온전하게 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거나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푸름이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푸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공부방에서 함께 수업을 시작하여 크고 작은 일들을 거쳐가면서 4학년을 지나 5학년이 되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푸름이의 몸도 마음도 성장을 하고 생각의 크기도 커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시간이 있었다. 다음 주에 학교에서 단원평가를 보는데 그동안 자신에게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아이들에게 반전 있는 놀라운 일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다. 푸름이가 단단히 결심을 한 것이다. 매일 시험 보기 전날까지 2시간씩 문제집을 풀고 공부해 보자고 했다. 물론 푸름이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겠노라고 했다. 다음 날 학교가 끝나자마자 공부방으로 달려왔다. 문제집을 펼치더니 무서운 기세로 풀기 시작했다. 모르는 문제는 설명을 해주니 바로바로 풀어내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문제집 14장을 1시간이 안되어 풀어내는 것이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푸름이는 맑은 날의 연속이었다.






단원평가가 끝나고 하교하던 시간에 푸름이는 학교에 있는 콜렉트콜로 전화를 걸어왔다. 이미 짐작했지만 그렇게 100점을 맞는 쾌거를 이룩해 낸 것이다. 전화로 잘했다 대단하다 넌 역시 해낼 줄 알았어라며 계속해서 잘했다 대단하다를 연발했다. 푸름이가 너무 대견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학교 앞의 분식점 사장님께 전화를 하여 푸름이가 좋아하는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감자튀김을 받아 공부방으로 오면서 얼마나 신나 했는지 모른다. 감자튀김을 아주 맛있게 먹으며 단원평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시험지를 받으면서 느낌이 왔다는 둥 19번 문제는 좀 어려웠는데 대분수와 자연수의 곱셈을 앞으로는 너무 쉽게 계산해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후일담을 늘어놓았다. 딱 그 나이대의 남학생 특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놀기 좋아하고 장난기는 덤이며 사랑스러운 아이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푸름이는 그렇게 공부방에서 4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흐린 날보다 맑은 날이 많은 아이가 되었다. 더불어 학습의 결과물도 고르게 이어졌고 학교에서의 생활도 전보다 훨씬 안정적이었다. 6학년이 되면서 다른 학습에도 흥미를 보여 학습 활동의 폭을 넓혀가게 되었다.





올해 고1이 된 푸름이는 근처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다음 달 이사를 앞두고 베란다 수납장을 정리하다 보니 푸름이가 만들었던 폭탄 주머니가 전자제품 설명서들과 함께 상자 안에 담겨있다. 

푸름이가 만들었던 실험용 폭탄은 푸름이에게 초등시절 한 장의 추억으로 남겨지길 바라본다. 나는 그런 천재소년 푸름이를 향한 격한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동네 학원에서 자라나는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하고 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대한 믿음과 기다림, 또 하나의 보탬과 노력의 열매들이 맺어질 때면 아이들에게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천재소년 푸름이의 기억을 떠올리며 혼가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진설명 - 지난 여름 휴가때 찾은 제주 카멜리아힐. 변화무쌍한 제주의 여름 날씨처럼 우리의 아이들도 그렇게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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