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위로,인연
몇 주 전 저녁을 든든하게 먹고, 집과 멀지 않은 공원에서 한 시간 정도 달리기를 했다. 땀은 어느새 하얀 티셔츠를 흠뻑 적셔버렸다. 물론 목도 말랐다. 갈증이 더 심해지기 전에 편의점에 들렀다. 보리가 주원료인 음료를 종이컵에 가득 담아 천천히 마셨다. 음료는 약간 미적지근했지만, 그럭저럭 마실만 했다. 운동 후의 개운함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지속됐다. 티끌만 한 먼지 한 점 없는 투명한 거울 앞에 서서 간단한 세면을 했다.
조금은 나른해진 몸을 부여잡고 보드라운 이불속에 몸을 숨겼다. 뱃속에선 원인을 알수 없는 꾸르륵 소리가 잇따랐다. 속이 조금 불편한 것 같았지만,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해야 했다.
취침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배는 가스가 찬 듯 물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견디기 힘든 심한 복통과 설사도 동반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거실에 시계를 봤을 땐 어느덧 시계 침은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식은땀이 흥건해진 손은 본능적으로 갖가지 서랍을 뒤적거리며 약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불운하게도 서랍 속에서 유일하게 건진 건 두통약과 반창고뿐이었다. 나는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반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분주한 출근길 대신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을 찾았다.
일찍이 병원을 찾은 탓인지 환자는 나뿐이었다. 간호사는 호명하며 나를 진료실로 이끌었다. 의사는 무심한 듯 내 얼굴을 쓱 한번 훑고선 덤덤하게 말했다.
“어디가 아프셔서 오셨어요?”
“배가 아파서 왔습니다.”
의사는 일그러진 표정을 짓는 나를 보고, 서둘러 몇 가지를 더 물어본 뒤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는 또 차도가 보이지 않으면 다시 찾아오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몸 상태가 더 악화하기 전에 얼른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다행스럽게도 약 기운이 돌았는지 밤새 쿵쾅대던 뱃속은 차츰 고요해지는 듯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고, 잠잠하던 뱃속은 또다시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차도가 보이지 않으면 다시 찾아오라는 그의 말이 떠올라 재차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거듭 병원을 방문한 나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맞이해 주었다.
“지금도 배가 아프신가요?”
“네, 선생님. 약을 먹고 나은 줄 알았는데 며칠 전부터 배가 다시 아프네요.”
의사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나에게 내시경을 권유했다.
결국, 그의 말대로 내시경을 해보았지만 별다른 문제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혹시 스트레스받은 적 있으신가요? 있으시다면 어떤 이야기든 좋으니 말해보시겠어요?”
나는 그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몇 번 몸을 쭈뼛대다 입을 열었다.
“요즘 제가 직장 상사와의 불화 때문에 아주 힘들어요.”
“아이고, 그런 일이 있으셨구나. 많이 힘드셨겠어요.”
그는 누구보다 진심으로 나를 위로하려는 것 같았다. 일순간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어쩌면 내 몸이 원하고 있는 것은 쓰디쓴 알약이나 주삿바늘이 아니라 다정한 위로의 말 한마디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만난 이후로 한동안 지독하게 나를 괴롭혔던 설사와 복통도 말끔히 사라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