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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알게 된 건 사회도 직장도 아닌 모바일 소개팅 앱이었다. 그곳은 여자보다 남자가 월등히 많았다. 마치 귀애할 만한 암컷을 찾기 위해 수컷 여럿이 떼 지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남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여자들의 게시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요깃거리라도 떨어지길 바라는 사냥개처럼. 더 나아가 댓글을 다는 남자도 있었다. 약속이 취소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남자는 약속이 취소됐다는 여자의 말에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둘의 댓글 놀이는 일분일초가 급하다는 듯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심오하다거나 특정 취미나 관심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고작 하는 이야기라곤 얼굴이 이쁘다거나 몸매가 좋다고 칭찬을 표하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여자가 관심 있는 뉘앙스를 보여서 만나자고 떼를 쓰고 있었다. 상대가 싫다고 하면 떠나야 하는 게 당연지사지만, 한번 물면 머리가 잘려 나가도 놓지 않는 뱀처럼 남자는 좀처럼 여자의 말을 듣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댓글 놀이가 가능했던 것이기도 한 것 같고. 결과는 관심도 제스처도 아닌 차단이었겠지만.
나는 비일비재한 여기에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보기와 같은 남자의 행동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3년 전 ‘지니’라고 하는 B사의 소개팅 앱에서 유일하게 배운 교훈이었다. 그땐 나도 여자에게 영양가 없는 행동을 하다가 욕을 한 되 얻어먹고 차단을 당했던 것 같다. 어렴풋이 기억이 날듯 말 듯하다. 잊어버리고 싶은 것 같다. 신조가 하나 있다. 갈구하지 않아도 뜻밖의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는 것. 그게 여기에서도 통했다. 사실 그 신조는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용돈을 주지 않아서 생겼다. 용돈이 없으니 매번 친구들과 매점에 가는 순간마다 얻어먹을 수밖에 없었고, 그 탓에 따돌림을 당했다. 그래서 나는 친구 대신 매일 같이 이름 모를 공원에서 제기를 차며 놀았다. 해가질 때까지. 그렇게 두 달이 지났을 때 그곳에서 친구 한 명도 사귀었다. 용돈이 없어도 무시하지 않는 친구. 그 친구도 돈이 없었지만.
이성에게 추파를 던지기보단 게시글에 내 이야기를 썼다. 마치 일기장을 오랫동안 써온 것처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썼다. 처음엔 오늘은 뭘 먹었고 어떤 운동을 했으며 한참 동안 기다린 영화가 곧 개봉할 것이라는 둥, 그래서 보러 갈 예정이라는 둥. 아주 사소한 이야기들을 써 내려갔다. 이성에게도 동성에게도 ‘좋아요’ 따위는 한 개도 달리지 않았지만 오로지 자기만족을 위해 썼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아냈다는 뿌듯함을 위해서. 그러다가 감성적인 기분이 드는 밤에 우발적으로 속 깊은 이야기를 썼다. 배터리 공장에서 일하는데 배터리가 수십kg에 달해서 드느라 너무 힘들다거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이었다. 술에 취해 있어서 되는대로 휘갈겨 썼다. 선잠에서 깨고 무척이나 후회했지만.
아, 잠에서 깨고 나서 여배우상의 여자가 뭐라 뭐라 메시지를 보내와서 기분은 좋았다. 심장이 두근거릴 만큼. 대충 내 글을 읽고 호감이 생겼다는 내용이었다. 더 정확히는 글에서 삶의 고뇌가 느껴졌다나 뭐라나. 그래서 측은지심이 들었단다. 처음엔 정신이 아픈 여자나 광고라고 생각했지만 대화하면 할수록 광고도 아니고 정신이 아픈 여자도 아니었다. 외모가 너무 화려해서 인지능력이 마비된 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이어 그 여자는 날 만나고 싶다고 했다. 여기에 있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엉뚱한 수작을 부리거나 잠자리를 원하는데 당신만은 조금 다른 것 같다고 하면서.
집에서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했다. 침대에 누워서도. 아침 밥을 먹으면서도. 운동을 하면서도. 만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내가 이토록 고민하는 데는 그녀의얼굴이 정말 이뻤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본 거긴 하지만 여자의 얼굴은 미끈한 계란형에 V라인이면서 코는 롯데타워 빌딩처럼 매끈하면서도 우뚝 솟아 있었다. 입술은 양귀비 색깔처럼 붉고 진하다랄까. 그야말로 남자라면 혹할 수밖에 없는 외모였다. 아마 외모가 눈에 띄지 않았다면 고민도 하지 않고 단칼에 거절했을 것이다. 내가 외모지상주의자여서가 아니다. 3년 전 ‘지니’앱을 하면서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앱은 친구의 추천으로 하게 되었다. 모태솔로인 내가 주말마다 집에 혼자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그랬을 거다. 그래서 여자랑 대화라도 하라고 그 앱을 알려주었을 거고. 그런데 대화 말미에 해준 말이 가슴을 철렁이게 할 만큼 의미심장했다. 그곳에서 대화는 하되 절대 만나지 말라는 것. 왜냐고 물었더니 거기에서 종종 장기 매매를 명분으로 사람을 납치한다고 했다. 그것도 남자만을 대상으로. 그러니 만날 생각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나는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있을까 싶었다. CCTV가 골목과 거리마다 한두 개도 아니고. 널리고 널렸는데. 그럴 리가.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파서 TV를 켰다. 예능프로는 재미가 없어서 뉴스로 채널을 돌렸다. 물가가 올랐다는 뉴스가 나오고 곧이어 공교롭게도 장기 매매 업자가 검거되었다는 뉴스가 앵커의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앵커의 목소리는 옥구슬처럼 청아해도 보도 내용이 장기 매매라서 등골을 서늘하게 할 만큼 섬뜩하게 들렸다. 게다가 업자가 고아나 미성년자를 상대로 그랬다고 했을 땐 등뼈가 시린 것 같았다. 불쾌해서 텔레비전을 끄고 리모컨을 소파에 무심히 던진 후 앱을 켰다. 그녀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녀는 신촌역 사거리에 위치한 ‘투데이’ 카페에서 내일 보자고 했다. 친절하게 네이버 거리뷰 사진과 주소도 보내왔다. 프로필은 어제와 다르게 붉은색 도트 블라우스를 입고 찍은 사진이었다. 붉은 장미가 인간으로 환생한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다. 고상하고도 아름다운 모습. 가슴이 춤을 추듯 빠르게 뛰었다.
답장을 하려고 하는데 친구의 말과 뉴스 진행자의 목소리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머리에선 식은땀이 흘렀고, 손가락은 흔들리는 열차 안의 커피잔처럼 이리저리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내일 봬요. 오후 2시에 카페에서… 그녀는 웃음 이모티콘으로 답했다. 순간 현기증이 나면서 머리가 핑 돌았다.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는 생각에 그런 것 같다. 침대에 누워 관자놀이 중앙에 오른쪽 손을 올려놓고 생각했다. 그녀 앞에서 나는 내일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얻는 것은 없었지만…. 내가 모태 솔로라서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대론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네이버에 접속하고 여자에게 잘 보이는 법을 검색했다. 손가락으로 스크롤을 내려서 여러 개의 블로그를 봤다. 정독해도 와닿는 게 없었다. 웃는 것은 어릴 때부터 웃질 않아서 어색하기만 하고. 칭찬은 받아본 적이 없어서 남에게도 인색한 편이다. 좋은 향이 호감을 산다고 하는데 난 향수에 향자도 모른다. 향이 나는 무언가를 아는 건 페브리즈밖에.
또 머리가 아파지는 것 같다. 두통이나 편두통은 근래 없었는데…. 한숨 자면 좀 나아지겠지. 잠을 자면서도 몇 번이나 뒤척인 것 같다. 가시덩굴 위에서 잔 것도 아닌데 등과 허리가 뻐근하고 찌릿했다.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시 잠이 오질 않을 것 같아서 앱을 켰다. 성인광고 메시지 외엔 아무런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그녀의 메시지를 지그시 눌렀다. 그리고 ‘오늘 못 나갈 것 같아요.’라고 적으려는데. 그녀의 사진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고, 전송버튼을 차마 누르지 못하고 앱을 꺼버렸다. 아마 버튼을 눌렀어도 잠이 들진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사진이. 그녀의 얼굴이. 계속 어른거렸을 테니. 아쉬움을 자아내면서. 커튼 사이로 포근한 햇살이 드리운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서 피곤하긴 하지만. 세면대 앞에 서서 민들레씨처럼 하얗게 올라온 눈곱을 떼면서 얼굴을 봤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말똥말똥했던 눈동자는 피로에 지친 사람처럼 풀려있었고, 눈 밑 다크서클은 동물원 판다를 방불케 할 만큼 까맣게 주저앉았다. 물기 가득한 얼굴을 수건으로 톡톡 두드리듯이 닦아내고 앱을 켰다. 석탄보다 진한 눈그늘을 보여주기 싫어서. 모르긴 몰라도 이대로 나갔다간 만 퍼센트의 확률로 축구공처럼 차이고 말테니까. 메시지가 와 있다. 그녀로부터. 사진을 보니 옷이 또 바뀌었다. 검은색 오프숄더 원피스. 가슴이 보일 듯 말 듯한 게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얼굴은 여전히 이쁘다. 그녀는 시간 늦지 말고 오라고 했다. 아, 말하기엔 늦어버린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했다.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모르겠다. 차이고 나면 맘이 편할 것 같다. 장기 매매 걱정도 안 해도 되고. 옷장을 열었다. 아디다스 운동복 두 벌. 나이키 운동복 두벌. 사복이라곤 운동복밖에 없는데 이를 어쩌나. 아, 옷장 아래 칸 서랍에 흰색 긴팔 셔츠와 검은색 정장 바지가 있었지. 서랍을 열고 고이 개어둔 옷을 꺼냈다. 살짝 구겨진 옷깃이 거슬려서 다리미로 다렸다. 바지는 다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다리지 않았다. 앱을 켜고 도착한 메시지가 있는지 확인했다. 성인광고뿐이었다. 때마침 어디쯤이냐고 그녀가 물었다. 시계를 보니 약속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서둘러 문밖을 나섰다.
약속 장소에 가까워지자, 심장이 쿵쿵대기 시작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다행히 약속 시간엔 늦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눈에 띄는 그녀가 보였다. 사진에서 봤던 그녀가 앉아 있었다. 검정 스틸레토힐을 신고 있었고, 한쪽 다리를 꼰 채로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옷은 검정 투피스를 입었다. 무릎이 훤히 다 보이는. 사진보다 실물이 더 나았다. 백배 정도. 아니, 천배 정도. 그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손님들도 그녀의 고혹한 자태를 흘깃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바로 그때 얼굴은 넓적하고 코는 뭉툭하며 머리는 깍두기 머리를 연상케 하는 남자가 그녀에게 귓속말하고선 재빠르게 어디론가 사라졌다. 누구인지 어떤 관계인지 궁금증이 생겼지만, 나중에 물어보기로 하고 원형 테이블에 앉은 그녀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앱에서 대화하시던 여자분 맞으시죠?”
살짝 고개를 숙인 채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렇게 말을 거는 게 맞는 건가 싶지만, 그녀가 싱그럽게 웃는 표정을 보니 아주 틀린 건 아닌 것 같다.
“네, 맞아요. 생각보다 동안이네요. 키도 크시고.”
“감사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제가 사실 이런 곳에서 사람을 잘 만나지 않거든요. 그런데 꼭 한번 뵙고 싶었어요. 고뇌하 시는 모습이 끌렸달까?”
“고뇌라…. 그냥 일이 힘들어서 술김에 글 하나 올린 것뿐인데요. 뭘.”
“아…. 하하. 혹시 이름이?”
“이철민이요.”
“이름 멋지네요. 철민씨. 저는 김수정이에요.”
봄의 햇살보다 더 화사한 얼굴로 말하는 그녀가 조금은 의심스럽다. 칼에 베일듯한 오뚝한 콧날. 섬세하면서도 가지런한 손가락. 한번 쳐다보면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은 마치 블랙홀 같은 크고 화려한 눈. 이런 사람이 모태 솔로인 나를 왜 만나려고 하는가.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니다, 영화나 소설 그리고 현실에도 가끔 이런 경우가 있다. 영화 미녀와 야수도 그중에 하나가 아닌가. 그녀를 믿어보기로 했다. 아니, 이제 수정이라고 부르겠다. 나이도 동갑이라고 했으니. 수정이는 이틀 뒤에 영화를 보자고 했다. 스릴러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다. 나도 영화를 좋아한다고 맞장구 쳤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수정이를 놓치기 싫은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수정이에게 귓속말을 하던 남자가 나를 쫓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 발자국마다 느껴지는 그의 숨소리가 그의 인기척이 온몸에 소름을 돋게 했다. 그를 피해서 택시에 타자마자 벌벌 떨리는 손으로 수정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수정아, 아까 카페에서 너한테 귓속말 하던 남자 있잖아. 그 사람이 나 쫓아오더라.”
“정말? 그럴 리가 없는데. 네가 잘못 본 걸 거야. 어제 잠도 잘 못 자서 헛것이 보인 거 아니야?”
“내가? 내가 잘못 봤다고? 내가? 아닌데...”
“응. 개 내 친구인데 그런 애 아니야. 아까 온 거는 나한테 할 말이 있어서 잠깐 들린 거고.”
“그래??”
“응.”
내가 잘못 본 게 아닌 것 같다가도 수정이의 말을 들으니 너무 피곤해서 그런 건가 싶었다.
수정이의 말대로 잠을 많이 못 잔 건 사실이니까. 집에 막 도착했을 때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야, 요즘 어떻게 지내냐?”
“나? 요즘 앱에서 채팅하고 놀아.”
“채팅? 채팅만 해라. 내가 그때도 이야기했지. 앱에서 절대 사람 만나면 안 돼.”
“아….”
“아가 아니라 인마! 만나지 말라면 만나지 마. 내가 친구한테 들었는데 요즘 김모 씨인가. 박모 씨인가. 하는 여자가 남자들한테 작업 걸어서 납치한다더라. 너도 조심해. 혹시 만나고 있는 거 아니지?”
“아. 어…. 응. 아무도 안 만나고 있어.”
“대답이 시원찮은데. 불안하다. 불안해. 아무튼 그 여자 정확하게 이름 알아 올 테니까. 그때까지 아무도 만나지 마.”
“응. 알겠어.”
“그래. 걱정돼서 연락한 거고, 잘 지내고 있어. 다음에 술 한잔하자.”
“응. 그러자….”
김모 씨란 말에 수정이가 떠올랐다. 수정이도 김씨가 들어가는데. 그때 수정이에게도 문자가 왔다.
“철민아. 집에 잘 들어갔지?”
“어…. 응. 잘 들어왔어. 너도 잘 들어갔어?”
“난 당연히 잘 들어갔지. 우리 이틀 뒤에 보지 말고 내일 보는 거 어때?”
“내일??? 왜???”
“모레는 시간이 안돼서... 내일 보자. 어때? 내가 영화도 예매할게.”
“어... 음... 수정아. 나 사실 아까 그 남자가 조금 걸려. 너 만날 때 마다 쫓아올 것 같아서.”
“남자?? 아... 아니라니까. 내 친구가 널 왜 쫓아가. 정 신경 쓰이면 모텔에서 만나자. 거기서 컴퓨터랑 TV 연결하면 영화 볼 수 있으니까.”
“수정아. 우리 아직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모텔로 오라고?”
“뭐 어때? 나랑 자는 것도 아닌데. 그냥 영화만 볼 거니까. 다른 건 기대하지 말고 와.”
“어... 그래. 수정아. 알겠어. 내일 보자.”
수정이로부터 사진 여러 장이 도착했다. 젝시미스 하이웨스트 비키니를 입은 사진.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는 홀복을 입은 사진. 가터벨트를 착용하고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V를 하고 있는 사진까지. 누가봐도 남자의 성적 자극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사진이었다. 사진 한 장 한 장을 넘기면서 의구심이 증폭됐다. 수정이가 나한테 원하는 게 뭔지 궁금했다. 그러면서도 그냥 수정이를 믿고 싶었다. 무슨 탈이라도 나겠나. 싶은 마음으로. 그렇게 나는 모텔로 향하고 있었다. 가는 중에 소변이 마려워서 모텔 근처 화장실로 갔을 땐 섬뜩하리만치 나를 놀라게 한 전단지가 있었다. 거기엔 장기매매 하실 분을 찾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대놓고 쓰여 있었다.
두피는 68만 원 안구는 170만 원 간 1억 7천만 원 심장은 1억 3천만 원 신장은 2억 9천만 원 그것 말고도 더 있었지만, 모든 부위 중에 신장이 가장 비쌌다. 전화번호는 오른쪽 하단에 자그마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그때 수정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빨리 오지 않고 뭐하냐고 했다. 나는 금방 간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앱을 켰다. 프로필 사진은 또 바뀌어 있었다. 청담동 며느리룩을 연상케 하는 까만 벨벳 원피스였다. 등은 조금 파이고 허리는 잘록하게 들어간 여성미가 돋보이는 옷이었다. 얼굴은 변함없이 이뻤다. 사진을 계속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소용돌이에 빠진 것처럼. 더는 시간이 없었다. 수정이는 나를 재촉하고 있었다. 문자로도. 전화로도.
솔직하게 전단을 보고 나서부터는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수정이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걱정보다 더 크다. 애정이 걱정을 압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나는 모텔 문을 먼저 열지 않을 것이다. 혹시라도 우려할 만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벨만 눌러볼 것이다. 벨을 누르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릴 것이고, 그 앞에 수정이가 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있는지 볼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쉽게 말해서 나를 해할만한 사람이 있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나올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문 앞에 서 있다. 수정이가 있는 805호. 문 앞에서. 벨을 누를 준비를 하고 있다. 벨을 눌렀다.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철민아. 저번에 앱에서 남자한테 작업하면서 납치하고 다닌다는 여자 있잖아. 그 여자 이름이 김수정이라고 하더라.”
김수정이라는 말이 친구의 입에서 내 귓가로 옮겨갈 때, 뒤에서 누군가가 손수건으로 내 얼굴을 가리고 끌어안았다. 나는 곧바로 의식을 잃었고 눈을 떴을 땐 까만 수술용 침대에 사지가 묶여 있었다. 마치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처럼. 왼편엔 수술용 도구로 보이는 메스를 비롯한 날카로운 물건이 한가득 있었고. 심전도를 체크하는 기계도 보였다. 목이 터질 만큼 소리를 질렀지만. 무심하게도 돌아오는 건 메아리 소리뿐이었다. 이윽고 수술복을 입은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 뚜벅뚜벅 걸어들어왔다. 흰색 라텍스 장갑도 꼈다. 마스크도 같이. 여자가 마스크를 내렸다. 수정이었다.
“여기가 어딘 줄 아니? 철민아?”
수정이는 마치 귀신에 씐 것처럼 미친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가 사람이 아닌 악마처럼 느껴졌다.
“여기가 어디야! 나한테 왜 그래. 빨리 풀어줘.”
“미안한데, 난 널 풀어줄 수가 없어. 네 장기를 팔아야 하거든.”
“뭐? 뭐라고??? 미쳤어? 난 너를 진심으로 좋아했는데, 네가 어떻게 나를. 이런 식으로.”
“진심?? 진심, 말 한번 좋네. 외모에 홀려서 온 주제에.”
“뭐! 이런 미친...”
“다른 소리 할 거 없고 나한테 마지막 인사나 해. 곧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될 테니까.”
조증에 걸린 사람처럼 깔깔웃는 수정이를 독수리처럼 날카롭게 쏘아보며 말했다.
“왜? 왜 하필 나야. 다른 사람도 많은데. 왜 나냐고. 씨발!”
“왜 너냐고? 아직도 모르겠어?? 너처럼 모태 솔로인 데다가 연애 경험도 없는 애들이 속이기가 참 쉽거든. 자극적인 사진 몇 장 좀 보내주면 금방 넘어오더라. 너처럼.”
“하….”
“한숨 다 쉬었으면 이제 시작할게. 즐거웠어. 장기는 펄떡펄떡 뛸 때 거래해야 좋거든. 안녕.”
수술의가 손발을 강하게 비틀며 저항하고 있는 내게 산소마스크를 씌웠다. 또다시 의식을 잃었고 눈을 떴을 땐 병원이었다. 내 침상 오른편엔 내 친구가 있었다. 마치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화가 많이 난 표정이었다.
“야, 괜찮냐? 내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아…. 미안. 너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근데 난 왜 병원에 있는 거지? 죽는 줄 알았는데.”
“야…. 내가 죽여줘? 미쳤네. 내가 신고해서 네가 살아있는 거야. 인마.”
“현석이 네가? 어떻게? 어떻게 신고했어? 내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너한테 전화로 김수정 조심하라고 말할 때 기억나지?”
“응.”
“그때 누군가가 널 질질 끌고 가는 소리가 들리더라. 그래서 내가 바로 신고했지.”
“아…. 그렇게 된 거구나. 고마워. 정말 고마워. 너 없었으면 죽었겠지?”
“그래…. 인마…. 평생 은인으로 모셔라. 알겠냐?”
“어…. 그럴게. 고마워.”
며칠 뒤 김수정을 비롯한 장기 매매업자 10명이 모두 검거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