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소리는, 아직도 비행 중

내가 떠난 자리에 남은 목소리

by 장이엘

Ladies and gentlemen, welcome aboard.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희 ㅇㅇ항공은...


비행기에 몸을 싣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내에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승객들은 방송에 맞춰 안전벨트를 조이고,
목적지까지의 시간을 조용히 계산했다.
터뷸런스, 기내식, 면세품, 착륙 준비까지.


비행 내내 그 목소리는 여정의 안내자가 되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나였다.

정확히는, 녹음된 나의 목소리.



외국 항공사에서 근무하던 시절,
한국 노선의 기내방송은

자연스레 내 몫이 되었고,
정확한 발음과 안정된 톤으로

‘괜찮은 방송’을 한다는 평을 받았다.


기내방송은 나에게도 누군가에게도

여행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

별것 아닌 기내식이 하늘 위에서는 특별해지듯,

지루한 기내방송 역시 누군가에겐 여행의 로망이었다.


기내방송은 비행이 시작되었다는 신호였고,

여정의 첫 문을 여는 의식이었다.

그리고 내 목소리는 승객들의 그 특별한 순간에

닿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로부터 공식 제안을 받았다.
“전 노선에 사용할 기내 방송을 녹음해 주세요.”


보딩부터 이륙, 기내식, 착륙까지

비행에 필요한 전 절차를 담은

항공사 대표 기내 방송을

‘내 목소리’로 남기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의 짧은 휴가를 마치고,

본사 미팅을 거쳐 현지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제법 큰 공간, 헤드셋을 쓰고 대본을 들고,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비행기 안의 풍경을 상상했다.

승객들의 긴장감, 미소, 그리움, 설렘.
그 모든 감정 위에 얹힐 나의 목소리를,
부드럽지만 신뢰감 있게 담기 위해

숨을 가다듬고 녹음을 시작했다.


스튜디오에서의 방송은 조금 어색했지만,

감독님과 호흡이 잘 맞았고

반나절 만에 모든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마침내, ‘공식 기내방송'이라는 이름으로
내 목소리는 하늘 위를 떠돌기 시작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에도 저작권이 있을까?”


기내방송의 대본은 회사의 것이고,
녹음된 음성의 사용 권리 또한

계약서 조항 속에 명확히 귀속되었다.

법의 언어로 말하자면 그 목소리는

나의 것이지만, 완전한 나의 것은 아니었다.


저작인접권으로 흐려진 나의 권리는

감정으로 되살아났다.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랐던 마음.
나만의 억양과 숨결, 말의 속도와 호흡.

그날의 감정과 의도를 담은 모든 흔적은,
어떤 조항보다 더 오래, 더 깊게 남아 있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이름을 남긴다는 건 결국,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다는 뜻 아닐까.


내가 진짜 원했던 것도 ‘기억’이었던 것 같다.


나의 기내 방송이

낯선 하늘 위, 안심이 필요한 순간에 닿은

조용한 온기로 기억되길 바란다.


말은 흘러가고, 사라진다.


하지만 누군가의 비행 속에서,
그 목소리가 잠시라도 위로가 되었기를.


나는 하늘을 떠났지만,

그날의 숨결은 아직도 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