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이 깨지니 자유가 찾아왔다
비행기 안에서는,
평소엔 감춰져 있던 사람들의 민낯이 드러난다.
나는 외항사 승무원으로 일하며,
무대 위의 화려함과는 전혀 다른
유명인들의 얼굴들을 마주하곤 했다.
비단 하늘 위에서만 그런 건 아니었다.
호텔리어로 일하던 시절에도
수많은 유명인들의 '비공식 얼굴'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내가 본 것들은 뉴스나 방송에 나오지 않는다.
세상이 들썩일 만한 얼굴들도
내 일상에선 그저 지나가는 풍경처럼 존재했다.
모터케이드에서 손을 흔드는 오바마.
레스토랑의 옆 테이블에서
조용히 식사하는 마이클 조던.
놀라지도, 들뜨지도 않았다.
익숙하게, 담담하게 스쳐가는 일상일 뿐이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들이
비행기 좌석에 조용히 몸을 실을 때,
그 얼굴 위에서 나는 또 다른 이야기를 읽곤 했다.
하루는 아이돌이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륙 전, 자리에 앉자마자
비행기가 뜨기도 전에 잠에 들었고,
착륙할 때까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지친 얼굴로 내내 잠만 잤다.
무대 위와는 전혀 다른 얼굴.
오직 피로와 예민함 만이 존재했다.
찬란한 빛만큼 짙게 드리워진 어둠.
그건 그의 민낯이었다.
호텔에서 일하던 시절,
한 여자 연예인을 담당한 적이 있다.
그녀는 중년의 기업가에게
깊이 의존하고 있었고,
그 관계는 전혀 낯설지 않아 보였다.
그녀의 태도는 무례했고,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유명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데 익숙해진 듯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승무원이라는 이름으로 비행기 안에 선 나는
그녀를 다시 마주했다.
다른 제복을 입었을 뿐, 상황은 같았다.
놀랍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그녀는 그대로였다.
여전히 무례했고, 여전히 거만했다.
며칠 뒤, TV 속 그녀는
맑고 순수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며 이미지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하고
허망한 것인지 새삼 느꼈다.
유명인들과 가까워지는 일은 낯설지 않았다.
대부분 화면 속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빛나는 무대 위에선 모든 게 완벽해 보이지만,
그 모습의 상당 부분은 연출된 것이었다.
무대 밖의 일상은 생각보다
훨씬 고단했고 불안정했다.
찬란함 이면의 외로움,
박수 소리가 멈춘 뒤의 정적.
나는 그 고요 속에서
화려함이 지닌 어두운 그림자를 보았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는 사실을,
나는 그 경험들로 인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나의 환상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불완전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누군가를 롤모델이라 부르며
바깥 어딘가에 이상적인 자아를 투사한다.
연예인, 재벌, 정치인, 스승, 혹은 성공한 지인 등
그들을 통해 ‘내가 되고 싶은 나’를 비춰보는 것이다.
결국 ‘롤모델’은 사람 그 자체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하나의 이상(ideal)이다.
환상이다.
그래서 동경이 깨졌을 때,
우리는 실망하고, 혼란스럽고, 때론 분노한다.
그건 그 사람에게 실망한 게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이상’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
빛이 클수록, 그림자도 짙고 깊다.
대단한 사람은, 그만큼 대단치 않은 면도
반드시 가지고 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사람을 동경하지 않게 되었고
타인을 부러워하거나 비교하지 않게 되었다.
환상이 사라진 민낯은 심심했지만,
그만큼 더 자유로웠다.
우리가 동경하던 것은 대부분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만들어낸 이미지였고,
그 이미지는 결국 편집된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
그 환상에서 벗어나자, 나는 편안해졌다.
누구처럼 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았고,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
조금씩 쉬워졌다.
‘저 사람은 저렇구나.’ 하고 선을 긋는 눈,
‘나는 이렇구나.’ 하고 자신을 받아들이는 여유.
화려한 껍질 너머로 사람을 보기 시작한 순간,
나 역시 그 껍질을 벗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제야, 진짜 자유가 찾아왔다.
나는 이제 누구도 동경하지 않는다.
그 찰나의 해방이 얼마나 귀한지 알기에,
다시는 스스로를 가두는 쪽을 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 자유의 온기를 오래도록 품고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