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산소마스크를 먼저 씌울 거야?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나는 먼저 숨을 쉬기로 했다.

by 장이엘

비행기를 타면 늘 듣게 되는 안내방송이 있다.


"동반하신 어린이나 도움이 필요한 승객이 있을 경우,

본인의 산소마스크를 먼저 착용하신 뒤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나 역시 승무원으로 일하며

이 문장을 수없이 반복했다.


이기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이 문장은,

사실 가장 이타적인 말이다.


살아 있는 사람이 누군가를 지킬 수 있으니,

함께 살기 위해서는 먼저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타고 있는 비행기에서

압력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상상해 보자.

천장에서 산소마스크가 쏟아져 내리고,
어른들은 본능적으로 아이에게 먼저 씌우려 한다.


하지만 단 몇 초 만에 산소 부족으로

어른은 의식을 잃고,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지 못한 아이도 곧 쓰러진다.


영화 속 장면이 아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Time of Useful Consciousness

유효 의식 유지 시간


실제로 고도 4만 피트 상공에서 압력이

급격히 떨어지면 약 15초 이내에 의식을 잃을 수 있다.


그 짧은 순간 안에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아무도 누구도 도울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


상공이 아닌 땅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순간들을 맞이한다.

“나 없으면 안 되는 사람들 “ 앞에서
우리는 본능처럼

그들의 산소마스크를 먼저 챙겨준다.


그렇게 나의 산소마스크는 뒷전에 두고

식사를 미루고,
잠을 포기하고,
감정을 눌러놓고,

타인의 고통까지 짊어진다.


그리다 문득, 답답하고 숨이 가쁘고,

흐려진 시야로 버티다가 결국 쓰러지기도 한다.


우리는 점심시간, 휴식시간, 휴일, 휴가 등의

‘법의 보호’ 속에서 쉴 권리를 보장받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병간호, 가사노동 등의

말없이 반복되는 모든 돌봄의 일들.
희생이 스며든 그 노동에는
그 어떤 가이드라인도, 법적 브레이크도 없다.


대신 죄책감, 책임감이라는 이름의 멍에가
우리의 휴식을 끊임없이 방해하며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처럼
쉴 틈 없이 달리게 만든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무조건적인 헌신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은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오히려 내가 무너짐으로써,

모든 것이 함께 붕괴되기도 한다.



내가 먼저 숨을 쉬지 않으면,

누구도 끝내 지킬 수 없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주변을 돌보고, 지키고, 이해하느라

언제나 자신을 후순위에 두고 있다면


나는 먼저 그 마음을 조용히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사람마다 짊어진 사정은 다르고,

감당해야 할 무게도 다르다.


겉으론 평온해 보여도

속에서는 이미 한계에 가까워진 마음으로

그저 버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누구나 저마다의 자리에서,

감당해 내야 할 사정과 책임이 있으며

그 무게는 타인이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말만은 건네고 싶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당신의 산소마스크 먼저 챙겨보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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