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이제는 취침 시간입니다.

낮과 밤을 잃고 살던 전직 승무원의 회복기

by 장이엘



나는 외항사 승무원이었다.

출근 시간은 늘 달랐다.

나는 아침비행을 선호했지만

나의 취향을 고려해 주기엔 회사는

냉정한 곳이었다.


공항은 24시간 움직이고,

인력 또한 그에 따라 움직인다.

나는 회사의 '인력'이었고

로스터가 만들어놓은 스케줄에 따라 움직였다.


비행은 새벽, 밤, 대낮 정말 다양했다.

새벽 2시 비행...

밤에 샤워를 하고 화장을 하고 유니폼을 입는다.

거리가 잠든 시간 크루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한다.


출근 후 도착지는 전 세계였다.
가끔 스탠바이 중 “로마 비행 가야 해”라는 콜을 받고
곧장 로마행 비행기에 오르기도 한다.

이름만 들어도 설레어할 도시들이었지만
언제부턴가 ‘피곤함’이라는 감정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호텔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씻고 잔다.

커튼을 치고, 안대를 착용하고,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 룸서비스를 시킨다.


물론 밖으로 나가 신나게 노는 친구들도 있다.
나도 신입 때는 그랬다.
하지만 일을 오래 할수록 에너지는 고갈됐고,

특히 밤비행 후엔 녹초가 되었다.


잠깐의 휴식을 마치고,
다시 샤워하고, 메이크업을 하고,

유니폼을 입는다.
그리고 다시 비행기를 탄다..


하루, 한 달, 일 년, 이 년…

그렇게 몇 년을 반복했다.

그 시간 동안 고도 3만 피트 위를 떠다녔지만,
내 몸은 단 한 번도 제대로 착륙한 적이 없었다.


낮밤이 뒤바뀐 생활.

잠든 도시를 지나며 출근하고,
동이 틀 무렵 화장을 지운다.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잠들고, 해가 질 무렵 일어난다.


그런 날들이 쌓일수록
내 몸은 낯선 리듬에 갇혀갔다.


귀는 점점 막혔다.
이퀄라이징이 되지 않아
귀 안쪽에서 팽창하는 고통이 반복됐다.


비행 후 며칠이 지나도록 뚫리지 않는 귀.
병원에서는 "선천적으로 이관이 약하니
비행을 그만두는 게 좋겠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 비행을 했고,
임시방편으로 약을 먹었다.



끼니를 놓치기 일쑤였고,
기내식이나 패스트푸드로 허기를 채웠다.


낭만이라 부르던 기내식,
미국에서 줄 서서 먹던 인 앤 아웃 버거.
이 모든 것이 내 위에는 큰 부담이었다.


위는 매번 놀랐고,
위염과 위궤양은 당연한 듯 찾아왔다.

속이 불편한 것도, 머리가 무거운 것도,
그저 이 일이 가진 대가라 여겼다.


하지만, 그건 무너지는 신호였다.


나는 결국 멈췄다. 더는 탈 수 없었다.

내 몸이 더는 그 고도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회복을 시작했다.


밤 11시에 출근하던 나는

이제 그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
어두운 방 안,

따뜻한 카모마일&라벤더 티 한 잔과 함께
고요히 하루를 정리한다.


아침 6시, 해와 함께 일어난다.

여름에는 조금 더 일찍,

겨울에는 조금 더 늦게.

최대한 자연의 섭리에 따르려 한다.


햇살이 몸에 닿는 것을 느끼며

깊은 호흡을 한다.
필라테스로 몸을 깨우고,

명상으로 마음을 다스린다.
가끔은 태극권으로 기운을 순환시키며
굳어 있던 근육과 감정을 풀어낸다.


이제 나는 직접 삶은 제철 채소와 호밀빵,

삶거나 구운 생선과 고기,
그릭요구르트를 주식으로 하고,
제철 과일을 나만의 달콤한 디저트로 즐긴다.


내 손으로 준비한 음식을, 제시간에, 바르게 먹는다.
그 단순하고도 느린 행위들이
내 몸을 다시 사람답게 만들어주었다.


몸은 기억한다.
무너질 때의 신호도, 회복될 때의 리듬도.


나는 다시, 낮에 깨어 있고, 밤에 쉰다.

정해진 시간에 먹고, 움직이고, 쉬는 삶.

그 단순한 리듬이
내가 다시 나를 돌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밤 11시,
이제는 출근이 아닌, 취침 시간이다.


밤과 낮이 제자리를 찾자,

나도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단순한 리듬 덕분에,

나는 다시 나답게 살아가고 있다.

무너졌던 몸은 제자리를 찾아가고,

지쳐 있던 마음도 비로소 숨을 쉰다.


지금 나는, 비로소 진짜 나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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